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했더니 “필로폰·대마초 팝니다”
  • 김민신 인턴기자 ()
  • 승인 2013.11.0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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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마약 중개 사이트 추적 확인…결제 계좌 클릭 2000명 달해

‘도리도리’ ‘작대기’ ‘떨’…. 마약 및 향정신성의약품을 가리키는 은어들이다. ‘도리도리’는 일명 엑스터시(MDMA)를 말하며, ‘작대기’는 필로폰, ‘떨’은 대마초를 의미한다. 모두 국내에서 엄격하게 금지하는 마약류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이런 은어들을 검색하면 마약을 판다며 광고하는 페이지가 무수히 뜬다.

판매자들은 이메일을 남기거나 아예 웹사이트를 개설해 마약을 거래한다. 마약을 판다는 광고 글은 대부분 관리가 소홀한 기업이나 개인 블로그에 올라오기 때문에 관리자가 직접 지우지 않는 한 계속 남아 있다.

인터넷 마약 중개 사이트엔 히로뽕 등 제품 정보가 나와 있다. ⓒ 시사저널 우태윤
전자상거래의 발달과 온라인의 익명성을 이용해 마약을 유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하면 2011년 적발된 온라인 마약 거래는 177건이었다. 2012년엔 649건으로 늘어났으며, 올해는 1558건(8월 기준)에 달해 약 3년 사이에 9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는 인터넷 마약 거래 실상을 추적하다가 제법 규모가 큰 한 마약 중개 사이트를 찾아냈다. 사이트 하단에는 ‘본 사이트는 대한민국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인증한 표준 약관을 사용합니다’라는 문구를 띄워놓았다. 그 아래에는 공정거래위원회·정보통신부·한국인터넷진흥원 등 정부 기관의 로고를 나열해놓았다. 합법적인 사이트인 것처럼 위장하는 눈속임이다.

지난 4월부터 은밀하게 마약 판매

제품 안내에는 ‘필로폰’ ‘히로뽕’ ‘대마초’ ‘물뽕’ ‘엑시터시’ ‘프로포폴’ 등이 나와 있었다. 전부 시중에서 거래가 금지된 마약류다. 이 중 GHB, 스틸녹스 같은 순간마취제나 흡입마취제는 성범죄에도 악용될 수 있다. 각 약물마다 효과와 구성 요소 등 자세한 설명도 첨부해놓았다.

이것들을 구입하려면 먼저 주문서를 작성해 접수해야 한다. 그 후 계좌번호를 받아 입금을 마치면 즉시 판매자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온다. 판매자의 설명에 의하면 서울권은 퀵서비스로 당일 배송되고, 지방은 익일까지 배송이 완료된다고 한다. 무인 보관함을 통해서도 받을 수 있는데, 구매자의 무통장 기록을 없애기 위해 타인 명의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알려줄 정도로 치밀하다.

이 사이트에는 판매자의 정보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무것도 없었다. 단, 판매자가 게시한 공지 사항의 ‘주문서 작성’이나 ‘결제 계좌 안내’ 개시 일시가 지난 4월19일인 것으로 봐서 이때부터 사이트를 개설해 마약을 거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제 계좌’를 클릭한 사람이 11월1일 오전 10시 현재 1970여 명에 달한 것으로 미루어 최소 1000명 이상이 거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격대는 최소 20만원에서 최대 200만원까지 다양했다. 또 지금까지 사이트 접속자는 12만6400명이었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거래가 성사되면 바로 지워버렸다. 운영자도 “배송 완료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복구 불가능하도록 완전히 삭제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고객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사이트에는 ‘사생활 보호를 위한 완벽한 비밀 보장’ ‘안심 배송’ 등의 문구가 많았다.

상담은 ‘제품 정보’ 게시판의 ‘비밀 글’이나 카카오톡 메신저로 하고 있었다. 물론 카카오톡 메신저는 십중팔구 대포폰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기자는 게시판에 물건을 구입할 것처럼 가장해 ‘‘대마초를 구입할 테니 서울에서 직거래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봤다. 곧바로 댓글이 달렸다. 판매자는 “단속 때문에 직거래는 못한다. 여러 번 거래해서 안전한 고객이라고 판단되면 대마초를 파는 가게를 알려주겠다”며 직접적인 접촉을 피했다.

이 마약 중개 사이트의 경우 판매 시점, 판매 기간, 고객 관리 방식 등을 감안하면 실제 거래자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런 불법 사이트가 어떻게 오랜 기간 제재를 받지 않고 영업할 수 있었을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홍보팀 관계자는 “인터넷 사이트는 사전 심의를 통해 개설되는 게 아니라서 계속 생성되고 확산돼 단속이 어렵다”며 “(불법 사이트인 것이) 확인되면 내부 심의를 통해 국내 서버는 삭제하거나 이용을 해지하고, 해외 서버는 국내로의 접속을 차단한다”고 말했다.

마약 중개 사이트의 제품 정보와 문의 게시판.
돈만 떼먹는 가짜 사이트 판쳐

이런 웹사이트들이 전부 진짜 마약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구매자로부터 먼저 돈을 받은 뒤 가짜로 속여 사기를 치는 일도 빈번하다. 마약 판매 사이트가 온라인에 기승하면서 마약 판매 사기 범죄 피해자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9월엔 소금을 필로폰으로 속여 인터넷 카페에 광고해 400여 만원을 챙긴 20대가 구속됐다. 소금이나 담뱃잎은 필로폰이나 대마초와 외관이 비슷해 가짜 마약으로 속이기 쉽다. 지난 10월엔 부산에서 30대 남성이 백반·바질·포도당 등을 정제해 가짜 엑스터시를 만들어 판 혐의로 붙잡히기도 했다. 이러한 사기 범죄는 구매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외부에 떳떳하게 알리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활개를 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관계자는 “대량의 불법 약물을 고가로 파는 경우 대개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마약류는 소량으로 나눠 팔기 때문에 20회 정도의 분량을 한꺼번에 파는 것은 가짜 마약을 유통하거나 입금된 돈만 챙기고 잠적해버리는 사기일 수 있다.

거래한 마약이 가짜라면 판매자는 사기죄가 적용돼 10년 이하 혹은 2000만원의 벌금에 처해진다. 구매자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받는다. 형량은 약물 종류와 거래 가격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비록 사기를 당했다 해도 마약을 사려고 한 의도는 명백하므로 법적으로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온라인 환경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마약 거래의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대포통장과 가짜 명의를 쓸 정도로 전자상거래가 용이한 점도 온라인의 특징이다. 이에 따라 해외에 유학 간 젊은이들이 국내 브로커를 통해 마약을 접하던 것과 달리, 마약을 해본 적 없던 일반인들도 이를 쉽게 구매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에 무분별한 마약 판매 광고가 범람하면서 일반인들조차 해외나 유흥가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 광고에 혹해 한순간에 마약 사범으로 전락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마약 거래 사이트가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단속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또 사기이거나 단순 광고, 불명확한 계정들이 단속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인터넷을 이용한 마약 거래의 증가로 한국이 ‘마약 청정국’이라는 지위를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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