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이란 얄팍한 잣대가 그들의 권력 키웠다
  • 정덕현│문화평론가 ()
  • 승인 2013.11.2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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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작가들, ‘자기 복제’ ‘막장’ 되풀이…PD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드라마 <상속자들>은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다. 이른바 ‘믿고 보는 작가’로 대중에게 인식된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출연진만 봐도 이민호·박신혜·김우빈·강민혁 등 요즘 핫(hot)하다는 스타가 대거 포진돼 눈길을 끌었다.

투자도 아낌이 없다. 드라마 첫 장면은 장소부터가 캘리포니아 해변이고, 멋진 몸매를 드러낸 채 파도타기를 하는 이민호가 등장한다. 보는 이들을 휘둥그레 만드는 스펙터클이 이어진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이민호의 풀빌라는 저 아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로망을 주는 공간이다. 그 위에서 멋진 청춘들이 알콩달콩 사랑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마치 ‘스타 기획 상품’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드라마가 <비밀>이라는 신출내기 작가가 쓴 작품에 여지없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해외 로케 같은 건 있지도 않다. 오로지 참신한 스토리와 살아 있는 캐릭터들이 있다. 그 캐릭터를 200% 살아 움직이게 하는 연기자들의 노력도 있다. 이를 통해 <비밀>은 <상속자들>, 정확히 말하면 김은숙 작가의 아성을 넘어섰다.

<비밀>은 최호철 작가와 유보라 작가가 극본을 쓴 드라마다. 두 작가는 모두 KBS의 극본 공모를 통해 발탁됐다. 회당 원고료 250만원에 불과한 작가들이 회당 원고료가 5000만원에 육박하는 김은숙 작가를 넘어섰다는 사실은 우리 드라마의 중견 작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과연 스타 작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지금 그 이름값에 걸맞은 역할을 해내고 있을까.

임성한 작가의 는 시청자의 ‘작가 퇴출 운동’까지 불러일으켰다. ⓒ MBC 제공
‘권력’의 원천은 작품성 아닌 시청률

김은숙 작가의 문제점은 스스로도 인정하듯 ‘자기 복제’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오랜 시간 멜로 장르 하나를 고집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복제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 때 허용되는 것이다. 김은숙 작가는 재벌가와 신데렐라 스토리를 여전히 선호한다. <상속자들>도 재벌과 그 저택에 얹혀사는 현대판 하녀의 딸이 엮어가는 이야기다.

그러나 요즘처럼 재벌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진 상황에서는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김은숙 작가가 고집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수직적이고 계급적인 사랑 타령에 머무른다는 한계가 있다.

김수현 작가는 한국 드라마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김 작가 역시 과거 드라마의 문법에 얽매여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결혼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이 드라마에서 오은수(이지아 분)는 시댁에서 원치 않아 아이를 친정에 맡겨둔 채 재벌가에 재혼한 여성이다. 이 설정에는 엄마로서의 삶 때문에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다.

어찌 보면 도발적인 메시지다. 하지만 지금의 결혼 풍속도를 떠올려 보면 오히려 너무 과거의 가치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싱글턴(Singleton; 1인 가구)’이라 부르는 새로운 삶의 양식이 등장하는 시대다. 즉, 혼자 살면서 아이도 키우고 사랑도 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것이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목매는 보수적 가족주의의 틀에서 김수현 작가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

김은숙 작가나 김수현 작가는 그나마 일정한 완성도를 갖고 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문영남 작가나 임성한 작가는 이른바 ‘막장 드라마’의 대명사처럼 불리며 비난받는다. 문영남 작가의 경우 인간의 속물근성을 다루기 때문에 막장이 아니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특유의 공식화된 문법과 자기 복제는 대중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문 작가의 드라마에는 항상 울화통 터지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공분을 자아내게 만드는 그들의 만행을 통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고는, 마지막에 가서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패턴이 반복된다.

현재 방영되는 <왕가네 식구들> 역시 이 전형적 틀에 갇혀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모녀 설정이나 보는 이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불륜 설정은 이 드라마의 목적이 ‘속물근성의 탐구’ 같은 것이 아니라 시청률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네 이웃의 여자>처럼 똑같은 불륜을 다뤄도 공감대를 통해 호평받는 젊은 작가들의 드라마와 비교해보면, 중견 작가의 시청률 집착은 그 자체가 ‘속물주의’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다.

현재 중견 작가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작품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시청률이라는 얄팍한 잣대로 얻은 이름을 바탕으로 점점 권력화되는 양상을 띤다는 점이다. <오로라 공주>의 임성한 작가가 대표적이다. 임 작가는 ‘시청률 제조’가 작품의 질과 하등 상관없는 일종의 기술에 가깝다는 걸 보여준다.

임 작가의 관심은 비상식적인 캐릭터, 개연성을 무시한 전개로 끊임없이 논란을 만들어냄으로써 대중의 관심을 끄는 것에 집중돼 있다. <오로라 공주>

에서 10여 명에 달하는 인물이 갑작스럽게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된 것은 그녀의 작법이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완성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시청률을 위한 자의적이고 자극적인 전개에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작가는 드라마에서 마치 신적인 존재로 느껴질 정도로 권력화했다. 이런 정도의 ‘막장’이라면 방송사가 나서서 어느 정도 통제를 해야 한다. 하지만 방송사마저 작가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다. 심지어 대중 정서가 좋지 않음에도 작가가 연장을 요청하고 그것을 방송사가 받아들이는 형국은 ‘작가의 권력화’가 어느 수준까지 진행됐는지를 가늠케 해준다.

‘스타 작가’인 김은숙 작가가 집필한 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SBS 제공
‘권력’ 혁파하고 신진 작가 발굴해야

임성한 작가는 자신의 친조카를 전작인 <아현동 마님> <신기생뎐>에 이어 <오로라 공주>에까지 출연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중견 작가의 ‘꽂아주기’나 ‘자기 사단 만들기’도 권력 횡포로 받아들여진다. 김수현 작가의 경우 늘 출연하는 연기자들의 ‘사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캐스팅이란 작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작품을 연출하는 감독의 영역이기도 하다. 김수현 작가에 대해 일선 PD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듯 모든 걸 관장하는 작가의 권력이 연출 영역을 하나의 꼭두각시처럼 만들고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지금 소수의 스타 작가들은 엄청난 권력이 되어 있다. 단 한 회에 수천만 원의 원고료를 받아가는 중견 작가는 그 자체로 드라마 전체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지목된다. 하지만 여전히 시청률에만 목매는 방송사들 또한 중견 작가의 권력화를 부추기고 있는 꼴이다. 지금 한국 드라마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가장 시급히 나서야 할 것은 참신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수 스타 작가들에게 비정상적으로 치우친 권력부터 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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