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용 PC 잃어버리고, 제자는 특혜 채용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10.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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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해이 심각한 국책연구기관들 <시사저널>, 총리실·기관 감사 보고서 단독 입수

국민의 정부 시절이던 1999년, 정부는 국책연구기관(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소속을 각 부처 산하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독립 기구인 경제인문사회연구회로 바꿨다. 정부 부처의 아전인수식 입김을 막아 국책연구기관의 연구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 4대강 사업 논란에서 보듯 정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운 국책연구기관의 위상 확보는 여전히 요원한 숙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국책 연구기관의 독립성 침해 논란 못지않게 국책연구기관 임직원들의 예산 낭비와 부적절한 업무 처리 등 기강 해이도 잊을 만하면 도마에 오르는 논란거리 중 하나다. 이는 자율성을 핑계로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내·외부의 감시 체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인 국책연구기관 임직원의 기강 해이 실태를 보여주는 국무총리실과 연구기관의 내부 감사 보고서를 단독 입수했다. 이 보고서에는 국책연구기관이 부실 관리로 업무용 컴퓨터를 무더기로 잃어버렸다는 것과 불법 노트북 입찰, 제자 특혜 채용 등에 관한 내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 일러스트 김세중
국토연구원, 노트북 구매 입찰 과정에 ‘불법’

<시사저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의원(민주당)을 통해 입수한 국무총리실 법무담당관실과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의 내부 감사 보고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사라진 업무용 컴퓨터’와 관련한 부분이다. 해당 감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9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전산 자원 관리·운영 실태와 관련해 별도 감사위원회를 꾸려 2차 감사를 벌였다. 같은 해 6월 실시한 1차 내부 감사가 미진하다는 이유로 국토연구원 노조가 2차 감사를 요구한 것이다.

국토연구원의 내부 감사 보고서에는 이들의 황당한 업무 실태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 기관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구매한 노트북과 데스크톱 등 업무용 컴퓨터 78대가 망실(亡失)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1차 감사 때 드러났던 업무용 컴퓨터 망실분 32대보다도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감사위원회는 컴퓨터 망실로 인한 연구원의 자산 손실을 1억3837만원(최초 장부 가액)으로 추정했다.

특히 국토연구원은 내부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전산 자원 관리를 부실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위원회는 전체 망실분 78대 중 20대를 박 아무개 전 원장의 ‘구두 지시’로 2010년 특정 사회복지단체에 기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국토연구원의 물품 관리 규칙 제11조에 따르면 재활용할 수 없는 경우 원장의 결재를 얻어 폐기 또는 매각 처분하도록 돼 있다. 단순 구두 지시만으로 외부 단체에 기증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다.

또 컴퓨터가 파손됐다는 이유로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단 폐기하거나 퇴직자의 컴퓨터를 돌려받지 않아 잃어버린 사례도 있다. 감사위원회는 국토연구원이 업무용 컴퓨터의 지급 명부나 회수 명부 같은 관리대장도 작성하지 않고, 전산 자원의 현물 조사도 정기적으로 시행하지 않는 등 전산 자원 관리에 총체적 부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산 자원 구매 과정의 불법도 감사에서 드러났다. 국토연구원 감사실의 1차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4월 국토연구원은 조달청 입찰을 통해 직원에게 지급되는 업무용 노트북 70대(당초 소요 예산 9800만원)를 구매했다. 하지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저가 입찰 방식으로 정해놓고도, 내부 결재 과정에서는 조달청 공고와 구매 시 제한적 최저가 입찰 및 낙찰 하한율(90%)을 적용해 특정 업체에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국토연구원 입찰에는 ㅇ통신, ㄷ산업, ㅍ사 등 총 3개 업체가 참가해 ㅇ통신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이에 국토연구원 감사실은 “관련 법률에 따르면 지역 제한을 할 경우 시·군 단위로 해서는 안 된다”며 “하지만 (공고 과정에서 시·군 단위로 업체를) 제한하면서 3개 업체 외에 다른 업체가 참여해 연구원에 유리한 낙찰 가격을 제공할 기회를 차단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감사실은 국토연구원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입찰 심사를 할 경우 낮은 가격을 제시한 ㄷ산업이 업체로 선정되는 것이 타당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입찰 과정이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ㅇ통신이 공급업체로 선정돼 연구원에 333만5000원의 피해를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 ㅇ통신은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원과 납품 거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연구원 대외협력팀 관계자는 “전산 자원 망실과 입찰 과정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그동안 강도 높은 자체 감사를 해왔다”며 “이 과정에서 관리 실태를 점검했고 제도 개선도 진행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전산 자원 망실은 감사 보고서에서는 78대로 규정돼 있지만 망실 당시에는 내구연한이 지나 실제 망실된 컴퓨터는 10대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에 위치한 국토연구원(왼쪽)과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경제인문사회연구회. ⓒ 시사저널 구윤성
동료 교수들을 초빙연구위원으로 고용

국토연구원 부설 건축도시공간연구소는 기관장이 제자를 부적절하게 채용해 국무총리실 법무감사담당관실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2년 국무총리실(총리실)의 해당 연구소에 대한 ‘특별감사 지적 사항 처분 요구서’ 등에 따르면, 손 아무개 전 소장은 소장 재직 당시, 대학교 제자이자 자신이 논문 지도교수를 맡았던 ㅎ씨와 재직 대학 출신인 ㅅ씨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데도 모집 기간을 임의 단축해 공정한 채용을 저해했다. 또 직원 채용 필기시험을 적법한 이유 없이 생략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손 전 소장은 ㅎ씨와 ㅅ씨 채용 당시 직접 면접위원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재임 중 실시된 다섯 차례 면접 전형 중 네 차례나 합격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외부 위원 2명씩을 면접위원으로 선정한 것으로도 드러났다. 특히 손 전 소장은 ㅎ씨가 채용 당시인 2012년 3월경 제출한 박사 학위 논문에 대해 내부에서 표절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를 일축한 뒤, ㅎ씨의 논문을 수정하게 해 연구소의 정당한 채용 업무 수행을 방해했다고 총리실로부터 지적받았다. 손 전 소장은 또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에 근무한 동료 교수들을 초빙연구위원으로 고용한 사실도 확인됐다.

