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흉한 권력이 검찰 망쳤다
  • 조해수·감명국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10.3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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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권 검란부터 윤석열의 난까지 정치검사들 정권에 줄서기

검찰 심벌마크(CI)는 다섯 개의 직선이 병렬로 배치된 모습이다. 각각은 공정·진실·정의·인권·청렴을 상징한다. 대나무의 올곧음에서 모티브를 얻어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검찰의 생명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검찰은 이미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명박(MB) 정권 내내 ‘권력의 시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검찰이 ‘검찰 개혁’을 전면에 내건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별반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검찰’의 민낯은 10월21일 서울고검청사에서 열린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는 폭탄 발언을 했고,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은 “이렇게 ‘항명’이라는 모습으로 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눈물까지 보였다.

볼썽사나운 모습은 여과 없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여야 정치권은 ‘외압이다’ ‘항명이다’, 서로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며 정쟁을 벌였지만, 국민은 깊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정의의 보루’로 믿고 싶었던 검찰이 치유 불능 상태의 중환자임을 확인해서다.

10월21일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장에서 만난 윤석열 여주지청장(사진 위)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 뉴시스
MB 정권 때 천성관 낙마 이후 검찰 위상 붕괴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윤석열 지청장이 국감에서 던진 일성은 ‘해바라기’ 검찰의 현주소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찰의 권력은 막강하지만, 검찰 역시 공무원 조직일 뿐이다. 임명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검찰청법 제34조 1항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는 규정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칼자루를 누가 쥐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를 다른 말로 하자면 ‘검찰 조직에서 출세하려면 정권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권력을 쥔 쪽 시각에서 보자면, 검찰은 매력적인 통치 수단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정국을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보도를 손에 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검찰과 정권은 바짝 달라붙어 달콤한 밀애를 즐겼다. 그러나 정권 입맛에 맞는 총장을 임명하기 위한 ‘무리한 인사’는 검찰의 수명을 갉아먹는 원인이 됐다.

정치검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최근 들어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한 변곡점은 MB 정권 시절인 2009년 천성관 총장 후보자의 낙마 사태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천 후보자는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사건, ‘용산 철거민 참사’ 사건 등 민감한 사건들을 당시 MB 정권의 입맛에 맞게 처리했다. 그러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위장 전입, 해외 골프, 명품 구입, 고가 아파트 구입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럼에도 여당의 비호를 받고 버티다가 결국 여론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자진 사퇴했다.

총장 공석 사태가 이어지면서 검찰은 자괴감에 빠져들었고,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대타로 나섰다. 하지만 그의 임명을 지켜본 당시 한 검찰 고위직 출신 인사는 “김 전 총장에게는 ‘국제 감각을 갖춘 기획통’이라는 설명이 항상 따라붙는다. 무슨 외교부장관도 아니고, 수사를 총지휘하는 검찰총장에게 이런 설명이 붙는다는 자체가 검찰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상대 전 총장 불명예 퇴진의 원인이 된 초유의 ‘검란(檢亂)’ 사태도 MB 정권의 무리한 인사 결과라는 지적이 있다. MB 정권 마지막 검찰총장인 한 전 총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다. 인사청문회 당시 군 면제,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백화점식 의혹이 난무했다. 이런 그를 끝까지 밀어붙인 이가 이 전 대통령이었고, 한 전 총장은 ‘수사’로 이에 보답했다. 한 전 총장은 2011년 <시사저널>의 단독 보도로 촉발된 ‘이국철 SLS 회장 게이트’ 사건과 ‘MB 내곡동 사저’ 사건 때 이른바 정권 봐주기 식 수사가 아니냐는 공격에 시달리며 정치검찰 논란을 자초했다. 한 전 총장은 고려대 동문인 최태원 SK 회장에 대해서도 봐주기 구형을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결국 최재경 당시 대검 중수부장(현 대구지검장)을 비롯한 중견 검사들이 집단 항명했고, 한 전 총장은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장했다.

