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서 보잖아, 갈 데까지 가야지?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10.3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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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 밀려드는 ‘막장 방송’ 시청률 높이려 자극적 장면 내보내

최근 방송 시청률 조사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KBS <개그콘서트>가 15%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일요일 연예오락 프로그램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개그콘서트> 중에서도 ‘시청률의 제왕’ 코너는 전국 가구 기준 21.5% 시청률을 기록하는 등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시청률의 제왕 박 대표’가 “대박 터뜨려보자”고 말하는 대사 그대로 시청률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시청률의 제왕’ 코너는 억지로 간접 광고를 전면에 내세운다거나, 비중 있는 출연자를 어이없는 설정으로 중도 하차시킨다거나, 막말을 하고 선정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등 비판받아 마땅한 TV 프로그램에 대한 풍자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런 코너가 큰 인기를 끈다는 것은 저속한 방송이 많다는 데 시청자들도 인식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출연자 전력 문제나 어이없는 내용 등으로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방송 프로그램들. ⓒ SBS·MBC·Mnet·JTBC·TV조선 제공
‘파격’ 출연진 내세운 종편이 ‘막장’ 주도?  

지난 몇 년간 ‘막장 드라마’뿐 아니라 ‘막말 리얼 다큐’ ‘편파 보도 같은 토크쇼’ 등 무슨 트렌드처럼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의 방송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에는 종합편성 채널의 보도가 선정적으로 치우쳐 뉴스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종편 뉴스가 지상파 방송보다 선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뉴스를 시청한 사람들은 뉴스 신뢰도 및 매체 신뢰도를 낮게 평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시청자들이 ‘막장 방송’을 비판하는 데 공감하는 것을 보면, 앞으로 그런 방송이 설 자리가 없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일각에서는 넥타이를 맨 직장인이 <선데이서울>을 보는 것에 빗대며 ‘문화의 이중성’이라는 논리로 ‘막장 방송 옹호론’을 펴기도 한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프로그램들은 ‘욕을 하면서도 보는’ 시청자들 때문에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한 술 더 떠 방송사가 무슨 노이즈 마케팅이라도 하는 것처럼 논란을 부르기도 한다. ‘고품격과 저품격 사이의 아슬아슬한 시사쇼’를 표방한 TV조선의 <강적들>은 학력 위조와 ‘부적절한 사생활’ 문제로 논란이 됐던 신정아씨를 MC로 캐스팅한다고 밝혔다가 시청자들의 비난을 샀다. 결국 TV조선은 10월23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신씨를 뺀 출연진으로 방송을 하겠다고 물러섰다.

종편이 태생적인 한계로 인해 정치적인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그치지 않고 있다. JTBC의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에 강용석 전 의원이 등장했을 때부터 시작해 종편 4사의 출연진 면면이 ‘막장’이라는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종편이 등장하면서 방송 수준이 급격히 떨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추혜서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의 설명이다. “시청자를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할 문제다. 콘텐츠 제작 여력이 안 되면 방송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방송사에 특혜를 주는 방송통신위원회도 문제다. 이건 시청자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정치적 의도가 빚어낸 풍경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왜곡된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사들의 행태가 한참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이는 지난 9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년 2월 종편 재승인 때 적용할 심사 기준을 의결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종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쪽에서 보면 ‘막장 종편’을 퇴출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한 심사 기준이기 때문이다. 이날 통과된 재승인 심사 기준을 보면, 방송평가위원회의 방송 평가, 공정성·공익성, 프로그램 기획·편성 및 제작 계획의 적절성 등 크게 9개의 항목을 심사해 총 1000점에서 650점 미만을 얻은 사업자에 대해 ‘조건부 재승인’ 또는 ‘재승인 거부’를 하도록 했다. 개별 항목에서 40% 미만을 받으면 총점과 관계없이 ‘조건부 재승인’ 조치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기준으로는 종편이 방송의 품질을 높이는 데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체적인 배점에서 방송평가위원회의 방송 평가(350점)를 제외한 나머지 항목에서 자의적으로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비계량 항목이 압도적으로 많고, 저질 방송을 못 하게 막을 수 있는 과락 기준도 50% 수준으로 낮아 ‘막장 종편’을 퇴출시키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제작 시스템 전체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위로부터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달리 프로그램 제작에 종사하는 이들의 입장은 좀 달랐다. 제작 일선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막장 방송’이 기승을 부리는 현실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상파 방송 PD는 “막장 방송을 종편이 주도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제작 환경의 문제다. 제작비를 줄이는 마당에 할 수 있는 최선은 스토리를 막장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일반인들을 경쟁적으로 출연시켜 과장하거나 미화하고 내용을 조작하기까지 해 물의를 빚는 경우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SBS <송포유>의 일진 미화 논란, Mnet <슈퍼스타 K5>의 수배자 출연 논란, SBS <짝>에서 계속 불거져 나온 출연자 조작 방송 의혹 등이 그것이다.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 PD로 있다 외주 제작사로 자리를 옮긴 강일수 PD는 “드라마는 기획사로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예전처럼 지상파 방송사에서 직접 제작하는 경우가 줄어들면서 기획사들이 잘나가는 작가들을 3년 정도씩 계약해 발을 묶어놓는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들은 ‘막장 드라마’ 제작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기획사들이 막장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작 시스템 때문에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했다. “시장 논리로 설명할 수도 있다. 광고 시장이 좋으면 막장 프로그램을 안 만들어도 되는데,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좁아지는 상황에서 주목받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방송 심의 수위가 높다고, 비판 여론이 거세진다고 방송 문화가 순화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원 문화평론가는 “이른바 ‘스타 PD’들이 대거 외주제작사나 종편 또는 케이블방송으로 이동했다. 거액의 몸값 이상을 해내야 하는 그들의 유일한 과업은 시청률 확보다. 그들이 과거에 어떤 개성과 재주를 가졌건, 중요한 것은 시청률 1위 등극”이라고 분석했다.

