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문재인, 돌아올 다리 불살랐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11.1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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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대통령 밀약설’ 폭로로 갈등 증폭… 불신 커져 사실상 결별

2012년 11월은 야권의 두 유력 대선 후보였던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양측이 날카롭게 신경전을 벌일 때였다. 18대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두 후보는 전격적으로 후보 단일화 협상을 선언했다. 하지만 단일화 룰을 두고 협상과 결렬을 반복했다. 협상 테이블은 결국 감정싸움으로 치달았다. 그 과정에서 험악한 모양새가 연출되기도 했다. 11월12일 단일화 협상 실무팀이 구성된 지 사흘 만에 안 후보 측이 협상 중단을 선언했다. 협상 과정에서 양측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단일화 협상 테이블이 있었다. 바로 정책 단일화 협상이었다. 후보 단일화 협상장에서는 양측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난타전을 벌인 것과 대조적으로, 정책 단일화 협상장은 사뭇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양측은 후보 단일화 룰 협상 팀 이외에도 정치혁신·외교통일·경제복지 3개 분야의 정책 단일화 협상팀을 별도로 가동하고 있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당시 경제복지 분야 정책 단일화 협상 과정에 참여했던 민주당 관계자는 “단일화 룰 협상이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정책 단일화 협상은 순조로웠다. 두 후보 측이 큰 이견 없이 정책 단일화를 완성하고 있었다”며 “두 후보가 단일화 TV 토론회를 할 무렵에는 단일 정책 합의안이 공식 발표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졌고, 두 후보의 마지막 확인(final confirm) 절차만 남겨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결국 문재인·안철수 정책 단일화 최종안은 안 후보의 대선 후보직 전격 사퇴로 세상에 빛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큰 진통을 겪은 단일화 룰 협상과 달리 매끄럽게 진행된 정책 단일화 협상 과정은 야권의 두 대선 후보가 그나마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었다. 정책보다는 역시 누가 후보가 되느냐가 우선이었던 탓이다.

“안철수 측, 접촉 채널 통해 ‘미래 대통령’ 제안”

한때 야권 연대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이제는 야권 분열의 도화선이 됐다. 대선 후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정권 교체’라는 대의 아래 뭉쳤던 야권 연대의 주인공들이 서로 등을 진 채 반목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이미 두 사람이 ‘정치적 파혼’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평가한다. 파혼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두 사람이 동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사람으로 하여금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도록 만든 한 권의 책이 있다.

지난해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대선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지낸 홍영표 민주당 의원이 최근 펴낸 <비망록>(부제-차마 말하지 못한 대선 패배의 진실)이 그것이다. <비망록>의 핵심은 대선 직전 안 의원 측이 내놓았다는 비밀스러운 제안이다. 지금 정국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는 이른바 ‘미래 대통령 밀약설’이다. 이 책에 따르면, 밀약의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미래 대통령’으로 안 의원을 지명해줄 것과 공동 신당 창당 이후 ‘정치 정당 쇄신의 전권’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홍 의원은 <비망록>에서 “(2012년) 12월2일경, 한 접촉 채널에서 안철수 후보와의 공동 선거운동을 위한 사전 협의안의 하나로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안 의원 측이) 해왔다”며 “이것이 바로 그 문제의 ‘미래 대통령’의 언급이 들어 있는 제안이었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문건 내용까지 소상히 공개했다.

‘안 전 후보는 이미 국민의 마음속에 우리나라 미래의 대통령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략)… 문재인·안철수가 새로운 정치 공동 선언의 실천을 위해 필요하면 완전히 새로운 정당의 설립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안철수 전 후보가 새로운 정치 정당 쇄신의 전권을 갖고 정치 개혁을 앞장서 추진토록 하겠습니다.’

홍 의원은 이후 처리 과정도 소개했다. 그는 책에서 “(우리가) 아무리 공동 선거운동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런 표현과 제안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첫 제안을 받은) 이후 12월14일 다른 접촉 채널을 통해 (양측이) 입장을 조율했다”며 “결국 최초에 안철수 후보 측에서 제안했던 ‘미래 대통령’ 언급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그려나간다’는 수준으로 정리됐고, 선대위 회의에서 문재인 후보가 그런 내용을 발언함으로써 일단락됐다”고 밝혔다.

