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한 것은 살고 진부한 것은 죽는다
  • 이규대 기자·조은혜 인턴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0.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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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잡지의 원형 <타임> <뉴스위크>의 변화와 몰락…디지털과 손잡지 않으면 생존 어려워

진보한 잡지는 박수를 받았다. 진부한 잡지는 외면당했다. 잡지는 대중의 욕망으로부터 뒤처지는 순간 존립을 장담하기 어려운 매체다. 한때 막대한 발행 부수를 자랑했던 잡지일지라도 순식간에 폐간의 운명이 찾아오곤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잡지의 목록은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상황은 이제, 잡지가 진부해지기도 외면당하기도 훨씬 쉬운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쇄 매체는 ‘디지털’과 ‘인터넷’이라는 막강한 경쟁자 앞에서 끊임없이 위축되고 있다. 시사주간지 역시 마찬가지다. 2000년대 이후 시사주간지 시장을 언급할 때 ‘위기’라는 단어를 빠뜨릴 수 없게 됐다. 지금 각국의 시사주간지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화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타임> 그리고 <뉴스위크>. 1923년, 1933년에 창간된 미국의 대표 시사주간지다. 현재 전 세계에서 발간되는 시사주간지의 원형으로 꼽힌다. 영향력도 막강했다. TV라는 뉴미디어가 보급되면서 인쇄 매체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게 됐을 때도 두 시사주간지는 건재했다. 세계정세와 시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유력한 도구로 꼽혔다. <타임>과 <뉴스위크>는 세계 잡지 문화의 트렌드를 선도해온 ‘잡지 왕국’ 미국의 얼굴과도 같았다.

여전히 <타임>과 <뉴스위크>는 제대로 ‘얼굴’ 노릇을 하고 있다. 물론 예전과는 다른 의미에서다. 지금 그 ‘얼굴’에는 고통이 가득하다. 오늘날 시사주간지 시장 전반이 봉착한 난관을 드러내고 있다. 영원히 찬란한 영광을 이어갈 듯 보였던 이들 잡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세계 잡지 저널리즘의 최전선인 미국을 들여다보면 시사주간지의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

충격이었다. 지난해 12월 <뉴스위크>가 오프라인 잡지를 폐간했다. 이후 기사는 온라인 페이지에서만 유료화해 제공됐다. 8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시사주간지가 ‘종이’를 버린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세간에 인식됐다. <뉴스위크>의 마지막 종이 표지에는 ‘#마지막 인쇄판(#Last Print Issue)’이라는 문구가 적혔다. 트위터에서 쓰는 특수문자 ‘#’을 덧대 온라인 발행에의 의지를 내비쳤다.

<뉴스위크>는 왜 ‘종이’를 포기해야 했나

“시사 잡지: ‘디지털 미래’를 받아들이다”. 여론조사 기관 퓨 리서치센터가 매년 발표하는 PEJ (Project for excellence in Journalism) 보고서의 2013년판 제목이다. 2012년 시사주간지 시장을 분석한 결과가 한 문장에 담겼다. 오프라인 잡지를 폐간하고 온라인에 주력하기 시작한 <뉴스위크>는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인 셈이다. 왜 다른 주간지도 아닌, 굴지의 전통을 지닌 <뉴스위크>가 종이 발행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다른 시사주간지의 상황은 어떠하며, 이들도 곧 종이 발행을 포기하는 수순으로 나가게 되는 것일까.

PEJ 보고서는 미국 미디어 환경의 과거와 현재를 실증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공신력을 인정받는다. 2013년 보고서에서도 미국 6대 시사주간지와 관련된 상세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우선 시사주간지의 가장 직접적인 수익원인 잡지 판매를 보자. 가판대 판매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2011년 대비 16%가 줄었다. 특히 <타임>의 경우 무려 27%의 감소율을 기록했다. 2008년만 해도 11만부 정도였던 것이 2012년엔 6만부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줄어들었다.

