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가 좋을까 선박이 나을까
  • 정은호│금융투자연구원 대표 ()
  • 승인 2013.11.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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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변동 부담 더는 대체 투자 인기

수능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10월의 마지막 날. 여의도에서도 매일매일 날수를 헤아리고 있다. 바로 국내 주식형 펀드 연속 환매 일수. 10월 말일로 40일째, 8월28일 이후 하루도 쉬지 않고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환매가 이어지고 있다. 금액으로만 6조원에 달한다. 환매의 시작은 지수가 1880포인트 수준이었던 때부터였다. 6월 말 코스피지수가 1770 수준의 단기 저점을 찍은 후 1930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하락한 후 회복하는 시기였다. 그러나 환매가 시작된 이후에도 지수는 쉬지 않고 상승해서 2050포인트를 통과했다. 지수가 오를수록 환매 규모는 더욱 커지는 추세다.

수익 실현, 소요 자금 유동화 등 환매 목적은 다르지만 많은 투자자는 불확실한 주식시장에 대해 염증을 느끼는 듯하다. 그러나 금리를 생각하면 환매 자금도 어딘가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고민은 거액의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좀 더 안전한 채권으로는 수익률을 맞출 수 없고, 주식의 변동성도 부담되고, 결국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대체 투자(alternative investments)다.

정보력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선호

대체 투자는 주식·채권 등 전통적인 수익 구조 이외에 다른 수익을 제공하는 투자 대상을 의미한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헤지펀드, 원자재, 부동산, 사모투자펀드(PEF; private equity fund), 사회간접투자(SOC), 벤처캐피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우리나라 기관투자자의 최대 투자 화두도 대체 투자다. 향후 지속적으로 대체 투자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 세계 연·기금의 교과서’로 불리는 캘리포니아 주 공무원 퇴직연금인 캘퍼스(CalPERS)의 경우도 2400억 달러의 운용자산 중 대체 투자 비중이 30%에 달한다. 수익의 기반이 되는 주식과 채권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는 막대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일반 투자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대체 투자 기회를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물론 일반 투자자도 펀드 투자를 통해 대체 투자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실제 대체 투자로 분류되는 많은 펀드가 설정됐고 현재도 운용되고 있다. 대부분은 성공적이었지만 일부는 투자자에게 참혹한 결과를 안겨주기도 했다.

투자자에게 어려운 부분은 대체 투자 대상이나 펀드의 종류가 워낙 다양해 일반적인 주식형 또는 채권형 펀드와 달리 위험 요인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운용사 입장에서도 부동산·선박·원자재 등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전문가를 고용해 상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잘 설계한 펀드의 경우에도 운용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위험 요인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생긴다.

대체 투자 펀드는 투자 대상의 특성 때문에 흔히 특별 자산 펀드로 분류되며, 14조원 규모로 설정돼 있다. 주식형 펀드는 환매가 일어나고 있지만 특별 자산 펀드의 설정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체 투자 펀드 중 가장 인기 있고 익숙한 형태는 선박펀드다. 선박펀드의 일반적인 구조는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선박을 만들거나 중고 선박을 사들여 용선사에 일정 기간 빌려주고 받는 용선료를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구조다. 투자 기간이 종료되면 중고 선박을 매각해 얻은 금액을 투자자에게 돌려준다. 펀드 설정 전에 중고 선박 매입, 용선사와의 계약, 투자 기간 종료 시 받을 수 있는 최저 금액에 대한 제반 계약을 준비하게 된다. 따라서 중고 선박을 매입하는 경우 펀딩만 이루어지면 곧바로 투자와 함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한다.

위험 요인 명확히 이해해야

선박펀드는 펀드 자금이 선박 매수에 쓰이는 까닭에 운용되는 기간 동안 환매가 금지되는 폐쇄형으로 설정된다. 그리고 환금성을 보장하기 위해 거래소에 상장시켜 투자 기간 중 현금화가 가능하도록 만든다. 실제로는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투자 자금이 투자 기간 동안 묶여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동안 여러 선박펀드가 잘 운용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내 인기를 얻었다.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2007년 모집돼 운용되다 올해 4월 상장이 폐지된 코리아퍼시픽 시리즈다.

이 펀드는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중고 선박을 매입해 용선사에 임대한 후 얻은 용선료를 배당한다. 만기에 선박을 매각해 얻은 자금을 상환하는 구조로 5호의 경우 만기는 9년, 6호는 5년으로 설계됐다. 만기에 받을 수 있는 선박 매각 금액은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로부터 잔가 보장 계약을 통해 최저 금액을 보장받아 수익률이 거의 확정되는 구조였다. 7호도 거의 유사한 구조로 설계됐다. 5호의 경우 연 9%의 수익률을 9년간, 6호의 경우 최대 연 8.5%를 5년간, 7호의 경우 최대 연 8% 이상의 수익을 10년간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펀드였다. 특히 용선사의 계약 불이행을 방지하기 위해 추가로 용선사의 선박 3척을 담보로 잡고, 용선사의 모회사를 통해 계약 이행에 대한 보증을 서게 했으며, 에스크로 계좌와 통화스와프 계약을 통해 최대한 수익을 확정하는 구조다.

그러나 초기에 잘 운용되던 펀드는 2008년 말부터 해운업이 불황에 빠지고 용선사가 유동성 위기에 처하면서 용선료를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보증을 섰던 모회사와 자회사가 함께 어려워지면서 결국 이 펀드의 주식은 올해 4월 상장 폐지돼 투자자들의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또 하나는 일명 ‘기숙사 펀드’다. 이 펀드의 시초는 예전 산은자산운용의 ‘산은건대사랑특별자산’ 펀드다. 이 펀드는 투자자의 자금을 모아 건국대 서울캠퍼스에 기숙사를 건립해 학교에 기부 채납한 후 대출 채권 상환 시까지 기숙사 운영권을 펀드가 소유하는 구조다. 건국대가 서울캠퍼스의 토지에 대한 무상 사용권을 제공하고, 기숙사에 대해 연 75%의 입실률(9개월 만실)을 보장하며, 기숙사 입실률이 높은 경우에는 펀드 설정일로부터 11년 5개월이 경과한 후 운영권을 돌려받는 형태다. 이 펀드는 현재까지 잘 운용되고 있으며 매년 8%가 넘는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 펀드가 성공한 이후 숭실대·서강대·강남대 등이 펀드를 통해 기숙사를 건립해 운영하고 있다. 펀드 자체는 성공적이어서 투자자에게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제공하고 있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펀드 수익률이 학생의 높은 기숙사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숙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연 8% 정도의 수익률이 적정했을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학생의 주머니를 털어 펀드의 수익률을 맞춰주고 있다는 비난이 나온다. 물론 펀드와의 계약이 장기여서 중도에 계약 조건 변경이나 해지가 쉽지는 않겠지만 사회적인 분위기가 펀드의 위험이 높아지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밖에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는 SOC 펀드, 부동산 펀드 등도 장기·폐쇄형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선박펀드의 실패 사례에서 보듯 투자 기간이 길다는 점은 펀드 투자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위험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숙사 펀드는 수익의 원천이 어디인지, 장기 투자 시 사회적·제도적 변화가 펀드의 위험과 어떻게 관련돼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대체 투자는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투자 대상의 특징과 위험 요인까지 명확히 이해하고 투자해야 한다. 증권가에서 흔히 하는 얘기처럼 ‘대체 투자는 대체로 어렵고 위험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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