문건은 단순 메모? 안철수 의중 담긴 것?

‘친노’ 핵심인 홍영표 의원이 <비망록>을 통해 폭로한 미래 대통령 밀약설에 대해 안철수 의원 측은 발끈하고 있다. 안 의원의 대변인 격인 송호창 무소속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선 당시 안철수 캠프에서) 총괄본부장을 하면서 모든 활동을 매일매일 체크하고 확인했다. (홍 의원이 주장하는 미래 대통령을 언급하는 문건은) 당시에도 없었고 지금 확인을 해도 없다”며 “(미래 대통령 밀약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홍 의원은 “책에 소개한 미래 대통령 밀약설 내용은 문건을 그대로 전제한 것”이라며 “문건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고 비망록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진위 논란이 증폭되는 과정에서도 홍 의원은 11월8일 현재까지 문건을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문건 작성자나 전달자에 대한 신상정보도 일절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문건의 실체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홍 의원이 문건을 전달받은 ‘채널’의 성격과 형식 등으로 쏠리고 있다. 이 채널의 위상에 따라 해당 문건이 얼마나 안 후보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망록>에 따르면, 홍 의원은 해당 문건을 ‘12월2일경 한 접촉 채널’을 통해 안 의원 측으로부터 전달받았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12월2일은 안 후보의 문 후보 지원 유세를 협의하기 위한 양측의 비공식 회동이 있던 날이었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언론에 언급된 이 비공식 회동에서 미래 대통령 밀약설의 문건이 안 의원 쪽에서 문 의원 쪽으로 건너갔을 수 있다. 하지만 홍 의원은 기자에게 “지난해 11월23일 안 의원이 대선 후보직을 사퇴한 이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선거운동 지원 등 협의가 진행됐다”며 “12월2일 비공식 회동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고, 다양한 채널 중 하나를 통해 전달받은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비공식 회동과 문건은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홍 의원이 미래 대통령 밀약설의 근거로 제시한 문건은 양측의 협상 테이블에서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안 후보의 사퇴 이후에도 양 캠프 관계자들은 수시로 후보 단일화 이후 선거운동 지원을 위해 접촉할 때였다. 결국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 의원 측 선거 캠프 관계자가 임의로 작성해 문 의원 측 캠프에 전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안철수 전 대선 후보가 2012년 12월13일 대전 공동 유세에서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답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의원, <비망록> 출판에 진노”

<비망록>에 나와 있는 내용들은 단순 해프닝으로 묻힐 수도 있다. 그러나 후폭풍은 거세다. 이 한 권의 책으로 문재인 의원과 안철수 의원 진영은 사실상 결별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 때문일까. <비망록> 출간에 대한 관심은 책 내용보다는 왜 냈는지 그 배경에 더 쏠린다. 일단 민주당 등 야권의 분위기는, 이 책의 출간 배경에 대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문 의원의 반응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싣는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문 의원은 홍 의원의 <비망록>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고, 협상 내용이 공개됐다는 사실을 알고 진노했다고 한다”며 “문 의원이 홍 의원을 불러 책 출간에 대해 질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 의원으로부터 질책을 들은 바 없다”며 “(내가) 문 의원에게 질책을 받아야 할 처지의 사람도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또 <비망록>이 친노의 수장인 문 의원이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출간됐다는 정황도 나온다. 친노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의원은 “홍 의원이 친노와 조직적으로 협의해 책을 출간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며 “실제 <비망록>이 출간된 이후 친노에게 여론의 화살이 돌아온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의원은 11월8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홍 의원의 <비망록> 출판기념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망록>의 출간 시점에 대한 민주당 내 비노 진영의 생각은 다르다. 이들은 문재인 의원을 중심으로 지난 대선을 이끌었던 친노 진영이 조직적으로 안 의원에게 도덕적 흠집을 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 배경에는 민주당 내 헤게모니 싸움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방선거가 7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지방선거 전에 안철수 진영과의 야권 연대를 위한 모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부쩍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당의 당권을 쥐고 있는 비노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결국 홍 의원은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비망록> 출간이 민주당의 정체성 강화와 안철수 진영과의 거리 두기를 꾀하려는 친노 진영의 ‘기획 출판’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안 의원을 향해 공격의 칼날을 세우면서 민주당 비노 진영을 견제하고, 향후 지방선거와 당권 경쟁에서 친노의 힘을 키워 다시 주류가 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점차 당내 주류와 비주류가 야권 연대에 대한 입장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며 “<비망록> 출간을 단순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야권 연대 흔들기로 작용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각자도생 명분 찾는 친노와 안철수 진영

