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되어 승천하라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3.10.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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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소문 골목에 20년 넘은 생태탕 전문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탁자래야 열 개 남짓. 부부가 음식점을 운영했습니다. 뚝배기에 팔팔 끓여 내는 얼큰한 생태탕 맛이 기막혔습니다. 손님들은 줄을 서 10분, 20분을 기꺼이 기다렸습니다.

며칠 전 어떤 분과 그 식당을 찾았습니다. 생태탕집은 어디 가고, 낯설고 큰 간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옆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얼마 전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어디로 이전한 게 아니라 아예 장사를 접었다는 겁니다. 과거 주인의 하소연이 떠올랐습니다. “생태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값도 오르는데 걱정이에요. 그렇다고 생태탕 가격을 인상할 수도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후쿠시마 방사능 여파가 이 작은 가게까지 덮쳤습니다. 이곳 또한 생선 기피 현상으로 몇 달 동안 파리만 날렸다는 것입니다.

2001년 핀란드에 있는 노키아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호수 가운데 자리한 ‘노키아 왕국’은 해가 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 일행에게 브리핑을 한 홍보 담당 여자 임원은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습니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같잖게 보였겠지요. 삼성은 당시 세계시장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때니까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노키아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세계 5개 증권사에 상장된 시가총액은 한때 200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브랜드 가치 294억 달러로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그런 노키아가 몰락했습니다. 휴대전화 부문 경영권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넘기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한때 ‘오바마 폰’으로 불리며 잘나가던 블랙베리 또한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 인수 후보로 삼성, LG 등이 거론되는 걸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구멍가게와 먼 나라 두 공룡 기업. 아무 관계가 없지만 경영 측면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역사나 명성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식당 사장은 재료값이 뛰고 방사능 공포가 밀려왔음에도 한숨만 쉬다 폐업하고 말았습니다. 눈치 빠르게 새 메뉴를 개발하거나 업종을 바꿨다면 어땠을까요. 노키아와 블랙베리는 1등의 단맛에 취해 변화를 깨닫지 못했거나 아예 눈감았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경쟁자들은 까마득히 앞서 가 따라잡을 수 없게 됐습니다. CEO와 임직원의 자만심이 두 회사를 망친 겁니다.

<시사저널>은 창간 24주년을 맞아 분야별로 ‘차세대 리더’를 선정했습니다. 2008년부터니까 올해로 여섯 번째입

니다. 우리는 이들이 한국의 미래를 이끌 인물들이라는 점에 주목합니다. 개중에는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굳건한 입지를 구축한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화려한 꽃을 피우기 위해 정진하고 있습니다. 이무기에 머무느냐, 용이 되어 승천하느냐는 각자의 노력과 능력, 운에 달렸습니다. 누군가는 낙오자가 될 겁니다. 우리는 차세대 리더로 선정된 분들이 노키아·블랙베리처럼 어느 순간 지는 유성이 아니라 오래도록 빛나는 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시사저널>은 창간 이후 정론을 펼치려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올곧은 길을 걷기 위해 마음을 다잡을 것입니다. 더불어 ‘차세대 리더’ 선정에 그치지 않고 이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켜볼 것입니다. 이들은 소중한 자산이자 ‘미래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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