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장은 대선 전리품 아니다
  • 조창현 | 한양대 석좌교수 ()
  • 승인 2013.11.0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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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비서실장 임명 이후 인사 편중 심화…인사위원장 겸임해선 안 돼

대통령의 인사권은 헌법에 보장된 고유 권한임에 틀림없으나 무제한적 권한이 절대 아니다. 헌법과 법률은 물론이고, 국민 여론의 견제를 받는 권한임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무직인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 주요 권력기관장 등의 임명에 대해 국회에서의 임명 동의 또는 인사청문회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그 증거다. 직업공무원을 뽑을 때도 자유 경쟁을 통한 실적주의 원칙에 의해 임용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460조원의 채무로 온 국민의 원성을 사고 있는 공공기관장의 임명도 각 기관장마다 일정한 자격 기준과 자격 요건을 충족시키는 인물을 임명하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자신이 후보 시절 이처럼 잘못된 인사의 폐해를 격렬하게 공격하면서, 실적주의에 근거하고 국민 통합적인 인사 정책을 펼칠 것을 약속해서 많은 표를 얻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인사 실적은 자신의 약속이나 국민의 기대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최근 한 일간지(그나마 현 정부에 우호적인 성향의 언론사)에서 다룬 박근혜정부의 인사 특징 조사 결과만 살펴봐도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할 수 있다.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로 지역 편중이 지나치고, 둘째 특정 학교와 직군의 편중이 심하며, 셋째 선거 캠프 출신이 너무 많이 등용됐다는 것이다.

장차관 36%·공공기관장 42%가 영남 출신

먼저 지역 편중을 보면, 장차관의 36%와 공공기관장의 42%를 인구 25.7%의 영남에서 차지하고 있다. 전체 비율보다 더 심각한 것은 청와대 비서실장, 민정수석, 국무총리, 감사원장과 같은 권력의 핵심적 자리를 이른바 ‘신(新)PK(부산·경남)’가 독점한 점이다. 특정 학교와 직군 출신의 쏠림 현상도 심각하다. 특정 대학(서울대) 출신이 장차관직의 40%를, 특정 고교(서울고)가 장관 자리의 35%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임명된 자리의 73.3%를 군·고시·공무원 출신으로 채웠다는 것이다. 또한 공공기관장의 42%를 박 대통령의 지난해 선거 캠프 출신으로 채웠다고 한다.

이런 인사를 두고 언론은 가장 큰 요인으로 속칭 ‘왕(王)실장’ ‘부통령’으로 불리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역할을 든다. 그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구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인사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설치한 기구다. 하지만 김 실장이 지난 8월에 취임한 이후 3월 정부 출범 때의 첫 조각보다 앞서 말한 특정 지역 및 특정 학교, 특정 직군의 편중이 더 심화됐다. 3월 초 영남 출신이 23.6%였던 게 김 실장 취임 이후 36%로 껑충 뛰었다. 직업별로도 군·고시·공무원 출신이 73.3%로 나타났다. 국민에 대한 대표성이나 전문성보다는 위계질서로 단련된 인물들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이러한 결과는 인사위원장인 김 실장의 연령과 경력, 경험, 네트워크 등을 고려할 때 결코 그의 영향력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그가 앞으로도 청와대 인사위원장으로 있는 한 이번과 같은 세간의 비난 여론은 계속될 것이 빤하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대로 국민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공정한 인사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개편을 하루빨리 생각해봐야 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이란 일사불란한 질서 확립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희망을 갖고 최선을 다 하도록 국민에게 비전과 희망을 안겨주는 일이다. 만약 이러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을 때 국민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퇴폐와 부패, 투기나 도박 같은 타락과 요행만을 꿈꾸게 된다. 특히 공무원이 신바람이 나지 않을 때 비(非)본질적인 것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고 많은 연구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국민이 분열되고 공무원이 인사에 불만을 갖게 되면 겉으로는 정부가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속으로는 국민은 방향을 잃고 공무원은 국가의 아까운 자원을 낭비하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익히 잘 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신임 차관급 및 청장 임명장 수여식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비주류 인사들도 인사위원회에 포함시켜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기를 원하는지 선택해야만 한다. 만약에 대통령이 이 나라를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국민을 통합하고, 그들에게 비전과 희망을 넣어주기 위해서 이 사회의 소외 계층과 비주류층까지를 모두 보듬고 갈 용의가 있다면, 대통령은 먼저 청와대의 인사위원회부터 쇄신해야 한다. 어느 나라나 인사위원회는 그 직무의 독립성과 전문성 때문에 독임제(獨任制)보다는 합의제 행정기구로 운영해왔다. 인사권자의 측근이 아닌 다양한 사람의 의견이 제대로 투입되도록 비주류(비측근) 인사를 인사위원회에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모든 인사위원회의 구성은 대통령이 위원회 정원의 3분의 2를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 나머지는 다른 권력(권위)에 의한 추천위원을 원칙적으로 수용한다. 다시 말하면 인사만큼은 대선 승리자가 독식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 같은 것이다.

비근한 예로 영국에서는 공무원의 인사를 다루는 인사위원회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장을 선발하는 공공인사위원회에도 비율은 조금 다를지라도 여야가 각각 추천하는 사람들로 구성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당장 야당의 추천 인사를 청와대 인사위원회에 포함시키는 데는 다소 무리가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여당 안에서라도 청와대 측근이 아닌 다른 진영의 인물을 인사위원회에 포함시킨다면, 오늘날과 같은 인사 편중 현상은 상당히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공기업이 안고 있는 천문학적인 채무를 앞으로 갚아나가기 위해서는 정치 지망생이나 공직 퇴임자는 결코 적임자가 아니다. 전자는 그 자리를 미래의 정계 진출에 이용할 것이고, 후자는 적자를 벗어나는 데 필수인 경영 합리화를 위한 몰입보다는 제2의 안락한 취업에 더 신경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임기가 끝났거나 앞으로 공석이 될 공공기관장의 후임자 선정을 위한 알찬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곧 하나하나의 공공기관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그 자리가 요구하는 후보자의 자격 기준을 명확히 해서 자격을 가진 인재를 발탁하는 일이다. 이제 정부와 공공기관의 고위직은 더 이상 대선 승리의 전리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고의 인재를 유치하는 경쟁의 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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