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압박에 ‘퇴직’ 공포까지…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1.0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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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찰대 출신 엘리트 경찰 간부 자살 내막

지난 10월23일 서울 일선 경찰서의 과장급 경찰관인 조 아무개 경정(47)이 경기 고양시의 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오전 6시 무렵 출근길에 오르던 조 경정은 이날 오전 4시40분쯤 집을 나섰다. 그로부터 약 4시간이 지난 후 목을 매 죽은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그의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장소였다.

조 경정의 외투 주머니에는 A4용지 3장 분량의 자필 유서가 있었다. 여기에는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타살을 의심할 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조 경정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 내렸다. 조 경정이 경찰대 출신의 이른바 ‘엘리트’ 경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숨진 조 아무개 경정(47·경찰대학 5기)이 근무했던 서울중부경찰서. ⓒ 시사저널 구윤성
조 경정이 삶의 의지를 잃은 이유는 ‘승진 스트레스’라는 단어로 정리됐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경찰 간부가 오랜 기간 승진이 좌절된 데 따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 경정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을 살펴보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승진 스트레스는 상당히 복합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승진에 대한 조 경정의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최근 들어 더욱 그랬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있을 정기 인사를 앞두고 각종 평정이 진행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유족의 진술에 따르면, 조 경정은 최근 보름간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수면이 부족한 조 경정이 운전을 하다 탈이 날 것을 우려해 대중교통 이용을 권유할 정도였다. 조 경정이 겪는 심리적 압박은 유족의 눈에 확연히 보일 만큼 심한 수준이었다.

이는 조 경정이 남긴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유서에는 과거 조 경정이 승진에 좀 더 유리한 보직을 맡을 기회가 있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스스로를 자책하고 후회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자신의 승진 가능성을 작게 봤던 것이다.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조 경정이 삶을 버린 핵심적인 요인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승진 스트레스에 보름간 ‘뜬눈’

그렇다면 조 경정이 승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심리적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그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 만큼 승진에 민감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 경정은 경정이 된 지 올해로 8년째다. 경찰은 경정 이상 간부들을 대상으로 정년제를 운영한다. 경찰공무원법에 의하면, 승진에 실패한 간부는 일정 근속 기간이 지난 후 의무적으로 퇴직해야 한다. 60세로 보장된 정년과는 별도로 적용되는 ‘계급 정년’이다. 경정의 경우 14년이다. 경정이 총경 승진 대상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10년 차까지다. 10년 차부터는 인사 평가에 반영되는 경력 점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2년 후까지 승진을 못하면, 조 경정은 2019년 53세라는 이른 나이에 옷을 벗어야 했다.

경찰대 출신의 한 간부급 경찰관은 “(조 경장과 같은) 경찰대 초기 기수들은 특히 엘리트 의식이 강하다. 평생 구상해온 인생 계획이 점차 어긋나면서, 미래가 꿈꾼 대로 그려지지 않고 있다는 스트레스가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속 기간이 쌓일수록 승진 가능성은 작아지고, 이에 따라 점차 경찰 조직에서 도태돼가는 자신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결정적인 심리적 압박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 경정이 경찰을 퇴직한 이후의 삶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던 정황이 포착됐다. 사건 현장에서 조 경정이 남긴 유서에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주목받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조 경정 곁에 있던 가방이다. 당시 현장 수사를 지휘했던 경찰 관계자는 “가방에는 퇴직금 계산서, 퇴직 후 수령하게 될 매달 연금액을 계산한 메모 등이 있었다”고 밝혔다.

끝내 승진에 실패한다 해도 조 경정은 2019년까지 경찰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퇴직 이후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일까. 승진에 실패할 경우 조 경정은 50대 초반에 정년을 맞아야 한다. 자녀들이 장성하는 50대는 가정경제 지출이 가장 많은 시기다. 대학 학자금, 결혼 비용 등 목돈이 들어가는 지출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조 경정은 현재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경정은 또 1억원 상당의 빚을 안고 있다고 전해진다. 경기도 고양의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대출받은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아파트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승진이 어려우리라고 판단한 조 경정으로서는 불과 5~6년 안에 ‘퇴직 이후’의 삶이 닥치리라 예상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50대 초반에 경찰 조직을 떠나 어떻게 가족을 부양해야 할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컸던 것이다.

조 경정의 승진 스트레스는 젊은 나이에 맞게 될 퇴직 스트레스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던 셈이다. 일각에서는 승진에 결격 사유가 될 만한 비위 등이 최근 발각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조 경정이 유서에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감찰을 받았다’는 내용을 적었다는 말이 퍼지면서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유서 내용 중 근속 기간 동안 발생한 업무상 과실에 대해 자책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것이 감찰 관련 내용으로 와전된 듯하다. 수사팀이 감찰계에 확인해보니 조 경정을 대상으로 진행된 감찰은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 간부 ‘계급 정년’ 재검토될 듯

조 경정의 죽음은 경찰 내부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10월28일 “경찰공무원 중 경찰대학 출신들은 엘리트 의식 때문에 빨리 고위직에 올라가려고 하다 보니 이런 사태가 계속 발생한다”고 말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예정된 정기 인사 이후 계급 정년 제도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뜻도 밝혔다. “장기적이고 광범위하게 계급 정년 제도를 개선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경찰 내부의 승진 경쟁은 그 어느 조직보다 치열하다. 고위직 및 관리직 비율이 여러 공무원 조직 중에서도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계급 정년에 대한 부담이 크다. 승진을 못하면 일반 정년인 60세가 되지 않아도 퇴직해야 하는 탓이다. 조 경정이 그랬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엘리트의 좌절이 아니었다. 그가 겪은 승진 스트레스의 배경에는 퇴직 이후를 두려워하는 ‘장년의 불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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