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장기판에서 한국은 ‘졸’?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11.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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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베 정권 집단적 자위권 인정 북핵 대응 전략에 구멍 뚫릴 수도

정작 이웃 나라 한국과 중국에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미국과 러시아에는 지지를 요청해 원하는 답을 얻어내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향한 행보는 투트랙으로 움직인다. 바로 담장을 맞대고 있는 이웃은 무시하고 힘센 건넛마을만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10월3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뜻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일본은 재빠르게 러시아로 눈길을 돌렸다. 미국과 합의를 이끌어내고 불과 한 달 뒤인 11월2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양국 외교·국방장관 연석회담(2+2 회담) 이후 “러시아는 국가 안보 및 방어에 관한 일본의 설명에 만족하며, 양국 관계의 확대 및 신뢰 구축을 위한 기여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확장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북방 영토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던 두 국가는 경제 문제에서 큰 진전을 보였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 개발에 일본의 기술과 자본 투자를 요청했고, 일본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집단적 자위권의 대가로 미국은 군사비, 러시아는 투자를 얻어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0월27일 사이타마 현 소재 육상자위대 아사카 훈련장에서 열린 관열식(열병식)에서 사열을 하고 있다. ⓒ AP 연합
미국 군사비 절감 해법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

일본 아베 정권은 ‘다른 국가의 공격으로부터 일본만을 방어한다’는 개별적 자위권 대신, 동맹국이 공격받을 경우 판단에 따라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된 일본은 평화헌법 제9조에서 전쟁 포기, 교전권 부인, 전력 비보유를 명시했다. 결국 일본 평화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쪽은 자위대의 국방군화와 집단 자위권 인정을 핵심으로 삼는다. 미국 등 동맹국이 공격을 받을 경우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권리, 즉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라는 것이다.

지금 집단적 자위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경화한 일본 군사력이 해외에서 활동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군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한반도를 눈앞에 두고 자위대가 활동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로 미국을 공격하려고 할 때 일본은 ‘우리는 모르겠다’는 태도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은 일본을 지켜달라.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을 도울 수 없다’고 말할 것인가. 이런 이야기가 현실에서 통할 리는 없다.” 현재 일본 내에서는 이런 예시가 힘을 얻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을 얻으려는 일본의 움직임에 대해 한국·중국·북한 등 이웃 나라에선 경계와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백승주 국방부 차관은 11월6일 아베 정권의 집단 자위권 추진과 관련해 “일국의 안보 정책 변경이 타국 주권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며 “자위대가 한국 영토나 영해 등에서 활동하려면 한국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며, 미·일 양국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미국의 반응은 다르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걸맞은 기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부담을 나누자는 주문이다. 과거 문제가 됐던 2003년 12월 일본의 이라크 파병 때도 약 1000명의 자위대 숫자를 두고 “너무 적다”며 문제 삼았던 미국이다. 그런 가운데 자위권의 확장을 노리는 아베 정부가 들어섰고, 미국 역시 군사비가 감축되는 상황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집단적 자위권에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는 일본 내 극우주의 확산이나 중국의 부상에서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북아 정세 변화와 맞닿아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미·중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한국은 중국을 중심축으로 놓고 외교 정책을 짜고 있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북한이 핵실험에 나섰다. 특히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한국·미국과 거리감을 줄여 일본이 고립되는 이미지를 갖게 한다. 중국의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도전으로 영토를 둘러싼 중일 간의 소모전은 계속될 것이며,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얻어내며 미·일 동맹을 강화해 억지력을 보장받아야 한다.”(카와카미 타카시이 다쿠쇼쿠대학 교수)

미·일 동맹 강화가 미국 대외 전략의 린치핀

일본이 현실적인 이익을 얻는 동안 한국은 난감해졌다.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의 전략적 옵션이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일의 군사적 결속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미 동맹을 중심축에 뒀지만, 중국을 견인해 북핵을 억제하고 일본과 과거사 전쟁을 벌이겠다는 한국 정부를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양 진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당장 풀어야 할 판이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보다 우리 정부의 동의 없는 한반도 개입을 막는 데 집중하는 모습은 이런 현실론 속에서 나왔다. 이번 집단적 자위권 합의와 함께 강화된 미·일 동맹으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적 대결 구도가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중 관계의 갈등 요인이 증폭되고 일본과의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동북아가 새로운 냉전 구도에 빠지면 외교적 선택을 강요받을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정치대학원 교수의 지적이 새삼스럽지 않다.

앞서 말했듯 중국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고립되는 전략을 쓰고 있고, 미국은 한국·일본·호주 등을 중심으로 중국을 포위하려 한다. 이럴 때 예상해볼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집단적 자위권이 발동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충돌이 일어날 경우다. 현재 ‘주변 지역’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쓰이고 있는 이 범위에서 충돌 우려가 높은 곳은 한반도와 남중국해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일본이 영토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에서 충돌이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이 대결이 분쟁 혹은 전쟁으로 확대된다면,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에서 벌이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한국은 종속 변수로 휩쓸리게 된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10월3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도쿄에 있는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역을 참배했다. 이를 두고 “집단적 자위권은 인정했지만 (한국과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정치적 행보를 두고 “미국이 한국을 경시하고 일본을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는 예단을 내리긴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집단적 자위권을 둘러싼 갈등은 결국 미·일 동맹이 한미 동맹보다 더 중요한 린치핀(핵심축)이라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는 게 냉정한 분석이다. 그에 따라 북핵 문제 해결도 후순위로 밀린 모양새다. 현재의 복잡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북핵 대응 전략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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