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보다는 ‘안대희 라인’으로 봐야지”
  • 안성모·조해수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0.3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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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야당보다 여당 가까운 ‘특수통’…원칙 중시하는 보수주의자

“민주당과(科)는 아닌데….”

10월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윤석열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초 불참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을 수사 중인 특별수사팀의 팀장을 맡았던 그는 국정원 직원체포와 공소장 변경 신청 등을 놓고 검찰 지휘부와 마찰을 겪으면서 업무에서 배제됐다. 윤 지청장은 국정원 수사에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외압의 실체에 황교안 법무부장관도 포함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본다”고 답변했다.

여당 의원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항명’ ‘하극상’ 등 거친 표현들이 쏟아졌다.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이런 대한민국 검찰 조직을 믿고 국민이 안심하고 사는지 걱정된다. 하다못해 세간의 조폭보다 못한 조직으로, 이것이 무슨 꼴이냐. 증인은 조직을 사랑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윤 지청장이 “대단히 사랑한다”고 답하자, 정 의원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염두에 둔 듯 “사람에 충성하는 것 아니냐”고 재차 따졌다. 윤 지청장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린 것이다”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10월21일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 윤석열 여주지청장(오른쪽 두 번째)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주목되는 대목은 윤 지청장이 보고서를 갖고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조 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며 격노했다는 주장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윤 지청장이 야권 성향이라서 국정원 수사를 강도 높게 진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특채로 뽑힌 검사라거나, 고향이 전라도라는 식의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러한 의심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윤 지청장을 야당과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서울 출신인 그는 1979년 충암고, 1983년 서울대 법학과, 1988년 동 대학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33회)하고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23기)한 뒤 대구지검 검사, 수원지검 성남지청 검사를 지냈다. 특채로 임용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2002년 잠시 공직을 떠나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3년 다시 검찰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후 윤 지청장은 대검 검찰연구관, 대구지검 특수부장, 대검 중수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을 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 안희정·강금원 구속

검찰 내에서 대표적인 ‘특수통’으로 불리는 윤 지청장이 검사로 임명된 후 보인 행보는 야권 성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검사로 임용된 지 5년 후인 1999년 서울지검 특수2부에 근무하던 그는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의 뇌물 수수 사건을 맡았다. 호남 출신인 박 국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경찰 내 최고 실세로 꼽혔던 인물이다. 여권으로부터 압력이 상당했다고 하는데 윤 지청장은 이를 물리치고 박 국장에 대한 구속을 이끌어냈다.

검찰 특채도 김대중 정부 후반 심상명 법무부장관 때 있었던 일이다. 당시 그는 주변에 “변호사가 체질에 안 맞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윤 지청장은 검찰에 복귀하자마자 2003년 말 대검 중수부의 대선 자금 수사에 참여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지금은 고인이 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구속했다. 2007년 대검 검찰연구관 시절에는 서울서부지검에서 수사 중이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 수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변 전 실장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 브레인이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여권으로서는 무작정 ‘윤석열 때리기’에만 매달릴 수 없는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검찰 정보에 밝은 여권의 한 인사는 “윤 지청장은 ‘안대희 라인’이라고 볼 수 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을 정도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윤 지청장이 안 전 대법관으로 대표되는 검찰 내 특수통 계보를 잇는 직계 중 한 명이라는 설명이다. 안 전 대법관은 지난해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아 정계에 진출했다. 법조계 출신의 여권 내 유력 인사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안대희 중수부’에서 친구 남기춘과 맹활약

역시 특수통 ‘칼잡이’로 유명한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이 윤 지청장의 오랜 친구다. 서울대 법학과 79학번 동기로 검사 생활은 윤 지청장이 한참 늦었다. 남 전 지검장은 1983년 사법시험에 합격(25회)했다. 사법연수원 15기로 윤 지청장보다 8기수나 앞선다. 등용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두 검사는 검찰 내에서도 돈독한 관계를 이어왔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린 또 다른 검사로는 유재만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있다. 서울대 법학과 81학번으로 2년 후배인데,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26회)해 사법연수원 16기다.

노무현 정부 초기 안대희 전 대법관이 이끌던 대검 중수부는 그 위세가 대단했다. 중수부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안대희 드림팀’에 남 전 지검장, 유 전 부장과 함께 윤 지청장이 있었다. 남 전 지검장은 검찰을 떠난 후 안 전 대법관을 따라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에 들어가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근무하다가 최근 회사를 나왔다. 반면 유 전 부장은 야당행을 택했다. 민주당에서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다.

동료들이 하나 둘 정치권으로 떠났지만 윤 지청장은 여전히 검찰에 남았다. 굳이 그의 정치 성향을 따지자면 민주당보다는 새누리당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정기관 출신인 여권의 한 인사는 “윤 지청장은 보수적이고 원칙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남 전 지검장과 유 전 부장을 놓고 비교한다면 남 전 지검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지청장의 최근 행보에 대한 검찰 내부의 의견은 극명하게 갈린다. 외부에서 특수통과 공안통의 대결 구도로 보는 데는 손사래를 치고 있다. 특수통으로 불리는 한 검사는 “특수통과 공안통의 갈등은 언론이 만들어낸 얘기일 뿐이다. 국정원 댓글 수사팀에 특수통과 공안통이 섞여 있는데,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는 데 대해 공통의 의견을 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윤 지청장이 사전에 특수통 라인과 협의했던 것 아니냐는 관측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 많았다. 기자가 만난 특수통 검사들은 이번 일은 “윤 지청장의 독단적 행동”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 지청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식 보고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은 어떤 이유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감 일정을 염두에 두고 쇼를 준비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조영곤 지검장 측도 “윤 지청장은 조 지검장이 ‘야당 좋은 일 시켜줄 일 있느냐’고 발언했다는데, 그게 아니라 ‘국감 기간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야당이 공격해올 것이다. 국감이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이다. 아무래도 윤 지청장이 국감을 벼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일선 검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검사는 “윤 지청장의 행동이 세련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외압이 있었는가’ 여부다. 수사팀장이 외압을 느꼈다면 이는 실제로 외압이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윤 지청장이 문제가 아니라 외압을 막아주지 못한 검찰 수뇌부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항명 파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윤 지청장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검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온 여권의 한 인사는 “윤 지청장은 자신이 한 일이 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무적·정치적 판단도 해야 한다. 윤 지청장의 잘못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고 밝혔다.

사정기관 고위직 출신인 한 여권 인사는 “어떤 조직이든 명령 체계가 있는 것이다. 이를 어긴다는 것은 옷을 벗겠다는 의미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국회 법사위원회 소속인 민주당의 한 인사는 “그만둘 생각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윤 지청장이 계속 검찰에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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