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행복나래, 협력업체에 명절 선물 강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11.05 11:1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계열사 지원 사격으로 매년 두 자릿수 성장… 공정위 조사 착수

SK행복나래가 최근 2년간 협력업체에 명절 선물 세트를 강매했을 뿐 아니라 세금계산서 역발행까지 강요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SK행복나래는 2000년 미국 최대 소모성 자재 구매(MRO) 사업자인 그래인저 인터내셔널(Grainger International)과 SK그룹의 제휴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 회사명은 MRO코리아였다. 이 회사는 SK그룹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매출이 해마다 급증했다. 2010년 연간 매출액이 1000억원을 돌파했고 2012년에는 1500억원대를 넘어섰다.

2012년 3월 열린 행복나래 사회적 기업 전환 기자간담회에서 강대성 대표가 사업 설명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사회적 기업 간판 달고 협력업체에 ‘갑질’ 논란

MRO코리아는 2011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MRO 사업체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회적 기업으로의 전환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7월에야 정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승인을 받았다. 회사명도 SK행복나래로 바꿨다.

사회적 기업으로 바뀐 뒤 강대성 SK행복나래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기반을 구축해 더 큰 행복을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사회적 기업의 세계적 권위자로 추앙받는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 박사는 “SK만큼 사회적 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원 활동을 잘하는 기업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기업이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SK행복나래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협력업체 단가를 후려치거나 구매를 강요한 사례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난 10월 초부터 SK행복나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 9월 고발장을 접수받았다”며 “현재 상당 부분 조사가 진행됐다”고 밝혔다.

공정위 고발장에 따르면 SK행복나래의 협력업체는 현재 1000여 곳에 이른다. 이들은 제품을 고객사에 직접 납품하지만 거래 명세서에는 SK행복나래로 기재한다. SK행복나래가 SK계열사와 납품업체의 거래에 개입해 5~10%의 수수료를 챙기고 있는 셈이다. 계열사의 지원 사격으로 회사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기존 협력업체들은 추가 수수료 부담까지 떠안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명절 선물 세트까지 협력업체에 강매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SK행복나래는 2012년 추석 선물 세트를 판매해 8000만원 상당의 매출을 올렸다. 이 중 38%인 3500만원 상당을 협력업체 쪽에서 올렸다. 지난해 추석 SK의 전 계열사가 구입한 선물 세트 물량이 3000만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협력업체에 떠넘긴 수준을 짐작케 한다. 올해 설날에는 협력업체 비중이 7000여만원으로 두 배 이상 커졌다. SK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SK행복나래의 협력업체 중에는 PC조차 없는 영세한 곳이 적지 않다”며 “대기업 입장에서는 큰돈이 아닐 수 있지만 영세 협력업체에게는 이중으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K행복나래 측은 “정당한 거래였다”고 강조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명절 선물 세트 리스트가 나열된 브로슈어를 협력업체에 보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선물 세트를 강매한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판로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브로슈어에 실어 추천한 것이 전부”라며 “브로슈어 인쇄비 등 홍보판촉비 3200만원 역시 회사 자체 비용으로 충당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SK행복나래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회사 측은 협력사별로 얼마를 구매했는지를 주기적으로 점검해 경영지원실에 보고했다. 상중하로 나눠 협력업체의 구매 가능성까지 체크해 순수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SK그룹 서린동 사옥. ⓒ 시사저널 이종현
공정위, SK의 부당 내부 거래 혐의도 조사

SK행복나래가 협력업체를 압박한 것은 명절 선물 세트뿐만이 아니었다. 이 회사는 협력업체에 세금계산서 역발행도 강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 경영지원팀장인 김 아무개씨가 지난 8월 작성한 이메일에도 이런 정황이 나타나 있다. ‘정발행업체 중 역발행 미전환 업체 리스트’라는 제목의 메일에는 역발행 미전환 업체 리스트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2013년 6월 말을 기준으로 역발행 전환 업체는 607곳, 전환 예정인 업체는 403곳, 미전환 업체는 87곳이다. 첨부된 파일에는 역발행 미전환 업체 리스트와 전환 불가 사유도 상세하게 언급돼 있다. 김씨는 메일에서 ‘모든 협력사는 역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주간 업무 보고 시 매주 진행 상황을 보고한다’며 ‘담당자도 어쩔 수 없어 불가능한 업체는 경영지원팀과 협의해달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협력업체의 불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SK행복나래 측은 “투명한 자금 집행을 위해 세금계산서를 역발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일부 영세한 협력업체가 계산서 발행이나 대금 청구를 지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며 “문제가 생기면 회사뿐 아니라 협력업체도 가산세를 물게된다. 회사에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도 협력업체가 승인해야 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와 접촉한 관계자의 얘기는 달랐다. 소식통에 따르면 “세금계산서 역발행 자체가 탈세의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원청업체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써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을 때 거부할 협력업체가 과연 몇이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현재 SK그룹의 부당 내부 거래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지난해 SK행복나래(당시 MRO코리아)는 1543억원의 매출과 10억37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 중 80%가량을 내부 거래를 통해 올렸다.

