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데는 치질 치료에 효과 없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10.16 15:4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4기 환자는 수술이 일반적…배변 시간 5분 내로 줄여야

치질은 ‘민망한’ 신체 부위에 생기는 병이지만, 매년 국내의 질환별 수술 건수 1위 자리를 놓고 백내장과 다툴 정도로 흔하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치료 전과 후의 통증으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는 병이다. 대장·항문 전문가들은 통증을 줄이는 치료법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시간을 5분 이내로 줄이는 배변 습관이 가장 좋은 예방법이다.

최근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직장인 박영훈씨(49)는 치질로 오랫동안 고생했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속옷에 피가 묻어나와 불쾌했지만 곧 증상이 사라져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통증과 가려움증이 점점 심해져 병원을 찾았는데 치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화장실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 배변 시간을 늘려 치질에 걸릴 가능성을 높인다. ⓒ 시사저널 임준선
치질이란 항문에 생기는 질환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치핵, 치열(상처), 치루(염증) 등 여러 질환이 있지만 치핵이 가장 흔하다. 일반인 사이에서 치질은 치핵과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항문 내부에는 배변을 원활하게 돕는 쿠션처럼 부드러운 근육이 있다. 사람은 거의 매일, 평생 배변하므로 이 근육과 주변 혈관이 늘어지고 탄력을 잃어 덩어리로 뭉친다. 이 덩어리는 세월이 지날수록 아래로 처지며 결국 항문 밖으로 나온다. 혈관이 확장돼 출혈과 통증도 심해진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치질(치핵)인데, 항문 안에 있으면 내치질, 밖에 있으면 외치질이라고 부른다. 치질의 90%는 내치질이다.

치질 진단의 기본은 항문경 검사다. 대장 내부를 살피는 대장 내시경과 달리, 항문경은 의사가 괄약근을 벌려서 항문 내부를 들여다보는 기구다. 치질인지 확인하고, 출혈 정도도 살펴볼 수 있다. 환자가 진료실에 누운 자세에서 항문에 힘을 주기는 불편하다. 그래서 요즘은 환자가 화장실처럼 앉아서 진찰을 받을 수 있는 병원도 생겼다.

의사가 손가락을 넣어 항문 내부를 만져보는 검사도 있다. 치질이 오래되면 딱딱해져서 촉감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초기 치질은 그렇지 않아서 경험이 많은 의사가 아니면 치질을 구분해내기가 쉽지 않다. 대장·항문질환 전문 병원인 대항병원 이재범 외과 전문의는 “환자는 부끄럽고 수치심도 느끼지만 의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방법이 가장 정확한 진단법”이라며 “다른 항문 질환과의 감별을 위해 항문 초음파 검사나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통증 줄이는 치료법 연구 활발

치질 환자는 대부분 통증이 심하거나 피가 나와서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증상 정도와 치료 방법은 치질이 항문 밖으로 얼마나 돌출됐느냐에 따라 다르다. 통증은 거의 없어도 치질이 항문 밖으로 많이 나온 상태라면 질환 정도가 심한 것이다. 돌출 정도는 4단계로 나누는데, 1기는 치질이 항문 내부에만 있으며 가끔 피가 나는 정도다. 2기는 대변을 볼 때 치질이 항문 입구로 빠져나왔다가 배변 후 저절로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상태다. 치질이 항상 항문 밖으로 돌출되면 3기 또는 4기다. 돌출된 치질을 손으로 밀어 넣을 수 있으면 3기이고 그렇지 않으면 4기다.

치질 크기가 작거나 일시적으로 증상이 악화된 상태인 1기 치질은 약물로 치료한다. 약으로도 증상이 완화되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중단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치질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거나 진행을 막을 수 없는 점이 약물치료의 한계다.

치질은 배변 횟수에 비례해서 진행하므로 현재 1기 치질이라도 향후 2기 이후로 발전될 수 있다. 치질이 악화할수록 큰 수술이 되고, 수술 후 통증이 심하므로 초기에 약물보다 수술로 치료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의사도 있다.

3기 이상은 치질을 도려내는 수술이 일반적이다. 수술 후 1~2주가 지나면 불편감이 많이 개선되지만 통증이 심하고 회복하는 데 한 달가량 걸린다. 이런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비수술적 치료법을 개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치질을 의료용 고무줄로 묶는 시술(밴드 결찰술)이다. 고무줄에 묶인 치질은 7~10일 후 저절로 떨어진다. 20년 전에 개발된 이 방법은 100년 동안 행해온 수술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재발률이 수술에 비해 높다. 경우에 따라 출혈이 심하거나 치질 덩어리가 세균에 감염되는 합병증도 생긴다. 그래서 최근에는 환자의 나이가 많거나 지병 등으로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자칫 잘못 시술하면 통증이 심해지므로 아예 이 시술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사도 있다.