그러나 이것이 곧 검찰의 자정과 독립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한 전 총장을 물러나게 한 검찰 수뇌부 역시 정치검찰이란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총장 한 명을 바꾼다고 해서 검찰의 ‘정권 줄서기’ 문화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정치검사들이 요직을 독식하는 구태가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검란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

한상대 전 총장(왼쪽 두번째)과 채동욱 전 총장(맨 오른쪽)은 둘 다 불명예 퇴진했다. ⓒ 연합뉴스
“검사들이 고려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앞날뿐”

“저는 제 자신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검찰을 이용하거나 검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국민 여러분께 엄숙히 약속드리겠습니다.”

한 전 총장이 사퇴한 지 이틀 후인 지난해 12월2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검찰 개혁안을 발표하며 이와 같이 대국민 약속을 했다. 이 공약은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에는 그런대로 지켜지는 듯했다.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총장추천위원회를 거쳐 총장을 뽑았다. 이 과정을 통해 선출된 채동욱 전 총장은 CJ 비자금 수사, 4대강 비리 수사,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 원전 비리 수사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거침없이 처리해나갔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에 칼을 빼들며 MB 정권 최고 실세였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하자, 모처럼 검찰을 향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한껏 높아졌다.

검찰청법 제4조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이 오랜만에 지켜지는 듯했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이 박근혜정부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면서 검찰은 또다시 검란에 휩싸였다.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가 ‘채동욱호’를 통째로 집어삼킨 것이다.

채 전 총장의 사퇴와 윤 지청장의 항명성 파동이 연이어 일어나며 일각에서는 제2의 검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련의 사태를 채 전 총장의 특수통 라인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공안통 라인 간의 갈등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 내부 관계자들은 “특수통 라인이니, 공안통 라인이니 하는 것 자체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부장검사는 “검찰에 무슨 라인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모두 언론의 착각이다. 자신의 라인이 공격을 받으면 똘똘 뭉쳐 되받아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것은 없다. 검사들이 고려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앞날뿐이다. 정해진 라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헤쳐 모여’를 반복하는 것이다. 검사들은 누구보다도 정치적인 동물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검찰’ 행태가 지속되면서 조직에 대한 충성심, 직업에 대한 자존감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 역시 비슷한 얘기를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른바 ‘보스형’ 검사들이 검찰을 주도했다. 정치권의 외압을 자신이 최대한 막으며, 함께 밤을 새우고 후배들에게 수사를 독려했다. 또 좌절을 겪을 때 술 한 잔 사주는 그런 선배들이 지검장, 고검장, 총장까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후배들도 그런 꿈을 키웠다. 그런데 이제 그런 보스 기질 넘치는 선배들은 다 사라졌다. 정권의 눈높이에 맞춰 자기 처세를 잘하는 이들이 검찰 간부직을 독차지하는 지금 분위기에서 솔직히 후배 검사들의 존경을 받는 간부들이 어디 있나.”

지방 검찰청의 한 부장검사 얘기다. “특수통끼리 서로 뭉치고, 공안통끼리 서로 끌어주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같은 특수통끼리 경쟁이 더 치열하다. 중앙지검 특수부장 자리는 3개인데 고만고만한 기수의 특수통들이 10명 이상 모여 있다고 생각해봐라. 서로 치고받고 싸우기 바쁘다. 신문 보니까 윤석열 지청장이 ‘채동욱 라인’이라고 썼던데, 마치 윤 지청장이 채 전 총장의 억울한 사퇴에 분개해서 국정원 수사를 더 강력히 하고 조영곤 검사장 등 지휘부를 치받은 것처럼 묘사했더라. 내가 아는 한 이는 진실과 다르다. 검사들은 그렇게 의리로 똘똘 뭉친 조직이 아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채 전 총장 사표 제출 이후 한때 평검사들 사이에서 회의를 준비하는 등 움직임이 일기도 했지만, ‘검란’ 사태 수준으로까지 가지는 못했다. 채 전 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 사태에 대한 시각차도 있었지만, 채 전 총장이 검찰 조직 전체의 존경과 신망을 받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 지청장 역시 일부 언론에서 ‘강직한 검사’로 비치기도 했지만, 내부 여론은 호불호가 확연히 엇갈린다. 평소 윤 지청장을 아는 선후배들은 그에 대해 냉소적인 것도 사실이다. 이명재 전 총장 이후 두루두루 검찰 내에서 신망과 존경을 받는 인물은 사실상 없어졌다”고 밝혔다.

