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는 꼼수일 뿐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3.10.30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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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공회전’입니다. 몇 달째 나라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댓글’이라는 실타래에 발이 묶여 전전긍긍입니다. 어느 정치인의 말마따나 ‘고장 난 시계’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사실 팩트는 간단합니다. 지난 대선에 앞서 국정원 직원들이 여당 후보를 지원하는 댓글을 무수히 작성해 온라인에 띄움으로써 정치에 불법 개입했다는 것입니다. 검찰 수사에 이어 재판 과정까지 지나야 온전한 사실이 최종 확인되겠지만, 적어도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작성했다는 것만큼은 명백히 드러나 있습니다. 최근에는 국군 사이버사령부 요원 등의 댓글 개입 의혹까지 겹쳐져 ‘댓글 전선’은 더 확대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줄거리도 간단합니다. 야권이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 개입을 잇달아 쟁점화하고 정확한 진상 규명을 외치면, 여권은 ‘그렇다면 대선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것이냐’라는 각본이 잘 짜인 대선 불복 프레임을 꺼내들어 맞서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대선의 직접 당사자인 문재인 의원마저 입을 열어 지난 대선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서면서 불길이 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주변의 여론을 들어보면 정쟁을 여기까지 키운 데는 야권의 실책도 물론 없지 않지만, 여권의 태도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말이 더 크게 들립니다. 불법임이 확실한 댓글 개입 사건에 대해 축소·은폐하려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들입니다. 분명하게 드러난 불법을 불법이라고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잡겠다고 하면 될 일인데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 판을 키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정몽준 의원의 지적이 가장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문제가 있다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집권 여당의 역할”이라고 따끔한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가뜩이나 정치가 제 할 일도 제대로 못하는 나라에서 소모적인 정쟁이 지속되고, 그 정쟁의 중심에 국정원 같은 권력기관이 끼어들어 있는 광경은 참 우중충합니다. 마치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권력기관들이 이슈 메이커가 되는 현실은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가 고통받던 그 암담했던 시절의 우울한 풍경들을 떠올려주기 마련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우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멈춰 선 시계를 움직이게 하려면 정당이 움직여야 합니다. 정당 이 앞쪽으로 나서야 정쟁의 전면에 나서 있는 권력기관의 그림자를 뒤로 밀어낼 수 있습니다. 해답은 간

단합니다. 더 이상 검찰을 흔들지 말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게 해 진상을 제대로 밝혀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면 됩니다. 지금의 상황에서 정당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세는 수사가 잘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NLL’로 한 세월 보내고, ‘댓글’로 한 세월 또 보내면 국민들의 허망한 마음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겠습니까. 나중에 가서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지”라는 말이나 남길 심산이 아니라면, 사과할 일에는 사과를 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꼼수는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해도 현명해진 국민 앞에서 꼼수는 그냥 꼼수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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