무슨 치료든, 환자는 수술 후 치질이 재발하지 않길 바란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항문 치료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한 번 치료로 치질에서 해방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의들의 시각은 다르다. 치질은 언제든지 생길 수 있으므로 되도록 통증 부담이 적은 수술로 치료하고, 추후 재발하면 또 수술받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장·항문질환 전문 병원인 서울송도병원 황도연 진료부장은 “수술로 많은 부분을 제거하면 항문의 배변 기능이 떨어져 쾌변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속옷에 변이 묻어나오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며 “과거와 달리 요즘은 수술을 간단하게 해서 빨리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치질 수술의 최대 단점은 통증이다. 워낙 수술 통증이 심해 최근에는 통증을 줄인 치료법이 개발되고 있다. 치질을 제거하지 않고 항문으로 튀어나온 치질을 내부로 집어넣어 고정하는 치료법(PPH; 원형자동문합술)이 대표적이다. 시술 방법이 간단하고 통증이 약하며 회복 기간이 짧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하는 치질 치료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국내에서도 2010년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되면서 널리 사용하는 치료법이다. 치질을 잘라내는 수술이 아니므로 재발 가능성이 있다는 게 단점이다.

치질에 있는 혈관(동맥)을 특수한 실로 묶어 치질의 크기를 줄이고 항문 밖으로 돌출된 치질을 위로 끌어올려 고정하는 치료법(HAL; 치핵동맥결찰술)도 있다.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많이 행하는 방법이다. PPH처럼 통증이 둔한 부위에서 시술이 이뤄지므로 통증, 상처, 출혈 등이 거의 없다. 입원 기간이 하루 안팎이라서 시술 당일 퇴원도 가능하다. 이재범 전문의는 “치료법에 대한 연구 시도는 모두 통증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2기 이하의 치질을 레이저 고열로 지져서 없애버리는 치료법도 개발됐다. 그러나 고열이 주변 조직, 특히 괄약근에 손상을 입히는 단점이 있다. 이는 배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거친 후 결정해야 한다.

ⓒ 일러스트 정현철
변비 있는 사람은 치질 걸릴 가능성 커져

치질은 배변 시간과 직결된다. 배변 시간이 길고 횟수가 많을수록 치질에 걸릴 가능성은 커진다. 게다가 대변을 볼 때 항문에 힘을 주면 치질이 항문 밖으로 돌출돼 증세가 악화한다. 따라서 화장실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행동은 항문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치질을 예방하려면 무엇보다 배변 시간을 5분 이내로 줄이라고 전문의들은 강조한다.

치질이 생기면 대변을 막아 변비가 생긴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사실은 그 반대다. 치질은 대변의 흐름을 막을 만큼 딱딱하지 않다. 변비가 있는 사람은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게 되고 항문에 힘을 주므로 치질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치질은 암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비와 함께 치질이 동시에 생긴 경우라면 다른 질환을 의심하고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장점막이 늘어졌거나, 염증이 있거나, 항문과 직장의 각도가 틀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젊은 사람에게 치질과 변비가 동시에 나타나면 암일 가능성은 작지만, 40~50대 이상은 직장이나 대장에 암이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암은 항문 질환과 증상이 여러모로 비슷하다. 예를 들어 직장암은 배변과 관련된 증상, 항문의 불편감 등이 나타난다.

치질은 혈액순환과도 관계가 있다. 과도한 음주나 육체적 피로는 혈관을 수축해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킨다. 이는 일시적으로 부종이나 혈전(피떡)을 유발하므로 장기적으로 치질의 원인이 된다. 날씨가 추운 계절에도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기므로 치질에 걸리는 사람이 늘어난다.

비데(여성 성기 또는 항문 세척기)는 치질이나 변비를 치료하지는 못한다. 일부 비데 회사는 비데로 치질을 치료하고 쾌변을 볼 수 있다고 광고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황도연 진료부장은 “항문 조직은 얼굴 피부만큼 부드럽고 예민한데, 얼굴을 물로 씻으면서 항문에는 휴지를 사용한다”며 “그만큼 상처가 생기기 쉬우므로 되도록 물로 세척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비데 물의 세기를 강하게 하거나 일부러 물이 항문 내부로 들어오게 한 후 대변을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변비나 배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비데가 없으면 대변을 보지 못하는 습관을 기를 뿐”이라고 강조했다.

변비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생활습관은 곧 치질을 예방하는 방법의 하나다. 의사들이 충분한 수분과 섬유소의 섭취를 강조하는 이유다. 특히 미역은 식이 섬유가 풍부해 장의 연동운동을 돕고 대장기능을 강화해서 변비 예방에 좋다.

설사도 치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설사 예방을 위해 자극이 심한 음식을 피하고 잘 씹는 식사습관이 중요하다. 적절한 섬유소 섭취는 설사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주므로 채소나 과일을 즐기는 식습관이 필요하다. 동물성 단백질(육류, 생선, 달걀, 우유 등), 술, 매운 음식, 카페인 함유 식품 등은 치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식사습관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좌욕, 배변습관 교정 등을 복합적으로 실천해야 치질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  

다음 호에는 지방간 편이 이어집니다.

▶ 시사저널과 정보공개센터가 주최하는 '제1회 정보공개청구 대회'에 좋은 자료를 보내주세요. 기사도 만들고 상금도 드립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