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구역이야, 넘어오면 죽어”
  • 이규대 기자·조은혜 인턴기자 ()
  • 승인 2013.11.1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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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화하는 택시기사 사조직…‘목 좋은 곳’ 장악하고 이권 독점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지난해 말 ‘택시법 논란’을 계기로 택시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바 있다. 문제의 핵심은 택시의 공급 과잉에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중교통이 대폭 확충되면서 수요가 줄었음에도 택시 공급은 끊임없이 증가해왔다. 선거 정국을 맞아 제도적인 ‘생계 보장’을 요구하는 업계의 요구가 빗발쳤다.

정부는 감차보상금 지급, 운송 비용 전가 금지, 복지 기금 조성 등을 골자로 한 ‘택시운송사업 발전을 위한 지원법’을 내놓았다. 지난 6월 국무회의를 통과해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그럼에도 업계의 불만은 상당하다. 감차보상금이 너무 적고, 당초 업계의 요구였던 ‘대중교통 수단 인정’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다수 택시기사가 열악한 수입 탓에 앓는 소리를 한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불법적인 수단으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최근 조직폭력배를 연상시키는 사조직을 꾸려 이권을 독점해온 세력들이 잇따라 적발됐다.

10월24일 서울 동대문 패션타운 주변에 택시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장거리 운행’ 독점하며 온갖 불법 일삼아

‘나라시’. 장거리 운행을 뜻하는 택시기사들의 은어다. 장거리 운행을 반복하면 택시기사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큰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제한된 시간에 단거리 운행을 여러 번 하는 것보다는 ‘나라시’를 뛰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목 좋은 곳’은 장거리 운행 수요가 많은 곳이다. 택시기사들의 사조직은 이곳의 이권을 틀어쥐기 위해 결성돼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조폭 택시’ 영업을 해온 택시기사 12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경기 안양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다른 택시들의 영업을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방법은 친목 모임을 가장한 사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안양 인덕원역과 과천 경마장, 서울구치소 앞 등 장거리 손님이 많은 곳을 독점하려 들었다. 회원들끼리 순번을 정해 장기 주정차 및 호객 등의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비회원 기사들이 장거리 손님을 태우려 하면 협박해서 차량을 강제 이동시켰다. 그 과정에서 회원 3?4명이 합세해 집단 폭행을 저지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택시기사 30명을 집단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등 영업을 방해해 약 6000만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것이다.

그보다 한 달 앞선 지난 10월, 수원의 택시기사 사조직 ‘하나회’가 경찰에 적발됐다. 하나회의 활동 양상은 안양의 사례와 거의 유사했다. 장거리 운행이 잦은 삼성전자 입구와 수원역 등을 무력으로 차지했다. 다른 택시기사들이 진입하려 들면 폭력적으로 제압했다. 하나회는 호객 행위, 총알택시 운행, 바가지요금 등 온갖 불법 행위를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단속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며, 장거리 수요가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러한 행태가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인식이다.

서울의 경우 사당, 강남, 영등포 등이 장거리 운행이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비록 명시적인 형태의 사조직은 아닐지라도, 사실상 이곳을 선점해 암묵적으로 ‘카르텔’을 형성한 기사들이 텃세를 부리는 경우가 상당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남에서 택시 운행을 자주 한다는 한 택시기사는 “금요일과 토요일 자정 전후쯤이면 이미 택시가 늘어서 있다. 이들은 빈 차임을 알리는 신호를 꺼놓고 기다리다가 장거리 손님만 골라 태워간다. 질이 좋지 않고 거친 일부 기사들 탓에 다수의 선량한 택시기사들이 욕을 먹고 피해를 본다”며 억울해했다. 또 다른 기사는 “승차 거부의 60~70%가 무엇 때문이겠는가. 다 불법적으로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일반 택시들은 아예 접근하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일부 택시가 좋은 목을 미리 점령해놓고 다른 기사들이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는 탓이다.

지난 5월26일 사당역 주변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평소 장거리 운행을 주로 하는 택시기사 2명이 칼부림을 벌인 것이다. 사당역 인근에서 7년째 장사를 하는 한 자영업자는 “이곳에서 장사하면서 택시들을 매일 봐왔다. 결코 그 두 명 만의 일이 아니다. 장거리 승객을 차지하려다 살벌한 싸움이 일어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사당역 5번 출구 인근에서 만난 한 모범택시 기사는 “밖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당시 서로 승객을 차지하려 싸우다 다툼이 났던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사유로 인한 말다툼이 칼부림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칼부림을 벌인 두 사람은 같은 ‘조직’에 소속돼 호형호제했던 사이였다고 한다. 택시 수요가 줄어들면서 과거에 비해 텃세나 경쟁이 감소한 측면이 있지만, 사당이나 강남 같은 곳에서는 여전히 장거리 운행의 이권을 독점하려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현장에서 나타난 주된 반응이었다.

외국인 많은 동대문에도 사조직 기승

사조직 택시의 주요 타깃 중 하나가 ‘외국인’이다. 한국 물정에 어둡고 언어가 서툰 외국인을 대상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다. 외국인 승객을 집중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사조직이 창궐하는 배경이다.

동대문이 대표적이다. 동대문 패션타운 관광특구는 연간 250만명이 넘는 외국인이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동대문을 찾은 외국인에게 관광 안내를 하는 40대 남성 정 아무개씨는 “종합 패션쇼핑몰이 밀집된 거리가 늦은 밤 택시기사들의 무법지대가 된다. 자정 무렵이면 택시들이 일대를 점령하고 있는데, 많을 때는 30대도 넘는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계속 운행한다. ‘날건달’ 같은 행색을 한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쑥덕거린다”고 말했다.

승차 거부, 바가지요금 등 불법 행위가 자주 일어난다. 수십 대의 택시가 ‘빈차’ 등을 켜두었음에도 한국인이 다가가면 ‘예약됐다’며 태워주지 않는다. 외국인에게만 말을 걸며 호객 행위를 한다. 다른 주요 관광지인 명동·홍대입구까지의 택시비는 모두 5000원 안팎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을 상대로 이들이 받는 돈은 대략 5만원 상당이라고 한다. 법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 영수증을 주지 않거나 잘못된 영수증을 끊어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기다 카드는 안 받고 현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정씨는 “한번은 홍콩에서 온 관광객이 홍대 앞에서 동대문까지 오는 택시를 탔는데 4만원을 부르더라.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느낀 관광객이 택시에서 내린 후 택시 번호판을 촬영하니까 택시기사가 내려 사진기를 부수려고 했다. 끝내 카메라 메모리카드를 빼서 던져버렸고, 승객과 몸싸움까지 벌였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업계 종사자들은 당국의 단속 의지가 부족함을 피부로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화로 민원을 제기해도 시정하겠다는 말뿐이지 전혀 효과가 없다” “단속한다고 말만 해놓고 안 한다” “뒤에 비호 세력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이성운 기획실장은 “소수 기사의 불법 행위 탓에 많은 선량한 기사가 피해를 보는 실정이다. 택시업계의 처우 개선과 함께 이런 불법 행위를 철저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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