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 잡았으나 계산기 두드리기 바빠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11.2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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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연석회의 속내 제각각…여당도 주류·비주류 다른 목소리

야권이 다시 한데 모였다. 정치권 밖의 시민사회까지 끌어들이며 세를 확장했다. 11월12일 민주당과 정의당, 안철수 의원 세력 그리고 시민사회·학계·종교계 등 재야 인사들까지 모두 참여한 가운데 ‘국가기관 선거 개입 진상 규명과 민주 헌정 질서 회복을 위한 연석회의’(연석회의)를 출범시켰다. 이들은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새누리당은 “정치 공세일 뿐”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국은 ‘특검’을 사이에 두고 여야 간 극한 대치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목표는 국가기관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하자는 것이지만, 여러 정치 세력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감안하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연석회의가 진행될지는 그야말로 고차방정식이나 마찬가지다.” 연석회의에 대한 전망을 묻는 질문에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당장은 특검 추진을 고리로 야권이 단일 대오를 구축했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대응,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각 정파의 전략 등에 따라 연석회의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반면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연석회의 구성 자체에 주목할 대목이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대선 패배 이후 각개약진하던 민주당과 정의당,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뭉쳤다는 점, 제도 정치권에선 특검 입법을 추진하고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가 장외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식으로 전선이 확대됐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11월12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진상 규명과 민주 헌정 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가 열렸다. ⓒ 시사저널 이종현
연석회의 측의 전략은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다. 대여 투쟁의 외연을 확장하고 여론전에 적극 나섬으로써 국가기관 대선 개입 문제 해결을 재판 이후로 잡은 채 사실상 지연 전술을 구사하는 여권과 정면 승부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연석회의가 각계각층의 시국선언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동시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남재준 국정원장, 황교안 법무부장관 등 3인의 퇴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선 게 단적인 예다. 특검 도입 등 국가기관 대선 개입 문제에 대한 가시적 해결 없이는 정국 해법도 있을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황우여 대표(가운데)와 최경환 원내대표(왼쪽)가 11월13일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재오 의원(오른쪽)의 쓴소리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과 안철수 측 벌써부터 이견 노출

당연히 여권의 반발과 비난의 강도도 거세지고 있다. 검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 도입은 불가하다는 원론적인 수준이 아니다. 특검이 결국 야권 재편의 불씨가 될 것이라고 보고 이를 강력 저지하겠다는 결기가 읽힌다. 실제로 새누리당 지도부는 연일 공식회의 석상에서 야권의 특검 요구를 일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신(新)야합연대’로 규정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특검은 명분일 뿐 결국은 연석회의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또 다른 형태의 ‘야권연대’를 성사시키려는 움직임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친박계 핵심 당직자는 “우리가 반대하면 본회의 통과가 불가능한데도 굳이 특검을 주장하는 이유는 빤한 것 아니겠느냐”며 “대선 불복 세력들이 어떻게든 힘을 합쳐서 내년 지방선거 판을 흔들려고 한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검 주장과 연석회의 구성이 정략에서 출발한 만큼 지방선거 국면이 시작되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혼란에 빠져들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찬찬히 들여다보면, 야권 내에서 벌써부터 연석회의의 위상과 성격을 두고 엇갈리는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연석회의가 지방선거에서 야권 공동 대응의 출발점이 될 것인지를 두고는 민주당과 정의당, 안 의원 측의 입장이 확연히 다르다. 이에 대한 시민사회와 종교계의 의견도 내부적으로 통일돼 있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민주당은 공개적 언급은 삼가고 있지만 가급적 연석회의의 틀이 지방선거 공동 대응의 틀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눈치다.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지방선거에 모두 나가면 결국 2, 3등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안 의원 측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반면 안 의원의 핵심 측근인 금태섭 변호사는 “연석회의는 ‘기구’가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힘을 모으는 차원에서 참여하는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이는 연석회의가 지방선거까지 겨냥한 야권연대의 틀로 비치는 것에 대해 안 의원 측이 부담스러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회에서 특검법안을 관철시키는 방식을 두고도 이미 민주당과 안 의원 측은 이견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한 원내 핵심 인사는 “어차피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기 때문에 각종 법안이나 예산안 처리와 연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국정 발목 잡기’라는 비난이 있을 수 있지만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런데 안 의원은 공개적으로 “국민이 원하지 않는 방법으로 목표를 관철해선 안 된다”며 연계 방침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연석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안 의원이 지나치게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특검 대신 ‘특위’로 접점 찾을까 


범야권이 특검을 고리로 뭉치면서 정국 경색은 심화했지만, 정치권에선 오히려 국정원 개혁 카드에 주목하는 이가 많아지고 있다. 야권이 특검과 ‘세트’로 묶어 주장하고 있는 국회 차원의 국정원개혁특위 구성을 두고, 의외로 여야가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여권이 특검과 특위 모두를 반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국정원 개혁 요구를 ‘셀프 개혁’ 수준에서 매듭짓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상황이라 새누리당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미 여야 간에는 특위 구성 문제를 두고 물밑 협상이 시작됐다. 특히 여권 내에선 이를 황우여 대표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는 기자와 만나 “여야가 머리를 맞대면 해법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황 대표 주변에선 국회 내 특위를 설치하되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하고, 여야 동수로 구성하되 새누리당이 위원장을 맡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는 여권 내에서 친박계 핵심들과 중도파·비주류 사이에 이견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상당수 친박계는 청와대의 입장을 감안해 국회 정보위 산하의 비공개 특위를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다. 친박계 재선 의원은 “특위를 만드는 건 국정원 해체를 논의하자는 거나 다름없는 얘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한 비주류 중진 의원은 “민주당이 특검과 특위를 동시에 주장한 것은 협상하자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특검은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수용이 어렵지만 국정원 개혁 여론을 감안해 특위 설치는 받아들이는 게 옳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새누리당이 특위를 수용하면, 민주당이 더 시끄러워질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한길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국정원개혁특위 설치를 정치적 성과로 포장하려 하겠지만, 친노 진영이 그 정도에서 매듭짓는 걸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꽤 있다는 얘기다. 자칫 민주당 내 친노-비노 갈등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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