총리실은 감사 이후 직원 채용, 운영 부적절 사례 등 총 19건을 지적했고, 손 전 소장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해임심사위원회를 열 것을 상급 기관인 국토연구원에 통보했다. 하지만 손 소장은 해임 절차를 앞두고 사직서를 냈고, 연구원은 이를 수리하는 것으로 사실상 사태를 마무리했다.

손 전 소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총리실의 감사 결과를 전면 반박했다. 손 전 소장은 “국무총리실 감사는 (나에게) 불만을 품은 직원들이 (악의적인) 투서를 보낸 것이 발단이 된 것”이라며 “모집 기간 단축은 소장 재량이고 필기 시험 생략은 전임 소장 때부터 한 일이다. 직원과 초빙연구위원 채용 과정에 특혜는 일절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ㅎ씨의 논문을 수정하도록 한 것은 맞지만 해당 대학에 질의한 후 고친 것으로,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은 없는 사안”이라며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업무 처리 과정에서 부적절한 사례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반면 연구소 측은 “국무총리실 감사 내용처럼 채용 과정 등에서 절차상의 문제점이 있었다”면서 “감사 결과를 수용해 추후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고 밝혔다.

본지가 입수한 감사 보고서 및 관련 자료. ⓒ 시사저널 전영기
업무용 차량은 ‘개인용’?

공적 자산을 함부로 사용해 예산을 낭비하는 국책연구기관 임직원의 행태는 단골 메뉴로 올라오는 부적절한 관행 중 하나다. 국책연구기관을 지도·감독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연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위 임원의 업무용 차량 무단 사용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김기식 의원실이 연구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구회의 박영근 사무총장이 관련 규정을 무시한 채 업무용 차량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행정부 제도총괄과의 ‘공용 차량 관리·운영 매뉴얼’(제10조 제2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공용 차량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즉 업무용 차량으로 출퇴근할 수 없으며, 일시적으로 직원 동호회 지원이나 대중교통과 연계한 직원 출퇴근 지원 등 차량의 당초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기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박 사무총장은 지난 2011년 10월 임명된 후 2013년 9월까지 2년가량 관련 규정에 어긋나게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341차례에 달한다고 김기식 의원실은 밝혔다. 이 가운데 출퇴근 목적으로 총 195차례(출근 141회, 퇴근 54회)나 업무용 차량을 이용했다. 또 금요일에는 업무용 차량을 이용해 업무 시간 종료 전 귀향을 이유로 공항이나 역까지 이동하고, 월요일에는 귀성 후 공항에서부터 업무용 차량을 타고 이동한 경우도 100차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명확한 사유와 기타 개인 목적 이용은 46차례였다. 특히 업무 시간 중에 병원 진료를 이유로 8차례, 개인 집안일을 이유로 2차례 사용했고, 구치소 면회(1차례) 때도 업무용 차량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1월4일에는 박 사무총장의 부인이 서울 자택에서 광명역까지 이동하는 데 업무용 차량을 이용한 것으로 차량 운행일지를 통해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연구회 홍보실장은 “사무총장의 차량은 공용 차량이기보다는 전용 차량으로 규정돼 있다”면서 “사무총장 대우를 연구기관 원장급 수준으로 승격했기 때문에 전용 차량을 출퇴근용으로 이용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업무용 차량의 개인적 이용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은 없는 것으로 안다. (사무총장이) 잘못인지 알고 이용했겠느냐”라고만 말했다.

이에 대해 김기식 의원실 관계자는 “공용 차량이냐 전용 차량이냐는 논란보다 업무용 차량을 개인 출퇴근과 고향 귀경길 등에 사용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이번 국감에서 사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지난해 국정감사와 감사원 특정감사에서도 당시 연구회 이사장이 법인카드를 부당하게 사용한 점과 연구회가 예산 운영을 방만하게  해 예산을 낭비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책연구기관의 기강 해이가 도를 넘은 데 대해 전문가들은 연구기관의 자정 능력 부족과 임직원들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9월 현재 연구회 소속 26개 연구 관련 기관의 감사실 부서원은 평균 1.6명(감사실 책임자 제외)에 불과하다. 육아정책연구소의 경우 아예 감사실조차 없다. 정밀한 감사는 고사하고 상시적인 감시 체계가 가동될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연구기관의 늑장 대응과 솜방망이 처벌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국토연구원의 경우 내부 감사를 통해 업무용 컴퓨터 실종이나 구매 과정의 불법까지 드러났지만, 노동부 질의와 원장 공석 등을 이유로 2차 감사가 끝난 지 10개월 가까이 징계를 미뤘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열린 인사위원회에서는 담당 직원 2명에 대해서만 견책하고 관련 부서장들을 엄중 경고하는 데 그쳤다.

김기식 의원은 “국책연구기관의 예산 낭비와 도덕적 해이 문제가 도를 넘었다”면서 “공과 사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 당사자들과 관리감독을 제대로 못한 책임자들에 대한 엄정한 조치를 하는 한편 국무총리실 등 관련 기관에서 제기된 문제 전반에 대해 재조사를 하고 시정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의원은 “연구기관의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전산자원 관리 실태를 포함한 전반적인 운영 관리 실태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면서 “차제에 연구기관에 대한 감사 체계를 정비해 자정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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