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태 부담 덜어주지 못해 미안”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3.11.2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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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경제> 출간한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 인터뷰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이 정부를 향한 경제 정책 제안을 담은 저서 <성공하는 경제>를 펴냈다. 권 전 원장은 박근혜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3월, 임기를 1년여 남긴 시점에 자진 사퇴해 무성한 뒷말을 남겼다. 대구·경북(TK) 출신으로 박근혜 대통령 측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와중에 금감원장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권 전 원장의 의외의 행보는 이어진다. 퇴직한 고위직 관료가 퇴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담은 책을 내는 것 자체가 보기 드문 모습이다. 11월1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위치한 금감원 연수원 사무실에서 권 전 원장을 만났다. 그는 “공직 생활 33년 동안 책을 쓸 여유가 없었는데 마음을 먹으니 세 달 만에 써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퇴임 이후 어떻게 지냈나.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다. 지역 곳곳을 여행하면서 책을 쓰는 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역사회의 어떤 부분을 활용하면 해외 관광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심각해지는 자영업자 문제를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단순한 여행은 아닌 셈이 됐다. 그러다 지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썼다. 당시 9월부터 서울대 강의를 나가기로 했는데,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책을 써서 그런 고민을 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최근까지 매일 거의 4시간씩 글을 썼다.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 위해 펴낸 책이라서 주제가 방대하다. 60가지 한국 경제의 현안과 10가지 정책 제안을 담았다.

<성공하는 경제>에서 한국 경제의 ‘보이지 않는 위기’를 진단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경제를 위기로 몰아가는 최대 불안 요인은 무엇인가.

단연 부채 문제다. 가계부채는 이미 위험수위에 달했다. 미국·스페인·아일랜드 등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를 돌파한 지 2~3년 만에 금융 위기를 겪었던 점에 주목해야 한다. 게다가 공기업과 지방정부 부채를 포함한 국가부채도 심각하다. 내년부터는 부채 문제가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을 짓누르는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떠올라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부정적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가계부채 축소 노력이 미흡했는데 이젠 시급한 과제가 됐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나친 ‘롱텀 프레임’이라 허황된 이야기로 들린다고 지적하는데.

창조경제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창조경제의 정의는 세 가지다. 기존의 전통 산업에 부가가치를 덧붙이는 것과 기존 산업과 새로운 산업을 융합하는 것,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결국 창조경제는 민간의 창의와 상상력을 원천으로 한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해 각종 걸림돌을 제거하고 민간이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창조경제가 든든한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일어난다는 점이다. 핀란드에서는 노키아가 망해도 사회안전망이 있으니까 벤처가 계속 돌아간다. 하지만 한국은 한 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 혹은 노숙자 신세가 된다. 사회안전망이야말로 창조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인프라다.

“저축은행 사태가 가장 큰 시련”

이번 저서에서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를 공직 생활 동안 가장 힘든 시기로 꼽았다.

금융감독원장으로 취임한 2011년 3월 말은 정말 암울한 상황이었다. 그해 초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여파로 7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했고 금융 당국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국회에서는 금융감독원(금감원)을 ‘금융강도원’이라 부르며 질타했다. 취임 초부터 거의 1년을 저축은행 사태 해결에 힘을 쏟았다. 사실 저축은행 사태는 10여 년에 걸쳐 누적된 문제가 결국 터진 것이다. 내가 취임할 때는 곪을 대로 곪은 문제였기 때문에 결국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났다. 아직 남아 있는 곳들의 사정도 그리 좋지 않다. 당시 얻은 교훈은 위기의 싹이 자랐을 때 초기에 잘라냈더라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최근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제2의 저축은행 사태’로 불리는 동양그룹 사태다. 어떻게 보고 있나.

이번 책에서 동양 사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원고를 넘길 때는 동양 사태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 전임자로서 금감원이 문제시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본다. 다만 동양 사태의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 투자자 책임 원칙의 확립, 마지막으로 불완전 판매에 대한 엄정한 책임 규명이다. 가령 외환위기 직후 대우그룹과 현대그룹 등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대우그룹은 전체가 몰락했고, 현대그룹은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 회생했다. 기업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채권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동양은 그것이 부족했던 것이다.

 “동양그룹, 선제적 구조조정 나섰어야”

하지만 지금은 관리·감독기관인 금감원 쪽 책임론이 거세다. 게다가 금감원장 재직 때인 2011년부터 금감원이 동양그룹의 문제성을 감지했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금감원의 관리·감독 부실 측면보다) 앞서 말한 세 가지 면이 동양그룹 사태에서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동양그룹 부실 문제를) 알고 있다고 한다는 것도 각자 위치에서 실무자들이 알았던 것이지 최종 의사 결정을 맡는 윗선까지 감지하는 데는 시차가 있다. 게다가 섣불리 손질을 했다가는 여러 사람이 죽을 수 있을 만큼 큰 문제였다. 환자가 심각할수록 의사는 더 신중해진다. 이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왜 진작 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뒤늦은 대응 측면에서 권 전 원장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닌가.

어떤 사태든 터져 나오기까지 연속성이 있다. 나 역시 전임자들이 남긴 업보를 가지고 해결해야 했고 지금 원장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동양 사태는 일차적으로 기업이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섰더라면 그 정도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감독기관인 금감원이 강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물론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재직할 때 좀 더 부담을 덜어주었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서 2년이라는 임기가 좀 짧지 않았나.

3년 임기를 다 채운다고 해서 얼마나 달라졌겠나. 대한민국 금융 감독기관의 수장이 전 금융권을 다 커버하는데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챙길 수 있겠나. 그래서 아랫사람들에게 위임한 일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위임해준 이가 제대로 챙겨보지 못한 데서 문제가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우선순위를 두고 집중한 일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 점에서 후회는 없다. 현재 최수현 금융감독원장도 잘해나가고 있다고 본다. 특히 그는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지나칠 정도로 철저한 마인드를 가졌다. 내가 훈수를 둘 입장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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