정기 구독자는 2010년까지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가 최근까지는 정체 국면이 이어진다. 2008년 이후 <타임>이 320만명 수준을 유지한 데 반해 <뉴스위크>는 5년 사이 절반 가까운 정기 독자를 잃은 점도 눈에 띈다. 정기 독자 보호 측면에서 전통적인 ‘강자’들의 명암이 완전히 엇갈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광고 수익 감소다. 각 시사주간지의 광고 페이지 수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감하고 있다. 2012년에도 전년 대비 10.4%가 줄었다. <뉴스위크> 역시 10여 년 사이에 광고 페이지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보고서에서는 “시사주간지는 한때 교육 수준이 높은 상류층 독자에게 각광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엔 다른 웹사이트를 통해 얼마든지 ‘디지털 타깃팅’이 가능하므로, 광고주들은 더 이상 잡지의 브랜드를 원하지 않게 됐다”고 분석했다. 구글·야후·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공간이 잡지의 브랜드에 비해 훨씬 매력적인 광고처가 됐다는 뜻이다.

<뉴스위크>의 경우 가판 판매와 정기 독자, 광고가 모두 급전직하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프라인에서 어떤 수익도 기대할 수 없었던 셈이다. 이로 인해 심각한 경영난이 빚어졌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해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시사주간지가 바로 <뉴스위크>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80년 이상 종이판을 발행하며 쌓은 ‘브랜드 가치’까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속내다.

‘디지털 미래’를 받아들이다

현재 종이 발행을 유지하는 다른 시사주간지들도 광고 시장에서의 회생은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기 독자를 활용한 수입원 쪽에는 가망이 있다고 본다. <타임>은 더 이상 독자를 유치하는 것으로는 수익을 늘리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구독료 인상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여러 군소 시사주간지는 전통적인 ‘강자’들의 위축을 틈타 정기 독자가 조금씩 상승하는 점에 주목한다. 비록 <뉴스위크>는 ‘종이’를 포기했지만, 오프라인의 독자는 여전히 미국 시사주간지 ‘미래’의 일부인 것이다.

비록 <뉴스위크>만큼은 아닐지라도 <타임> 역시 위기에 휩싸였다. 오프라인 잡지를 통한 전통적인 수익원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서는 “<타임>은 종이 잡지 중 마지막으로 남은 대형 종합 시사주간지다. 그러나 <타임>의 2012년 실적을 보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가판 판매, 정기 독자, 발행 부수 등 모든 면에서 감소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시장을 ‘쌍끌이’하던 두 거인이 차례로 무너지는 형국이다. 이에 대한 미국 시사주간지의 답은 역시 ‘디지털’이다. 웹사이트·스마트폰·태블릿PC에 적합한 새 형식의 콘텐츠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를 통해 길이와 깊이가 있는 읽을거리가 디지털 공간에서 각광받을 가능성을 탐색 중이다.

미국 투자회사 VSS(Veronis Suhler Stevenson)의 예측에 따르면, 향후 수년간 광고 매출과 잡지 매출은 계속 줄어들게 된다. 반면 2012년 현재 13억 달러 수준인 디지털 매출은 2016년 두 배 이상 뛰어 29억 달러가 될 전망이다. 전체 수익 중 비중도 6.6%에서 14.5%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시사주간지 시장에서 디지털 매출의 비중과 중요도가 점차 높아진다는 것이다.

