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째라’ 버티는 그들 25조3773억원, 언제 거둬들이나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10.1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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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납 추징금’ 정보공개 청구해보니…미납자 1위는 김우중 전 대우 회장

그동안 환수하지 못했던 엄청난 추징금을 향해 검찰이 전광석화처럼 공격했다. 방어하는 전직 대통령 일가는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고 백기를 들었다.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때가 1997년이었으니 무려 16년 만에 항복 선언을 받아낸 셈이다.

지난 9월10일 오후 3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서울중앙지검 앞에 섰다. ‘추징금’이란 세 글자가 보여준 파괴력을 증명하듯 취재진이 북적거렸다. 그는 90도로 상체를 숙여야 했다. 그러고 조금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가족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아버지인 전 전 대통령은 과거 연희동 자택 앞 골목에서 검찰의 수사를 조목조목 비판하며 당당하게 성명서를 읽은 적이 있다.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전직 대통령 일가의 사과에 박수했다”는 칼럼니스트도 있었지만 뒷맛이 영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29만원이 전 재산이라는 주장에 국민들이 비웃고 화를 내도 꿈쩍하지 않던 전 전 대통령이 검찰이 전 방위 압박을 가하자 그제야 떠밀리듯 미납 추징금 1673억원을 납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검사 9명을 포함해 총 52명으로 구성된 서울중앙지검의 ‘전두환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이 무려 90회에 걸쳐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니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불법재산 환수특위 최재성 위원장과 5·18역사왜곡대책위 강기정 위원장 등이 9월 20일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집 담에 ‘국민압류’라고 적힌 딱지를 붙이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1975년부터 안 내고 버티는 사람도

추징금을 이해하려면 먼저 ‘몰수’란 개념을 알아야 한다. 몰수는 범죄 행위를 통해 얻은 것이나 범죄의 대가로 얻은 것들을 직접 빼앗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몰수가 불가능할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몰수에 해당하는 돈을 대신 부과하게 된다. 이를 추징이라고 하며, 추징으로 받아내는 돈이 추징금이다. 범인의 범죄 행위로 발생한 부정한 이익을 환수하려는 취지다. 추징금의 공소 시효는 3년이다. 만약 3년 안에 추징하지 못하면 형벌로써 시효가 사라진다. 다만 이 기간 안에 1원이라도 추징하게 되면 시효가 3년씩 연장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를 대입해보면 추징금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다. 전 전 대통령은 1995년 내란죄와 반란죄 및 수괴 혐의, 뇌물 수수죄 등으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받았다. 1997년 12월 특별사면을 받아 형벌은 면제됐지만 추징금은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환수한 추징금은 532억원에 불과하다. 1672억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그나마 조금씩 추징금을 환수했기에 시효는 연장됐지만 2010년 10월 전 전 대통령 측이 추징금이라며 300만원을 납부하면서 공소시효가 또다시 3년 연장됐다.

29만원이 전 재산이라던 전직 대통령에게 1672억원의 추징금을 받아내는 데 걸린 16년의 세월은 현행 추징금 제도의 문제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추징금이 미납돼 있을 경우 제재하거나 납부를 독려할 적절한 수단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동안 추징금 미납자가 자신의 재산을 가족이나 제3자에게 물려줬을 경우 미납 추징금을 환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기자에게 “우리나라는 연좌제가 적용 안 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한 것도 이런 맹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최근 일명 ‘전두환법’의 국회 통과로 이런 재산도 추징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시사저널>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는 추징금에 주목했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이 세간의 관심사가 된 2013년,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또 다른 추징금 미납자가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대검찰청에 ‘미납 추징금 총목록’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대검찰청이 제공한 추징금 미제 목록에 따르면, 2013년 8월 말을 기준으로 총 2만1408건의 미납 추징금이 남아 있었다. 미납 추징금의 총액은 25조3773억원에 달했다. 미납 추징 금액이 1억원을 넘는 납부 의무 건수는 2260건으로 전체 건수 중 약 10%에 달했다.