SK이노베이션과 SK하이닉스의 비중이 각각 287억8000만원과 245억1000만원으로 높았다. SK건설·SK케미칼· SK텔레콤·SK브로드밴드 등도 150억원 안팎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들어 계열사 의존도가 더욱 심화됐다. SK텔레콤·SK네트웍스·SK모바일에너지·SK플래닛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상반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상반기까지 매출이 전무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만 24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로 인해 SK행복나래의 매출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는 963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동기 대비 39.39%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SK가 MRO코리아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한 것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계열사와의 거래가 사실상 수의계약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계약서도 없다. SK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올 초 SK행복나래 강대성 대표의 지시로 계열사와의 모든 거래에 대한 계약서를 새로 작성했다”며 “이전까지는 계약서조차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룹 차원에서 매출을 밀어준 정황은 다른 곳에서도 나오고 있다. 강대성 대표는 지난 8월5일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회장을 만나 계열사 물량 확대를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대성 대표가 관계사에 협조 요청

강대성 대표가 김창근 회장과의 미팅을 앞두고 관계사별 요청 사항을 취합한 내부 문건에 관련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다. 이날 미팅은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SK행복나래 전략기획팀 김 아무개씨가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축전지는 그동안 직거래 품목이었지만 문건에는 ‘SK행복나래를 통해 그룹사가 일괄 구매하도록 변경 요청한다’고 표시돼 있다. 지난해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기존 납품 물량 외에 추가로 900억원 수준의 물량 확대를 협의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SK행복나래의 매출이 1500억원대였음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SK텔레콤의 경우 연간 구매 금액을 사전에 논의한 정황도 나오고 있다. 문건에선 ‘지난해 감사위원회에서 연간 구매 금액을 150억원으로 계약·운영했으나 올해는 SCM실(구매팀)의 통제로 인하여 거래 영역이 축소되고 있다’고 밝혔다. SK네트웍스도 ‘타 관계사 대비 실적이 미흡한 만큼 본사 차원에서 통합 구매 카테고리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SK모바일에너지는 수의계약을 통한 구매에서 경쟁 입찰로 변경되면서 SK행복나래 물량이 감소했다고 했고, SK플래닛은 사옥 이전(2013년 12월 예정)과 관련된 물량을 요청했다.

SK그룹 측은 “행복나래 관련 팀이 매출을 올리고 싶은 마음에 무리한 요구를 한 것 같다”며 “그룹에서 밀어주려고 했다면 이런 말이 나왔겠느냐”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SK행복나래의 이익은 100%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며 “계열사를 통해 올린 매출은 다시 소외 계층이나 영세 사회적 기업에 되돌아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SK행복나래는 MRO업체로 자체 생산 품목이 전혀 없다. 회사의 매출 상승은 기존 협력업체의 희생으로 연결될 수 있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에 괴는’ 일이 없도록 주무 부처의 세심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재벌 소유 사회적 기업·공익 재단의 꼼수 


SK그룹이 사회적 기업을 추진한 것은 2011년이다. 최태원 회장 지시로 전환 논의가 본격화됐다. 당시 재계에서는 대기업 MRO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공정위는 재벌 계열 MRO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웅진그룹 6개 계열사가 34억2800만원의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삼성은 MRO 사업체인 아이마켓코리아를 인터파크에 매각했다. SK그룹은 사회적 기업으로의 전환을 발표하고 사명도 ‘SK행복나래’로 변경했다. 하지만 공정위 조사로 사회적 기업 전환에 대한 진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SK행복나래는 지난해 사회적 기업 인증 신청을 앞두고 고령자와 편부모 가정, 장애인 등 소외 계층 14명을 입사시켰다. 하지만 올 7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직후 해임을 검토했다가 내부 반발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에는 원가 절감을 위해 협력업체 직원을 편법으로 고용했다가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사회적 기업은 위장 간판이고, 경제민주화 이슈로 불거진 일감 몰아주기 비난 여론을 피하려는 꼼수가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나머지 그룹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애경그룹은 지난 9월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함께 친환경 사업을 펼친다고 발표했다. 장영신 회장 지시로 10억원 규모의 ‘애경환경기금’ 조성 계획까지 밝혔다. 하지만 애경그룹은 2010년 5월에도 친환경 세제 리큐를 출시하면서 연간 2억원씩 5년간 10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리큐는 2011년 190억원, 지난해는 260억원으로 매출이 급증했다. 하지만 적립금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알려지면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재벌 총수들이 운영하는 공익 재단의 경우 문제가 심각했다. 2011년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재벌 계열 공익 법인은 45개에 달한다. 하지만 보유 재산의 대부분이 계열사 주식인 데다 배당에만 의존하는 처지여서 진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재단의 경우 배당금마저도 전무했다. 권오인 당시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팀장은 “보유 재산의 평균 배당률이 1.59%에 불과하기 때문에 배당 수익으로 고유 사업을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고유 목적 사업의 용도보다는 재벌 일가의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우호 지분용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