2012년 7월 <타임>의 최고경영자 로라 랭은 “<타임>은 더 이상 주간지 출판사가 아니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성장해가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타임>은 웹사이트가 사용자의 사용 기기에 맞게 자동으로 변환되도록 사이트를 개편했다. 독자들이 <타임>의 웹페이지에 머무르는 횟수와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스마트폰·태블릿PC 등 각 매체별로 강점이 있는 콘텐츠를 구분해 따로 부각시키는 전략도 구사한다. 동영상이나 소리 등이 결합된 형태의 기사도 게재한다. 종이 지면을 벗어난 ‘디지털 멀티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 미래를 대비한다. 그러면서도 ‘커버스토리’ 등 핵심 콘텐츠는 유료 구독자에게만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정기 독자를 유지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얼마나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2년부터 4년간 <타임>에서 편집자로 근무했던 한 저널리스트는 “디지털 시대가 찾아오면서, 미디어의 분열은 불가피해졌다. <타임>이 (과거처럼) 광범위한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커질수록 좋다(bigger-is-better)’는 철학을 바탕으로 웹페이지 방문 수를 늘리려는 시도가 철저히 개인화된 온라인 세상의 속성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여전히 장밋빛 ‘디지털 미래’는 출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래는 분명히 디지털에 있다는 것이 미국 시사주간지 시장의 비전이다. 각 매체마다 수많은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타임>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모바일 버전으로만 특별판을 제작·공급했다. <애틀랜틱>은 태블릿PC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경제 뉴스 매체 <쿼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시사주간지를 만들어온 노하우를 살려 새로운 환경에 맞는 콘텐츠 제작 실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사주간지의 미래로 디지털이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온라인 광고 시장 때문이다. 이것 역시 시사주간지 ‘미래’의 일부다. 오프라인 광고 시장에서 빠르게 잃어가는 수익원을 온라인 영역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시사주간지 콘텐츠는?

결국 시사주간지 ‘미래’의 핵심은 어떻게 새로운 수익 모델을 창출하느냐에 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뉴스위크>가 디지털로만 발행된 후 지난 4월, 당시 <뉴스위크>를 소유하고 있던 IAC의 배리 딜러 회장은 “<뉴스위크>를 인수한 것은 실수였다”고 회고했다. <뉴스위크>는 8월 또다시 온라인 매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를 출간하는 IBT미디어에 팔렸다. <뉴욕타임스>의 미디어 필자인 데이비드 카는 “이런 상황에서 시사주간지를 운영하는 것은 잔인한, 아마도 이길 수 없는 도전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분명 존재한다. 언론사의 취재 여건이 점점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디지털 저널리즘의 새로운 형식이 등장해 대중에게 각광받는 것이 오히려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다. 각종 시청각 정보의 다채로운 사용, 빅 데이터를 활용한 정밀한 보도, SNS를 활용한 취재 기법 등이 새로운 형태의 탐사보도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디지털 미래’가 오고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그곳에는 혼란과 가능성이 함께 있다. 언제나 그랬듯, 살아남는 것은 독자의 요구에 충분히 부응할 수 있을 만큼 ‘진보’한 잡지가 될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돋보이는 약진 


미국의 양대 시사주간지가 휘청하는 데 반해, 영국의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상대적으로 순항한다. 디지털 독자의 수를 성공적으로 늘려나가면서 오프라인 독자도 크게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2012년 9월 현재 <이코노미스트>는 세계적으로 160만부 상당의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이 중 9%에 해당하는 14만명의 독자가 디지털 버전으로 <이코노미스트>를 구매했다. 상당히 높은 수치다. 눈길을 끄는 점이 있다. 전체 구독자 중 25%가 종이 잡지와 디지털 잡지를 동시에 읽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코노미스트>를 오프라인으로 구독하거나 웹에서 구독하면 모바일 기기에서 무료로 볼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아날로그 독자를 상당수 디지털 독자로 전환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러한 판매 정책은 국내 다수의 언론사도 시도하고 있다.

콘텐츠 면에서도 비결이 있을까.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 영국 발행인은 ‘영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사건들을 다룬 것, 시사주간지 내용이 건조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설의 폭과 개성을 강조한 것, 독자 폭을 넓히기 위해 재정·사업·경제 이외의 정보도 수록하고자 노력한 점’ 등을 들었다. 대상 독자를 확대하기 위해 내용 면에서도 여러 시도를 해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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