앞서 언급했듯 미래 대통령 밀약설 파문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는 야권 분열의 도화선이 될 개연성이 작지 않다. 안철수 의원 측은 애써 <비망록> 출간에 담담한 모양새다. 하지만 이미 친노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인식이 <비망록> 출간으로 확고해졌다는 게 내부 여론이다. 안철수 의원 측의 한 인사는 “그동안 안철수 진영 내부에서도 패권 의식이 강한 친노 세력은 미워도, 문재인 의원은 봐줄 수 있고 보듬고 가야 한다는 여론이 일부 있었다”며 “문 의원이 주장한 국정원 특검 도입을 최근 안 의원이 제안하고 나선 배경도 사실상 이런 내부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비망록> 출간처럼 끊임없이 안 의원에게 도덕적 상처를 입히는 상황에서 친노 진영과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진영 내부에서 더욱 확고해졌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 측이 최근 독자 신당 창당에 부쩍 힘을 쏟는 것도 <비망록> 출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친노 진영도 이번 기회로 당권 경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비망록> 출간으로 인해 당 안팎에서 비난이 일면서 당장은 운신의 폭이 좁아들겠지만, 친노 진영의 굴레로 작용한 대선 패배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친노 재도약의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향후 안 의원에 대한 공격의 수위가 점차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 비노 진영의 한 인사는 “친노 인사들에게 안철수 의원은 진보 정치 세력에 기생하는 숙주 정도로 인식된다”며 “안 의원은 언제든 내칠 수 있는 대상쯤으로 여기는 인식이 <비망록> 파문에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 힘 받는 ‘빅텐트론’ 


손학규 민주당 고문이 지난 9월 말 8개월간의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10월 재보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재등장하자, 손 고문의 재보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정치권에서 감지됐다. 하지만 손 고문은 출마 카드를 접었다. 애초 손 고문의 출마 고사를 두고 ‘시기상조론’이 거론됐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손 고문을 대하는 당내 분위기도 한몫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손 고문이 출마하려고 했을 때 당내 친노 쪽 반응이 냉랭했다”며 “등을 떠밀어 출마해달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반응이 시원치 않으니 당연히 출마를 고사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손 고문의 10월 재보선 출마 고사 배경은 한때 대권 잠룡으로 불리던 이들의 현주소를 대변한다. 하지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옛 잠룡들이 승천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민주당 비노 진영과 야권의 차기 대권 후보들이 동거하는 ‘빅텐트론’이 그 동력이다. 빅텐트론은 커다란 정당의 우산 아래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정치 세력이 모두 결집해 집권을 도모하는 전략을 말한다. 일종의 연대·연합 정치인 셈이다. 지난해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빅텐트론이 야권의 집권 시나리오로 부각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현재 야권에서 수면 위로 떠오른 빅텐트론의 주요 대상은 손학규 고문과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안철수 무소속 의원 그리고 김한길 민주당 대표 등 당 안팎의 비노 진영을 아우른다. 이들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지붕 아래서 연대·연합 정치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빅텐트론이 부각된 것은 옛 잠룡들의 최근 행적과도 무관치 않다.

손 고문과 김 전 지사는 지난 대선 이후 독일 유학길을 선택했다. 독일은 연대·연합 정치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정치 선진국이다. 김한길 대표 등 민주당 비노 진영이 중심이 된 지도부의 인식도 궤를 같이한다. 민주당 비노 진영의 한 인사는 “야권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후보 단일화 등 야권의 단결을 이끌어내는 게 핵심”이라며 “민주당 비노뿐만 아니라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송영길 인천시장 등 친노 성향 486들도 안철수 진영을 포함해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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