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들은 퇴진하고 자숙하라
  • 도쿄·나고야=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10.3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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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한학자 총재, 제자 중심으로 조직 개편

“일본은 축복을 받았다. 축복은 나만의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세계와 나눠야 한다.” 지난 10월16일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수도권 대회에서 한학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총재가 한 말이다. 한 총재는 10월13일부터 23일까지 11일 동안 일본 도쿄 등 5개 도시에서 열린 ‘일본 선교 55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했다.

문선명 사후 통일교  조직 정비

지난해 12월 들어선 아베 정권의 우경화 정책과 독도 영유권 발언으로 한일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 동북 지방 대지진과 원전 방사능 유출 여파로 일본 열도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이날 대회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초강력 태풍이 불어닥쳤음에도 일본 통일교 관계자들과 정계 인사 2만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 총재는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일본은 어머니의 나라로서 세계의 자녀들을 품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한 총재는 앞서 10월14일 삿포로에서 열린 홋카이도 대회에서도 “과거를 덮고 미래를 본다면 진실을 볼 수 없다. 진실이 없으면 친구도 없다”며 일본 지도층의 각성을 촉구했다.

한학자 총재가 10월18일 일본 포트 메세 나고야에서 열린 중부 대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 통일교 제공
고 문선명 총재가 생존해 있을 때는 한 총재의 대외 활동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문 총재 사후 통일교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야 하고 후계 문제도 한 총재가 매듭지어야 한다. 때문에 그는 요즘 부쩍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9월 문선명 총재가 유명을 달리하자 통일교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2세들 간 후계 구도를 둘러싼 다툼이 격화되면서 통일교가 분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통일교 주변에서는 한 총재가 여러 어려움을 비교적 잘 수습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도쿠노 에이지 일본 통일교 회장은 10월15일 기자와 만나 “문선명 총재가 성화한 이후 통일 운동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컸던 것이 사실”이라며 “한 총재가 방향을 제시하면서 다시 안정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문선명 총재 사망을 전후로 <세계일보>와 용평리조트 등을 거느리고 있는 통일그룹은 4남 문국진씨가 맡았다. 7남 문형진씨는 통일교 세계회장과 미국총회장을 겸직하면서 사실상 종교 부문을 총괄했다.

하지만 한 총재는 혈통 중심에서 제자 중심으로 통일교를 개편했다. 그는 지난 2월 문형진씨를 미국총회장직에서 해임했다. 문형진씨조차 이런 사실을 사전에 몰랐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다. 문형진씨는 최근 미국 신도들에게 돌린 영문 서한에서 “참어머님(한학자 총재)께서 저희에게 미국 교회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지시했다”며 “갑작스런 결정에 놀랐지만 결정을 존중하며 앞으로는 세계회장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3월에는 4남 문국진씨를 통일재단 이사장직에서 해임한 데 이어 통일그룹 회장직에서도 물러나게 했다. 이와 함께 통일그룹 내의 각종 송사의 중단을 선언했다. 형제간의 갈등을 방치했다가는 통일교의 존립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에 머무르고 있는 문국진씨는 당분간 총기회사인 KAHR의 경영에만 전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재의 지시에 따라 문국진씨가 형인 문현진(3남) UCI 회장과 벌이던 모든 소송 역시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교 황태자들의 빈자리에는 양창식 가정연합 세계부회장, 박노희 통일그룹 회장 겸 통일재단 이사장 등을 전진 배치했다. 통일교 관계자는 “한 총재가 그동안 전면에 나서지 않았지만 2세들을 경영에서 배제할 정도로 단호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교 안팎에서는 이번 일본 대회를 기점으로 한학자 체제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송용천 일본 통일교 총회장은 “한 총재 취임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이번 일본 대회가 (한학자 체제를 위한)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총재는 10여 일 동안 일본 열도를 종단하면서 하루건너 한 차례씩 순회강연을 했다. 대회마다 신도뿐만 아니라 중의원·참의원 의원, 자치단체장 등 일본 지도층 인사들이 여럿 참석했다. 중의원(9선) 출신으로 2001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문부과학상을 지낸 아오야마 다카시 씨는 “문선명 총재의 뜻을 수십 년 동안 함께한 한학자 총재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문 총재가 뿌린 평화의 씨앗을 한 총재가 이어받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10월16일 일본 도쿄 사이타마 현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수도권 대회에 2만여 명이 참석했다. ⓒ 통일교 제공
일본 대회 이후 한학자 체제 본격화 예상

향후 통일교의 구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한 총재는 이미 대외적인 사업들을 정리하고 내실 위주로 조직을 재편한 상태다. 통일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194개국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한 총재는 자립의 여지가 있는 43곳에 선교를 집중하기로 했다. 오야마다 히데오 일본 천주평화연합(UPF) 회장은 “선교 자체도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다. 한 총재가 실용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투자 사업 방향도 대폭 뜯어고쳤다. 그동안 북한의 평화자동차가 운영해온 자동차 생산·수리 공장과 보통강호텔 등의 운영권을 대가 없이 북한에 양도했다. 또 통일교에서 주최하는 피스컵과 피스퀸컵 대회도 중지할 예정이다. 통일교 관계자는 “한 총재 취임 이후 매년 150억~200억원이 들어가던 국제 클럽 대항 축구대회(피스컵)를 잠정 중단하도록 했다”며 “다시 대회가 열리는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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