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회장 연봉은 정보기관도 모른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1.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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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원설 나돌아…검찰, 비자금 조성 여부 조사

“이석채 회장의 연봉은 정보기관에서도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 이석채 KT 회장의 사퇴설이 본격적으로 불거질 무렵 정보통신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한 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당시부터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이 회장에 대한 온갖 의혹이 제기됐는데, 그중 하나가 일반 직장인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1년에 챙겨 가는 돈이 70억원이 넘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 회장도 이러한 의혹을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11월3일 사의를 표명한 후 임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그는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급여와 성과급도 한 치 숨김없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기본적으로 받고 있는 급여는 물론 주식으로 지급되는 장기 성과급까지 공개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 회장은 고액 연봉 의혹과 관련해 “전임 사장의 급여 체계를 그대로 따랐다”고 해명했다.

KT가 공시한 2012년도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주주총회에서 승인한 임원의 보수는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8명을 포함해 모두 65억원이다. 이 중 사내이사 3명에게 지급된 금액은 39억86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13억2900만원으로 나와 있다. 이 회장이 다른 사내이사보다 많은 금액을 받아 갔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70억원에는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석채 KT 회장이 10월29일 르완다에서 열린 ‘아프리카 혁신 정상회의’에 참석한 후 수행기자단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 회장은 귀국 다음날인 11월3일 사의를 표명했다. ⓒ 뉴시스
의문점 많은 KT 공시 자료들

이와 관련해 KT 관계자는 “공시된 금액 이외에 급여가 지급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어기면 공시 위반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의혹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 회장의 연봉 금액은 “터무니없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그동안 KT가 공시한 자료를 살펴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발견된다.

이 회장이 취임한 해인 2009년 8월14일 공시한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사내이사 3명에게 지급된 보수 총액은 4억26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지급액이 1억4200만원으로 나와 있다. 반면 올해 8월14일 공시한 반기 보고서에는 사내이사 3명에게 지급된 보수 총액이 20억1700만원으로 1인당 평균 지급액이 6억7200만원으로 나타났다. 4년의 세월을 감안하더라도 금액에 차이가 너무 크다.

검찰에서도 이 부분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임원들의 연봉을 올린 후 이를 돌려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검찰이 이 회장을 포함한 주요 임원들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회장직 수행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던 이 회장이 결국 백기를 든 것도 배임 혐의로 출발한 검찰 수사가 비자금 조성 등 개인 비리 의혹으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임원들 연봉 올려 비자금 조성 의혹

이 회장은 과거 검찰에 기소된 적이 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낸 그는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PCS 특혜 의혹 건으로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 회장은 정통부장관 재임 시 PCS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특정 회사에 유리하도록 배점 방식을 바꾼 혐의 등을 받았다. 당시 미국에 머무르고 있던 그는 3년 정도 지난 2001년에야 귀국해 뒤늦게 기소됐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에도 배임 혐의가 전부였다면 이 회장이 끝까지 버텼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비자금 조성 의혹은 이 회장의 사퇴설이 나올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이 회장은 KT가 공기업 시절 확보한 부동산을 헐값에 매각한 반면, 기업을 사들일 때는 비싼 값에 인수해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됐을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회사 내 요직을 맡았던 측근들이 해외로 상당한 자금을 빼돌렸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사실이라면 그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갔을지 여부도 주목된다. 사정기관 출신의 한 정치권 인사는 “MB(이명박) 정권 실세의 차명 재산으로 관리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10월22일 KT 본사와 계열사를 압수수색했다. ⓒ 뉴시스
이석채 KT 회장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여권 내에서는 이 회장과 관련한 각종 비리 의혹이 문건으로 작성돼 떠돌았고, 이 중에서 청와대까지 보고가 올라간 문건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이 올해 중순 관련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보고서 형태의 문건에도 이러한 정황이 잘 나타나 있었다. 비리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 KT 전·현직 간부들의 실명이 거론돼 있는가 하면, 한 해외 사업과 관련해서는 내사 단계를 넘어섰다는 부연 설명이 달려 있기도 했다.

이 회장을 겨냥한 사퇴 압박은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업을 다각화하는 등 ‘마이웨이’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면서 친박(친박근혜) 인사를  KT에 영입했다.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홍사덕 전 의원과 공보단장을 맡았던 김병호 전 의원을 경영 고문으로 영입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돼 새누리당을 탈당했던 홍 전 의원은 이전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계 좌장이었다. 10월 초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 상임의장에 선임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자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김 전 의원도 친박계 내에서 박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MB 정부 시절 ‘친이(친이명박) 낙하산’이 대거 내려와 비난을 받았던 KT에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친박 낙하산’이 내려앉자 이 회장의 사퇴 압력에 대한 방어용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청와대와 KT에서는 이 회장에 대한 사퇴 압력 자체를 부인했지만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친박 인사들의 영입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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