지금도 검찰 안팎에서는 역대 검찰총장 가운데 김대중 정권 때 임명됐던 이명재 전 총장과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됐던 송광수 전 총장을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내가 여러 총장을 모셔봤지만, 취임할 때 달랑 가방 하나 들고 총장실에 들어가셨다가 퇴임할 때도 그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나가신 분은 이명재 총장님이 유일했다”고 회고했다. 그에 따르면 역대 총장들이 이취임을 할 때면 떠나는 이의 짐들을 미리 준비해서 밖으로 내가고, 들어오는 이의 짐들을 들여놓느라 여러 명의 직원이 며칠씩 중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차기 검찰총장 ‘식물 총장’ 될까 우려

10월24일 채 전 총장의 후임자를 선임하기 위한 검찰총창추천위원회(위원장 김종구 전 법무부장관)는 4명의 새로운 총장 후보를 결정했다. 김진태 전 대검 차장(사법연수원 14기), 길태기 대검 차장, 소병철 법무연수원장, 한명관 전 수원지검장(이상 15기) 등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이들 중 한 명을 박 대통령에게 천거한다.

총장추천위원회는 “리더십과 정치적 중립성 여부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고 선정 배경을 설명했으나 검찰 안팎에서는 총장을 최종 낙점하는 최대 기준은 ‘청와대와의 호흡’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채 전 총장의 전철을 다시 밟지 않겠다는 박근혜정부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개인적 능력보다 청와대와의 관계가 더욱 중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번 총장 임명 때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김 전 차장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지검장의 경우 한광옥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장의 사촌동생이라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아무개는 꼬장꼬장한 스타일로 고분고분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낙마할 것이다. 유순한 성품의 아무개가 결국 낙점될 것”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출된 검찰총장은 ‘식물 총장’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검찰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에서 보이듯 권력에 의한 검찰 장악 시도가 우려된다. 차기 검찰총장이 누가 되느냐는 앞으로 검찰이 권력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권력자의 의중을 살피느라 검찰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외압을 막기보다는 외압을 전달할 사람이 차기 총장으로 올라온다면 더는 검찰에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검찰은 정치권력에 의해 이대로 죽는 것일까.  


문재인 의원은 ‘대선 불공정’ 정국에서 또다시 정치 전면으로 나섰다. ⓒ 시사저널 박은숙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 ‘외압’ 발언 이후 민주당에서는 향후 공세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을 정조준하며 또다시 전면에 나섰다. 문 의원은 10월23일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며 박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대선 불공정’을 말했던 문 의원의 발언은 궁지에 몰리던 새누리당에게 기회를 줬다. 당장 새누리당은 ‘대선 불복’이라며 공세에 나섰다. 여당은 “대선 불복의 유혹은 악마가 야당에게 내미는 손길”이라며 대선 개입 프레임을 대선 불복 프레임으로 전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난 대선을 치른 당사자가 전면에 나설 경우 진실 규명보다 정쟁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 의원으로서는 이런 공격을 충분히 예견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대선 불공정’ 정국으로 끌고 가 ‘사초 실종’ 문제로 수세에 몰린 자신과 친노의 상황을 단번에 역전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실제로 이번을 기회로 친노가 다시 한 번 정치의 전면에 등장할 틈새가 생긴 것도 사실이다.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문 의원의 운명은 여론의 향배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박 대통령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과반이었다. 10월26일 국정원 사건 시국회의가 주최하는 촛불 집회에 대규모 인파가 모인다면 문 의원의 입지는 더욱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날은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맞고 숨진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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