‘작품’이 아니라 ‘상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현실이 빚어낸 풍경이 ‘막장 방송 시대’라는 것이다. 그는 “시청률 그래프만 체크하며 제작 방침을 세우는 것이 문제다. 작품 전체를 보지 않고 앞뒤 맥락 없이 순간 시청률까지 집계하는 시장의 올가미에 목 졸린 ‘스타 PD’들의 다급함이 선정적일 뿐인 재미없는 드라마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KBS ‘시청률의 제왕’ 코너는 ‘막장 방송’을 풍자해 인기를 끌고 있다. ⓒ KBS 제공
방송심의기구의 ‘막장 방송’ 퇴출은 역부족 

이런 현실에서 ‘막장 방송’에 대해 법적 규제를 할 수 있는 곳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뿐이다. 그런데 방통심의위는 사후 심의를 해서 주의·경고·징계 등의 처분을 내리지만, ‘막장 방송’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승인한 방송사들이 생존을 위해 편파적이고 막장화되는 것을 철저히 감시하겠는가. 적당히 눈감아주는 형식으로 심의하다 보니 지상파 방송까지 막장화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대열 방통심의위 유료방송심의1팀장은 “종편의 경우 주의·경고 등으로 벌점이 누적되면 재승인 심사에서 부담을 갖게 된다. 그런 만큼, 그렇지 않다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최근 채널A에 1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다”며 “심의 규정에 따라 건전한 방송 문화를 만들어달라는 시청자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방통심의위에 딱 걸린 ‘막장 방송’들 

지난 9월 방통심의위는 방송법에 따라 채널A에 대해 1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지난해 말 대선 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을 출연시켜 ‘막말’을 한 것을 그대로 방송해 물의를 빚었던 것과 관련해서다. 당시 윤 전 대변인은 <박종진의 쾌도난마>와 <이언경의 세상만사> 등에 출연해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더티한(더러운) 작당이다” “이정희는 싸가지 없는 며느리 같다” “안철수는 젖비린내 난다” 등의 발언을 했던 것. 이후 채널A는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받았는데도 윤 전 대변인에게 출연 정지나 경고 같은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 5월에는 tvN <SNL코리아 시즌4>에 과징금 1000만원을 부과했다. 3월16일 방송분 ‘형아 어디가’ 코너에서 한 연예인이 어린이의 머리에 축구공을 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을 발로 차거나 주먹으로 때렸다. 아이들에게 슈퍼에서 물건을 훔치도록 지시하는가 하면, 어린이와 함께 여성의 치마를 들춰 치마 속을 바라보는 장면 등을 방송했다. 방통심의위는 “해당 코너가 어린이 출연자의 품성과 정서를 해칠 수 있는 비교육적이고 저속한 내용이었다”며 과징금 부과 이유를 설명했다.

TV조선 <가족 두 개의 문>은 6월24일 부부간의 갈등을 소개하면서 과거 남편이 임신 중인 아내를 폭행했던 사례를 재연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욕설하고 과격한 행동을 하는 모습 등 자극적인 내용을 방송했다. 실제 남편이 물건을 던져 유리창을 깨고 아내의 머리를 가격하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낸 것은 충격적이었다. 심리 치료를 통해 가족의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그런 장면을 유도한 것처럼 비쳤다. 방통심의위는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에 이런 내용을 방송한 것을 이유로 ‘경고’를 했다.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도 ‘경고’를 줬다. 방통심의위는 “<여왕의 교실>은 중학생들이 초등학생들을 장시간 구타하고, 초등학생이 교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담임교사에게 ‘죽어버려’라며 커터칼을 휘두르는 장면을 방송하고, 간접 광고 포스터를 노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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