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공신’ 가는데 막을 자 누구냐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0.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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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근혜정부 출범 후 임명된 공공기관장 분석

공공기관장 인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시사저널>이 295개 공공기관의 경영공시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박근혜정부 출범 후 기관장이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은 모두 63곳으로 나타났다. 아직까지 상당수 공공기관이 수장 인선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이 중에서 기관장이 공석인 공공기관이 15곳이나 된다. 12개 공공기관은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올해 안에 기관장의 임기가 끝나는 공공기관도 21곳에 이른다. 

최근 새누리당이 대선 승리에 기여한 당내 인사 수십 명을 공공기관에 취업시켜달라며 청와대에 명단을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당시 서병수 사무총장이 ‘추천 명단’을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명단에는 지난 대통령 선거(대선)에서 공을 세운 친박계 인사들의 이름이 상당수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의 한 인사는 “대선 공로자들 중에서 전문성 있는 인사를 중심으로 명단을 작성해 올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인선 행태, 지난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아 

<시사저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러한 여당의 뜻이 공공기관장 인선에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공공기관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이는 국민과 다음 정부에 큰 부담이 되는 것으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나타난 공공기관장 인선 행태는 지난 정부 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 첫 공공기관장 인선부터 ‘보은 인사’ 논란을 불러왔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한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던 고학찬 윤당아트홀 관장이 3월15일 예술의전당 사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윤당아트홀은 박 대통령의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 <퍼스트레이디>를 공연해 화제가 된 곳이다.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국제협력단도 도마에 올랐다. 5월13일 두 기관의 수장으로 유현석 경희대 교수와 김영목 전 뉴욕 총영사가 각각 임명됐다. 유 이사장은 국가미래연구원에서 활동하며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관련 대선 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외교안보추진단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김 이사장은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특보를 맡았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는 최광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5월24일 임명됐다. 2007년 대선 당시 비선 라인에서 박 대통령을 자문해온 것으로 알려진 최 이사장은 이듬해인 2008년 총선 때 부산 사하갑 지역에 공천을 신청하며 정계 입문을 노리기도 했다. 같은 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을 맡게 된 곽병선 전 경인여대 총장은 대선 때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교육추진단 단장을 맡은 데 이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간사를 지냈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박 대통령과의 인연이 남다르다. 5월30일 KDI 수장에 임명된 김 원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장수(9년 3개월)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회장의 아들이다. 같은 날 임명된 옥동석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은 박근혜정부의 조직 개편을 주도한 인물이다.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으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정부개혁추진단장을 맡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으로도 활동했다.

6월 들어 임명된 정창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3일), 정현욱 (재)명동·정동극장 극장장(7일), 김한욱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7일), 박계배 (재)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28일) 등도 대선 캠프 출신이다. 정창수 사장은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지역발전추진단 추진위원을 맡았고, 정현욱 극장장과 박계배 이사장은 같은 위원회 ‘문화가 있는 삶 추진단’에서 활동했다. 김한욱 이사장은 제주특별자치도 국민통합행복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7월17일 임명된 손범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은 친박 정치인이다. 2008년 총선에서 경기도 고양시 덕양갑에서 당선된 손 이사장은 지난해 총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했다. 7월29일 임명된 손양훈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은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지속가능국가추진단 추진위원으로 활동했다.

김기춘 실장 입성 후 정치권 출신 늘어나

인사위원장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허태열 전 실장에서 김기춘 실장으로 교체된 이후 이뤄진 공공기관장 인사는 모두 32건으로 조사됐다. 김 실장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허 전 실장이 올린 공공기관 인사 방안을 전면 재검토해 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검증을 더 철저히 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는데, 현재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허 전 실장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정치권 인사들의 진출이 늘어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권 내부 정보에 밝은 한 인사는 “당에서 인사 명단을 보냈는데도 계속 불만이 나오니까 김 실장이 조율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 실장 체제에서 인선된 공공기관장 중에서 허영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장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냈다. 8월29일 임명된 허 원장은 지난해 총선 때 경남 창원시 마산갑 지역 출마 선언을 했다가 공천에서 고배를 마셨다. 같은 날 임명된 김규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장은 한때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정수장학회 출신들로 구성된 ‘상청회’의 감사를 역임했다.

이상무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은 9월16일 임명되기 전부터 구설에 올랐다. 국민행복추진위원회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을 맡아 박 대통령의 농촌·농업 분야 대선 공약을 진두지휘한 이 사장이 한국농어촌공사의 수장으로 이미 내정된 것으로 의심받을 만한 내부 문건이 언론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박보환 전 의원이 9월23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임명된 것도 논란을 불러왔다. 2008년 총선 때 경기도 화성을 지역에서 당선된 박 이사장은 지난해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대선 때는 유세지원단장을 맡았다.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최경수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일찌감치 내정설이 나돌았다. 9월26일 임명된 조석 사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지낸 관료 출신이다. 10월1일 임명된 최경수 이사장은 박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참여한 대표적인 금융인 중 한 명이다. 같은 날 친박 정치인 박영아 전 의원이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에 임명됐다. 2008년 총선에서 서울시 송파갑에서 당선된 박 원장은 지난해 총선에서는 공천에서 탈락했다. 대선 캠프에서는 과학기술진흥특별본부장을 맡았다. 

최연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도 정치권에 몸을 담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는 대전시 서구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10월2일 사장 취임 직전까지 새누리당 대전시당 서구을 지역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0월7일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도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최 사장과 김 사장의 경우 임명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 사장은 1차 공모에서 최종 후보 3인에 들지 못했는데 재공모 과정을 거치면서 최종 후보에 올라 사장으로 낙점됐다. 김 사장은 임원추천위원회로부터 3명의 후보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사장으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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