김훈 중위 국립묘지 안장될까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10.1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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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 15년째 벽제 군부대 창고에 국가권익위는 ‘순직 처리’ 권고

경기도 벽제 1군단 산하 보급대대 창고에는 군에서 의문사한 장병 60여 기의 유골이 있다. 1998년 2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초소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김훈 중위의 유골도 이곳에 15년째 보관돼 있다. 유족이 인수를 거부해 각 군에서 보관 중인 유골은 총 146기(육군 141, 해군 4, 공군 1)다. 1971년 6월18일 의문사한 박 아무개 일병 유골의 경우 42년 동안이나 이곳에 있다.

시신 형태로 군 병원이나 일반 병원 냉동고에 보관 중인 사체도 23구나 된다. 가장 오랫동안 냉동고에 안치된 사체는 해군에 복무하다 사망한 나진영 이병이다. 나 이병은 1998년 9월 부대 내 상습 가혹 행위로 디스크를 얻어 휴가를 나왔다가 병원 치료를 받은 뒤 집 앞 아파트 계단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족과 군은 15년째 ‘타살’이냐, ‘자살’이냐를 놓고 다투고 있다. 현재 나 이병의 시신은 경북 김천의료원 영안실에 있다.

1999년 4월 김훈 중위의 사인을 수사한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국방부에서 사망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의문사한 장병들의 유족 대다수는 사망 원인과 진실 규명 등을 요구하며 시신 인수를 거부해왔다. 참여정부 때 군 의문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가 마련됐다. 2006년 1월1일 대통령 소속으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군의문사위)를 출범시켜 4년여 동안 활동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9년 12월 해산되면서 유족들의 한을 풀 길이 없어졌다. 비운의 주인공이 된 169명은 하나같이 국방의 의무를 지기 위해 입대했던 장병들이다. 그런데도 군 당국은 이들에 대한 진상 규명이나 명예회복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김훈 중위 사건의 경우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의문사로 기록됐다. 1999년 <시사저널>은 베일에 가려졌던 ‘김훈 중위 의문사’(제477호)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이를 통해 당시 판문점 경비부대원들이 북한 측과 접촉한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군 수사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최초 현장 감식이 있기 전에 군 내부에서 자살로 보고됐는가 하면, 미군은 당일 현장을 보존하기는커녕 오히려 물걸레로 청소해 훼손했다. 초동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타살의 단서가 될 수 있었던 증거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는 등 오류투성이였다.

군 당국은 김 중위의 사망 원인을 ‘자살’로 결론 내렸다. 아버지인 김척 예비역 중장 등 유족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재조사를 요구하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2009년 군의문사위는 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진상 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총기 격발 실험을 통해 김 중위가 스스로 격발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타살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범인을 지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진상 규명 불능’이 됐다.

1984년 4월2일 강원도 화천 육군 7사단에서 사망한 허원근 일병 사건도 마찬가지다. 허 일병은 7사단 GOP 철책 근무지 전방소대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은 상태였다. 당시 군 헌병대는 자살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자살자가 머리와 가슴 등 총 세 발을 쏠 수 있었는지가 의문으로 남았고 자살 동기도 불명확했다.

허 일병의 유족은 군의 발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1년 6월 군의문사위에 진정을 냈고, 1기 군의문사위는 ‘타살’로 결론을 내렸다. 헌병대 수사 과정에서 부대 간부들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망 현장과 시간, 중대원들의 알리바이 등을 조직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5월24일 열린 ‘군 의문사 유족 호소대회’에서 유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타살은 타살인데 범인이 없으니 ‘규명 불능’

하지만 국방부는 군의문사위가 사건 결과를 날조했다며 군 검찰과 헌병대 등으로 ‘국방부 특별 진상 조사단’(특조단)을 꾸렸다. 두 달 후 특조단은 군의문사위와는 정반대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2기 군의문사위는 다시 허 일병 사건을 조사했고, 2004년 6월 은폐 주도 세력이나 실탄 발사 장면을 목격한 결정적 증인을 찾지 못한 채 ‘진상 규명 불능’ 판정을 내렸으나 “타살은 확실하다”고 발표했다. 김훈 중위 사건과 비슷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허 일병 유족은 2010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타살로 인정된다’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자살’로 판결하면서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가려지게 됐다.

군 의문사에는 으레 ‘조작·은폐 의혹’이 뒤따른다. 군 수사가 완벽하지 않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김훈 중위 사건이나 허원근 일병 사건,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530GP에서 발생한 ‘530GP 총기 난사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방부는 ‘김동민 일병이 내무반 동료들을 향해 수류탄 1발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해 8명이 죽고 4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라고 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국방부의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조작·은폐 의혹을 잇달아 제기했다. 이 사건도 군 최대 의문사 중 하나다.

그렇다면 군은 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다 숨진 장병들의 진상 규명에 적극적이지 않을까. 이에 대해 한 예비역 군 수사관은 “군은 거대한 조직체다. 군 조직을 벗어나면 국가를 생각하지만 군 안에서는 철저하게 ‘조직 논리’가 작동한다. 사망 사건이 터지면 지휘관을 포함한 간부들이 줄줄이 문책을 당해야 하는데 이런 것도 의문사가 많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김광진 의원(민주당)에 따르면 군 수사를 총괄하는 국방부조사본부는 지난 30년간 한 건도 헌병대 수사 결과를 변경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1983년 1월~2013년 9월 발생한 군 사망 사고 중 유족이 이의를 제기해 헌병대 수사 결과가 변경된 사례가 일절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군대 내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군 수사기관의 발표가 절대적이고, 오류가 있어도 바뀌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군 의문사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7월 자해 사망자도 공무와 관련된 경우 순직 처리를 받을 수 있도록 국방부 훈령이 개정됐지만, 김훈 중위처럼 사망원인이 불분명한 경우 순직 처리 기준이 미비했다. 같은 해 8월 권익위는 육군본부에 김훈 중위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하라는 권고를 내렸지만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자 권익위는 최근 기존보다 진일보한 방안을 내놓았다. 국방부와 사전 협의를 거쳐 ‘군 사망자에 대한 조사 및 심사 실태 개선 방안’을 마련해 국방부와 육·해·공군에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핵심 골자는 순직 여부에 대한 재심사를 원심 처리 기관인 육·해·공군이 맡지 않고 상급 기관인 국방부에서 외부 민간 전문위원을 절반 이상 참여시켜 실시하고, 김훈 중위와 같이 진상 규명 불능 사망자도 순직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전공 사망 심사 제도를 개선한 것이다. 또 군 사망 사고 시 유족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사망 확인 주체에 헌병, 사고 발생 부대장 이외에 좀 더 객관적인 군 검찰관을 포함시켰다. 권익위는 또 2006년 10월1일 이전 사망자도 재심사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 개정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이다. 군이 수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권익위 제도개선총괄과 관계자는 “내년 9월30일까지 약 1년간의 유예 기간을 뒀다. 이때까지 국방부에서 순직 처리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육·해·공군과 토론을 거쳐야 한다. 유족의 고통을 해소한다는 생각으로 전향적으로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의문사 장병의 유족들은 명예회복을 위해 ‘순직 처리’와 ‘국립묘지 안장’을 원하고 있다. 고 김훈 중위 아버지인 김척 예비역 중장도 “이번 권고안은 군이 꼭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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