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 잃었어? 행사 한 번 뛰면 되지 뭐
  • 김민신 인턴기자 ()
  • 승인 2013.11.20 11:3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근·탁재훈·공기탁 억대 불법 도박…더 많은 연예인 연루 가능성

연예인들의 불법 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예계에서 ‘불법 도박’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누가 도박을 한다는 얘기가 계속 떠돌았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올해 초 방송인 김용만이 10억원대의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한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봉사활동 120시간을 선고받아 연예계가 발칵 뒤집혔다. 불법 도박에 빠진 사람은 김용만뿐만이 아니었다. 검찰은 당시 김용만과 함께 적발된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자를 집중 조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도박에 연루된 유명 연예인들의 이름이 드러났다.

방송을 통해 잘 알려진 개그맨 이수근, 가수 토니 안(본명 안승호), 가수 출신 방송인 탁재훈, 배우 겸 개그맨 공기탁(본명 공성수) 등의 불법 도박 혐의가 확인됐다. 판돈 규모는 억대였다. 이수근은 3억7000만원, 탁재훈은 2억9000만원, 공기탁은 무려 17억9000만원을 도박판에서 날렸다. 검찰은 이들 네 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재판에 넘겼다.

불법 도박을 한 연예인은 또 있다. 검찰에 따르면 가수 앤디(본명 이선호), 방송인 붐(본명 이민호), 개그맨 양세형도 연루됐으나 판돈 규모가 5000만원 이하여서 약식 기소했다. 이들은 평소 건강하고 바른 이미지였기 때문에 대중이 받는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연예인 친목 모임 통해 브로커 접근

연예인들의 불법 도박은 그 수법도 은밀했다. 이수근 등은 휴대전화를 통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의 승리팀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불법 도박을 했다. 베팅 상한가가 없다 보니 무한 베팅이 가능했다. 토니 안 등은 연예사병으로 근무할 때 불법 스포츠 도박을 접했다.

연예인들이 빠진 도박은 일명 ‘맞대기’다. 이는 원래 경마 용어로, 마권을 사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우승 마필을 놓고 내기하는 것을 이른다. 사설 경마 시장의 40~50%를 차지할 정도로 성행하고 있으며, 판돈이 가장 크다. 인터넷보다는 주로 전화로 이뤄지는데다 점조직으로 꾸려진 탓에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을 통해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다. 맞대기 룰은, 가령 5000만원이 있으면 게임을 벌여 이기는 사람이 모두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번에 적발된 연예인들 사이에는 브로커가 있었다. 이들은 일부 연예인에게 접근해 휴대전화로 하는 ‘맞대기 도박’을 권유했다. 연예계에 따르면 브로커 중 한 명은 유흥업소 종사자로, 평소 연예인들이 자주 출입하는 업소에서 형·동생 하며 친목을 쌓았다. 이를 이용해 연예인 축구단 같은 모임에도 서서히 발을 넓혀갔다. 그런 다음 스포츠를 좋아하는 연예인들에게 고액 베팅을 할 수 있는 게임이 있다고 소개했다. 연예인들은 브로커가 건네준 사이트 정보를 휴대전화로 전송받았다. 이런 식으로 점차 입소문이 퍼지면서 주변 연예인들이 여럿 동참했다. 베팅 금액은 브로커가 매니저 등 연예인 지인의 통장에 돈을 보내고 지인이 다시 연예인에게 송금하는 식이었다.

이전의 연예인들은 주로 사설 업체에서 운영하는 불법 카지노 등을 이용했다. 1997년 개그맨 황기순은 환치기 수법으로 필리핀 카지노에서 9000만원 상당의 금액을 탕진했다. 환치기는 통화가 다른 두 나라에 각각의 계좌를 만든 후 외국환은행을 거치지 않고 돈을 송금하는 불법 외환 거래 수법이다.

방송인 주병진도 2002년 상습 도박 혐의로 구속됐고, 가수 신정환은 2010년 필리핀 카지노에서 카드 도박을 한 사실이 밝혀져 징역 8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외에도 개그맨 김준호와 가수 신혜성·이지훈 등이 마카오에서 원정 도박을 한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연예계 관계자는 “해당 연예인들은 이것이 불법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위험한 건지는 몰랐다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친목 도모를 위해 시작했고 방법이 편리하다고만 생각했지 큰 문제의식은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번에 수백만 원을 넘는 베팅 금액도 연예인들에겐 ‘행사 한 번 뛰면 벌 수 있는 돈’이란 인식이었다.

연예인들에게 도박은 직업 특성상 겪는 압박과 스트레스 해소제였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는 “인기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자신의 예감이 적중했다는 강렬한 쾌감이 (연예인이) 도박에 빠져들게 한 가장 큰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고 설명했다. 또 휴대전화로 하기 때문에 주변 시선을 크게 의식할 염려가 없는 것도 이들을 잡아끈 유인 요소 중 하나다.

범법 행위 하고도 시간 지나면 방송 복귀

이번에 적발된 연예인들의 재판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이상 재판이 길어질수록 연예인의 이미지만 악화될 뿐이기 때문이다. “얼른 잘못을 인정하고 벌금을 낸 다음 자숙에 들어가는 편이 연예인 입장에선 가장 좋은 대책”이라고 연예계 관계자는 말했다.

범법 행위를 해도 시간만 지나면 방송에 복귀하는 풍조가 연예계의 경각심을 낮추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전에 도박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던 연예인들도 대부분 한동안 자숙 기간을 거치고 다시 방송에 돌아왔다. 앞서 가수 이지훈은 2010년 상습 도박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후 공백기를 거쳐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다. 개그맨 김준호 역시 2009년 원정 도박 혐의로 방송에서 퇴출됐으나, 10개월여 만에 지상파 방송에 복귀했다.

이번 연예인 도박 사건을 계기로 불법 도박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온라인 사이트와 휴대전화로도 접근할 수 있는 불법 스포츠 도박을 뿌리 뽑을 대책이 시급하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관계자는 “사감위는 외부 신고나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감시하는 기능을 할 뿐 수사권이 없다”며 “접수를 받으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의뢰를 하거나 검찰에 수사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사감위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의 합법 도박 시장 규모는 약 19조원이었다. 이에 반해 불법 도박은 그 규모가 약 75조원(2012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온라인으로 접속할 수 있는 불법 도박 사이트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도박은 시간과 장소, 돈, 사람(상대), (도박)게임 등 5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지만 불법 스포츠 도박의 경우 대개 온라인 및 스마트폰으로도 참여가 가능해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도 쉽게 불법 도박에 빠지는 이유다.

사감위 관계자는 또 “불법 스포츠 도박은 온라인 특유의 익명성이 보장되고 베팅할 때 구매 상한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며 “서버가 주로 해외에 있고 (운영자가) 사이트 변경을 짧은 시간에 간단히 할 수 있어 감시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국민체육진흥법상 사설 사이트 등을 통해 도박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해당 사이트를 운영하다 적발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