추징금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전 전 대통령처럼 버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장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사람은 1975년 11월4일에 428만여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남 아무개씨다. 그를 포함해 10년 이상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납부 의무자만 현재 761명에 달한다. 5~10년 미납자도 4451명에 이를 정도로 많은 이가 ‘배 째라’ 식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추징금 액수를 뜯어보면 여기에도 차이가 있다. 미납 추징 금액이 가장 많은 상위 50건을 살펴보면, 이들이 내야 할 추징금 미납액은 24조1784억원으로 전체 미납 금액의 95.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상위 3인의 미납 금액이다. 상위 3건의 미납 추징금은 22조9470억원으로 전체 미납 금액의 90.4%를 차지하고 있다. 이 세 명은 징제 번호(납부자 번호)가 이어져 있고 조정 일자가 같기 때문에 한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23조원에 달하는 추징금을 안 내고 버티고 있는 이들은 누구일까.

환수하지 못한 ‘김우중 추징금’ 23조원

현재 언론에 추징금과 관련해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자료의 상위 세 명은 각기 다른 이름의 이 아무개씨들로 각각 19조991억원, 2조1502억원, 1조7865억원 등을 추징당했다. 이들은 김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모두 대우그룹의 임원을 지냈는데, 이들의 추징금이 일명 ‘김우중 추징금’이다.

대법원은 2005년 4월 해외 도피 중이던 김 전 회장을 제외한 강병호 전 대우 사장 등 임원 7명에게 분식회계 및 사기 대출, 불법 외환 거래죄를 적용해 23조35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는데 두 달 뒤 김 전 회장이 귀국하자 재조사를 거쳐 김씨를 포함한 6인에게 23조358억원의 추징금을 구형했다. 현재 840억원만 납부한 채 나머지는 미납한 상태다.

‘김우중 추징금’을 제외하면 미납 금액이 가장 많은 인물은 4위인 김 아무개 전 ㈜신아원 대표다. 김 전 대표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재산 해외 도피)으로 1998년 4월 구속됐는데 당시 국내 4개 은행에서 대출받은 1억8000만 달러 중 1억6000만 달러를 미국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았다. 김 전 대표는 1999년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과 연대 추징금 1964억원을 선고받았는데 이 중 2억원만 납부했다.

5위에 위치한 인물이 추징금 전액 납부 의사를 밝힌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6~10위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개인들이다. 특가법상 관세법을 위반하고 1280억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은 정 아무개씨가 6위, 재산 국외 도피 혐의를 받고 추징금 966억원을 미납한 김 아무개씨가 7위다. 2007년 7월 특가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박 아무개씨는 876억원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다. 금괴 밀수로 적발된 또 다른 박 아무개씨는 1997년 2월에 조정받은 757억원의 추징금을 지금까지 내지 않고 있다. 외국환 거래법 위반으로 기소되고도 520억원의 추징금을 미납한 또 다른 김 아무개씨가 10위다.

10위권 밖의 인물 중에도 주목할 만한 사람이 있다.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추징금 완납 의사를 밝힌 노태우 전 대통령은 230억원의 미납금을 보유해 14번째에 위치해 있다. 19번째는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에게서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추징금 150억원을 선고받은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이다. 권 고문은 지금까지 450만원 정도를 납부했을 뿐이다. 

※ 이 기사는 정보공개센터의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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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 분야
① 정보 공개  ② 정보 찾기

응모 대상
① 정보 공개 : 2013년 1월~12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자료
② 정보 찾기 : 2013년 1월~12월 정보공개 시스템에 공개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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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02)3703-7024 / khg@sisapress.com

시상 : 대상 300만원 및 상패, 우수상 100만원 및 상패,
           장려상 50만원 및 상패

주최 : <시사저널>·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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