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청와대 ‘하명 정당’ 벗어나야”
  • 조해수 기자·(정리) 조은혜 인턴기자 ()
  • 승인 2013.11.0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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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 인터뷰…“문재인 ‘불공정 대선’ 발표 반대”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난 날은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이날은 박근혜정부 첫 국정감사(국감)가 마무리되기 하루 전이자, 10·30 재보선 바로 다음 날. 민주당으로서는 희비가 교차하는 미묘한 시점이었다. 국감에서 국가기관의 광범위한 대선 개입 사실을 밝혀내며 대여 투쟁 동력을 얻는 듯했지만, 재보선에서 참패하며 새누리당에 또다시 정국 주도권을 내줄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야당 원내 사령탑인 전 대표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전 대표는 안갯속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강온 전략을 내놓았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과 관련해서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촉구했고, 다가오는 검찰총장·감사원장·보건복지부장관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고강도 검증을 예고했다. 그러나 정치 실종으로 이어지고 있는 여야 대치 정국을 풀기 위해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여당 수뇌부와 수시로 접촉하고 있다”며 여야 소통을 강조했다.

 

박근혜정부에서의 첫 국감이 끝났다. 평가를 한다면.

민주당은 ‘민주주의 살리기, 민생 살리기, 약속 살리기’라는 목표 아래 5대 난맥(국가기관 대선 개입, 공약 70개 이상 파기, 인사 난맥, 친일 찬양 역사 미화, 4대강·원전 국민 혈세 낭비)을 파헤치는 성과를 냈다. 특히 국가기관이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대선에 개입한 사실을 밝힌 것은 성과다. 대민 접촉이 가능한 기관들은 모두 대선에 개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까고 또 까도 뭐가 계속 나오는 양파처럼 느껴진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을 놓고 민주당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향후 투쟁 수위가 궁금하다.

먼저 대통령의 직접 사과가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자꾸 ‘내가 시킨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피하고 있다. 자기 휘하에 있는 정부 기관들이 대선에 개입한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사과하고 입장을 밝히는 게 당연하다. 자꾸만 피하고 변명하려다 보니 일이 더 꼬이고 있다. 정치는 실종되고, 여의도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두 번째로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마지막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분명하고 확실한 대책이 국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국감 이후 정국에서 민주당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민생 현안은 무엇인가.

전·월세 가격이 연일 상승하며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세제 개편안은 서민들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이른바 ‘서민 등골 브레이커’형 개편안을 바로잡는 것과 동시에, 공정한 세수 확보를 위해 부자 감세 철회를 이뤄낼 것이다. 기초노령연금을 비롯해 보육 재정 문제도 시급한 사안이다. 박 대통령의 공약들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민생 현안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재보선이 있었다. 그런데 여권 우세 지역이어서 패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표 차이가 너무 났다. 화성갑의 경우 19대 총선이나 대선 때보다 성적이 더 좋지 않다.

민주당이 아직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전폭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다. 총선과 대선 실패에 따른 국민들의 실망감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더 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번 재보선에선 국가기관 대선 개입 사건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결집했다. 투표율이 너무 낮은 것도 격차가 커진 요인이 됐다. 특정 지역의 재보선 결과가 전국적인 여론 판세로 샘플링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당 지지율이 떨어졌음에도 야당이 그 지지율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제1야당이라고 하기엔 지지율이 너무 낮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조사를 보면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민주당이 제1야당으로서 계속 문제 제기를 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판세로 보면 과거에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양당 구도가 확실했지만, 지금은 표면적으로만 양당 체제일 뿐이다. 실제로는 ‘천하삼분지계’, 즉 안철수 신당이 존재한다. 기성 정치에 대해 실망하고 있는 계층과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층이 민주당으로 오기보다는 유보층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안철수 신당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띨 것이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무한 경쟁 체제로 갈 경우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사이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안철수 신당은 ‘새로운 정치’라는 깃발을 들고 나서고 있다. 안철수 신당은 여당이 아닌 야당이다. 야당으로 새로운 깃발을 든다면, 새누리당의 텃밭을 공략해야 할 것이다.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의 터전인 호남 지역부터 출발한다면 야권의 분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무엇이 새 정치라는 기치에 부합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선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 여당 쪽 수뇌부와의 관계는 어떤가.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수뇌부와 수시로 만나고 전화 통화도 자주 한다. 청와대의 경직된 태도로 정치가 실종됐지만, 이대로 둘 수 없기에 정치 복원을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이기 전에 입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제1당이다. 청와대의 하명만 받는 ‘하명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 대표도 내 요청에 대해 진지하게 응하고 있다.

만남을 통해 진전된 것들이 있나.

먼저 ‘정치를 살리자’는 큰 틀에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실천 방안에서는 ‘퀘스천 마크’인 상황이다. 두 번째는 정치 개혁 차원에서 ‘국회 운영 개혁’에 합의했다. “제대로 한번 리셋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나의 제안에 최 대표도 공감하고 있다. 어제(10월30일) 내가 제안한 ‘상시 국감’ 역시 먼저 최 대표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최 대표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내가)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문제를 푸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새누리당이 얼마나 청와대의 하명 정치로부터 벗어나느냐’다. 두 번째는 박 대통령의 의지다. 박 대통령은 5선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잘 알고 있다.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로서 ‘정치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원론적이고 원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결국 열쇠는 청와대가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9월 3자 회담 이후 다른 계획이 잡힌 것은 없나.

3자 회담 자체도 어렵게 성사됐고, 회담 내용에서도 야당에 대한 배려나 대치 정국을 뚫으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후 청와대 측에서 제안이 온 것은 없다.

ⓒ 시사저널 이종현
민주당 지도부의 지도력 부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친노 세력과는 소통조차 되지 않는 모습이다.

그런 비판이 나올 만한 상황들이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불과 10개월 전에 48%의 국민 지지를 받은 문재인 의원의 영향력은 인정해야 한다. (나는) 그동안 문 의원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해왔다. 그러나 ‘불공정 대선’에 대한 문 의원의 성명 발표 문제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고 단호하게 “시기가 너무 빠르다, 지금은 아니다”란 이유로 반대했다. 그럼에도 문 의원은 결국 (성명을) 발표했다. 그래서 (문 의원과) 정국에 대한 상황을 밀착해서 공유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문 의원을 직접 만나서 의논도 했고 정국 관리에 대해 허심탄회한 의논과 협의를 하기로 합의했다. 문 의원은 본인의 성명 발표가 지도부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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