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한 12억 누구 손에 들어갔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11.13 15:0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70억 홈 네트워크 계약 과정에서 오간 돈 검찰, 수상한 거래 수사 나서

국내 대표 정보통신(IT) 기업인 LG전자와 SK C&C의 수상한 거래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두 회사가 수백억 원 규모의 납품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뒷거래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사건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전 유성구청은 2006년 말부터 유성구 장대동 유성시장 인근을 재정비하는 사업에 착수했다. 사업 예정 부지가 33만8000m²(10만2245평)에 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특히 유성시장이 위치한 장대1구역은 60층 규모의 랜드마크 빌딩과 고층의 주상복합아파트, 어뮤즈타운 등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국내 건설업계뿐 아니라 시스템통합(SI)업계, 전자업계도 큰 관심을 보였다. SK C&C와 LG전자는 2008년 6월 장대1구역 도시환경정비조합 설립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와 잇달아 계약을 체결했다. SK C&C는 707억원 규모의 U 시티 사업(차세대 정보화 도시 사업)을 맡았다. LG전자는 798억원 규모의 공조 설비를 시공하기로 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문제는 SK C&C가 수주한 사업 일부를 LG전자에 하청을 주면서 불거졌다. SK C&C는 2008년 10월 LG전자와 270억원 규모의 홈 네트워크 제품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대전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M사가 중간에서 수주 역할을 대행했다. LG전자는 2008년 11월 1차 알선 수수료로 11억8700만원(부가세 1억1000만원 포함)을 M사에 지급했다. 제품 납품에 따른 수금이 완료되면 2차 수수료를 지급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M사에 지급된 수수료에서 문제가 생겼다. M사 대표 명 아무개씨는 “LG전자와 SK C&C 직원에게 모두 돌려줬다”고 주장한다. 수수료로 받은 11억9000만원 중 4억5000만원은 LG전자에 보냈다. 나머지 7억4000만원은 SK C&C에 건넸는데, 이 중 일부가 다시 LG전자에 돌아갔다는 것이 명씨의 주장이다. 검찰도 현재 사라진 자금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SK C&C 측은 이와 관련해 “M사와 거래 관계가 전혀 없다. 수수료를 받을 이유가 없고, 회사 계좌에 찍힌 돈도 없다”고 밝혔다. 당시 관련 사업부에서 근무했던 직원들도 모두 퇴사해서 정확한 내용이 파악되지 않는다는 게 SK 측의 해명이다. SK C&C 관계자는 “당시 계약서나 품의서를 보면 LG전자가 15% 할인된 가격에 제품을 납품하겠다고 제안했다. LG전자 역시 공동 사업자였기 때문에 제품 호환성을 고려해 계약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장대1구역 재정비 사업은 계약만 하고 아직까지 조합조차 결성되지 않았다”며 “사업 착수도 안 된 상황에서 금전 거래가 있었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SK C&C 및 LG전자 직원과 협력업체 대표 간의 거래를 알 수 있는 판결문 사본. ⓒ 시사저널 구윤성
LG전자 고발로 검찰 수사 본격화

LG전자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번에 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은 LG전자의 내부 고발에 따른 것이다. LG전자는 2011년 8월 SK C&C와의 납품 계약을 주도한 자사의 간부 박 아무개씨의 비리 정황을 확인하고 내부 감사에 착수했다. 박씨는 감사가 시작되자 돌연 사직서를 제출했다. 박씨가 계약을 체결한 사업 역시 진척되지 않았다. 추진위의 승인을 받은 지 5년이 지나도록 조합이 설립되지 않았던 것이다.

LG전자는 M사에 1차로 지급했던 알선 수수료 11억8700만원을 고스란히 날릴 상황이 됐다. LG전자는 2012년 초 M사 대표 명 아무개씨에게 선지급 수수료를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명씨는 4억5000만원만 반환했다. 나머지는 반환을 거부했다. 이에 LG전자는 명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 9월 명씨에게 7억4000만원을 반납하라고 선고했다.

그런데 소송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LG전자 간부였던 박씨의 비리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고, LG전자는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서울 동부지검은 올 10월 중순 박씨를 구속 기소했다. 박씨는 M사에 지급된 알선 수수료 중 상당액을 돌려받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윗선 개입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LG전자 측은 “회사 역시 피해자”라고 강조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M사에서 LG전자 법인통장에 입금된 돈은 4억5000만원이 전부다. 다른 루트를 통해 추가로 수수료를 돌려받았다고 해도 법인통장이 아닌 만큼 회사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현재 계약 당사자인 SK C&C와 LG전자 직원, 알선 회사인 M사 대표의 공모 여부를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SK C&C의 주장대로라면 2008년 LG전자와 체결한 납품 계약에 알선 수수료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LG전자가 700억원대의 공조 시설 시공 사업을 따냈고, 제품의 호환성을 위해서라도 LG전자의 홈 네트워크 장비를 납품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M사가 계약을 알선하지 않아도 SK C&C는 LG전자 제품을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는 것이다. 관련 서류 역시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알선 수수료의 묘연한 행방

LG전자가 M사에 알선 수수료로 전달했다는 11억8700만원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LG전자와 M사의 계약서에는 납품액에 따른 구체적인 수수료율까지 표시돼 있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계약을 따낸 대리점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은 업계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계약에 참여한 SK C&C와 LG 직원들은 이미 퇴사한 상태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당시 계약을 알선한 M사 대표 명씨는 저간의 사정을 털어놓지 않고 있다. 명씨는 11월4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아직 얘기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 LG전자에 물어보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LG전자와 법적 다툼을 벌이던 과정에서 명씨가 했던 발언을 통해 이 사건을 유추해보면 이렇다. 명씨는 “SK C&C에서 LG전자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우리 회사(M사)를 통할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LG전자 측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다. LG전자 관계자는 “SK C&C에서 M사를 통해 계약을 체결할 것을 주문했다. M사는 대리점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수료를 지급하기 위해 별도로 대리점 등록 계약까지 체결했다”고 말했다. LG전자 측의 말이 사실이라면 “알선 수수료로 받은 돈을 LG전자와 SK C&C 직원에게 돌려주었다”는 명씨의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번 검찰 수사에서 사라진 수수료의 행방과 함께 IT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이 드러날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