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따르다 개미 허리 끊어질라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3.10.2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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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 기간 순매수 기록…‘1등주 폭식’일 뿐 전체 시장 온기와 무관

“신흥국에 대한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도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집중 매수하고 있다는 데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이 신흥 시장 중에선 가장 안전한 곳이란 방증이다. 외국인 매수세가 잠시 주춤할 수는 있지만 이런 추세가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때 수십조 원을 굴리던 ‘미스터 펀드’ 구재상 케이클라비스투자자문 대표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랜 기간 비관론이 지배해온 주식시장에 단비처럼 ‘외국인 구원투수’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기 때문인 듯했다.

최악의 불황으로 구조조정에 나섰던 여의도 증권가에선 다시 한 번 ‘증시 르네상스’가 돌아올 것이란 희망가가 울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쪽은 개인 투자자다. 외국인과 기관에 이어 뒷북 투자에 나섰다 쓴맛을 본 적이 한두 번이던가. “이번에도 뒷북이라면?” 이들의 고민이 깊어간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외국인의 순매수 행진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냐다. 종전 기록은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1월20일부터 3월3일까지의 34일이었지만 올해 8월23일부터 10월17일까지 35일간 순매수로 기록이 경신됐다(10월17일 기준).

순매수 금액도 11월17일 기준으로 12조1228억원에 달해 1998년의 3조2506억원에 비해 4배 가까이 된다. 유가증권 시장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도 35%를 돌파했다. 2007년 7월 이후 6년 3개월 만에 최고치다. 외국인 비중은 2004년 4월에 43.9%로 정점을 찍었다.

10월17일 외국인 투자자들은 35일째 ‘바이 코리아’ 행진을 이어가 15년 만에 최장 순매수 기록을 갈아치웠다. ⓒ 연합뉴스
삼성전자·SKT·현대차 등 선도 종목 매집

미국의 양적 완화(국채 매입 등을 통해 시중에 직접 돈을 푸는 경기 부양 정책) 축소 우려 등 글로벌 증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외국인이 유독 한국 주식을 사들이는 이유는 뭘까. 우선 한국 시장이 신흥 시장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기초 체력(펀더멘털)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 경제가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있는 데다 각종 경제지표도 뚜렷한 개선 사인을 보인다는 것.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는 국내 기업의 주가가 저평가됐다는 인식도 외국인의 매수를 자극하는 요인이다.

동양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 증시의 12개월 예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8.7배다. 선진국(14.1배)이나 신흥국(10.3배) 평균과 비교되는 수치다. 주가순자산비율(PBR)도 한국 증시(1.07배)가 선진국(1.85배)이나 신흥국(1.37배)에 비해 상당히 낮다. 기본 체력에 비해 그동안 주가가 대접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성진 현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더 사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코스피지수 1950 이하에서 들어온 자금은 2050 돌파를 전후해 차익 실현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2000을 넘긴 상황에서도 많은 자금이 유입됐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장기 보유 성격이란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집중 매수하는 종목에는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대형주란 공통점이 있다. 거래량이 풍부해 매수·매도가 쉽고 향후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선호한 종목은 분기당 10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는 삼성전자다. 지난 10월10일부터 16일까지만 집계해도 총 3724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우선주도 411억원어치 사들였다. 그다음은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현대자동차, 네이버, OCI 순이다. SK하이닉스를 빼놓고선 각 분야에서 대표 선수급이다. 외국인은 코스닥 종목도 사들이고 있지만 유가증권 시장 종목에 비해선 미미한 수준이다.

시장에선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박세원 KB투자증권 연구원은 “2003년 이후 한국 관련 4대 대형 펀드의 합계 평균을 통해 분석해보니 외국인이 추가로 한국에서 매수할 수 있는 여력이 3조원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배재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도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예년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장기적으로는 외국인 순유입 추세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미들 “왜 내가 산 종목만 떨어지지?”

개인 투자자의 움직임은 외국인과 정반대다. 연일 보유 주식을 내다팔고 있고 주식형 펀드에선 환매가 줄을 잇고 있다. 지금을 ‘매도 타이밍’으로 잡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23일부터 10월17일까지 개미들이 판 주식만 5조3217억원에 달한다. ‘외국인의 힘’ 덕분에 유동성 랠리가 펼쳐지고 있지만 코스피지수가 천장을 뚫고 올라가지 못하는 배경이다. 외국인이 주식을 사면서 주가가 조금 오르면 개인들이 곧바로 매도(환매)하고 이 물량을 다시 외국인이 받아주는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 장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환호하는 개인 투자자는 보이지 않는다. 코스피지수가 올라도 개인이 집중적으로 산 종목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서다.

이는 통계에서도 입증된다. 10월8일부터 5거래일간 유가증권시장의 상장 종목 917개를 살펴보니 지수 등락에 관계없이 주가가 오른 종목보다 떨어진 종목이 훨씬 많았다. 상승 종목은 매일 317~324개, 하락 종목은 460~480개로 일정한 움직임을 보였다. 3거래일 연속 오른 종목은 전체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기간은 코스피지수가 2002.76에서 2040.96으로 크게 올랐을 때다.

종목별 상승 폭도 크지 않았다. 코스피지수가 20.69포인트 급등한 지난 10월15일, 1% 이상 상승한 종목은 전체의 26.8%인 246개에 불과했다. 개인이 많이 투자하는 일반 종목에선 큰 재미를 보지 못한 것이다.

일각에선 개미가 외국인을 추종해 투자할 경우 자칫 ‘상투’를 잡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부채 한도 협상과 같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데다 양적 완화 축소 역시 기정사실화하고 있어서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 게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외국인이 달러 자금을 많이 갖고 들어오면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테고, 이 경우 환차익 가능성이 작아져 매수 강도를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추가 하락하면 수출 주도형인 국내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일례로 현대·기아차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질 때마다 2000억원의 매출 감소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업이익도 연평균 1%가량 낮아진다.

국내 증시에서 개미만 손해를 본 경험은 과거에도 있었다. 외환위기 직후 외국인이 순매수를 이어가며 ‘바이 코리아’ 열풍을 이끌었다. 이후 환율이 급락하자 외국인은 한국을 떠났고, 뒤늦게 추종 매수에 나섰던 개인은 ‘반 토막 주식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금융계 관계자는 “시장 활황기에도 리스크를 줄이는 정답은 장기 분산 투자”라며 “직접 투자하기 부담스럽다면 전문가가 대신 굴려주는 주식이나 혼합형 펀드에 넣는 게 그나마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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