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젤리나 졸리는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헝거게임> 시리즈 2편 <헝거게임: 캣칭 파이어>의 흥행 소식을 접할 때마다 속이 뒤집힌다. 이 영화의 주인공 캣니스 에버딘으로 출연하는 어린 계집애(?) 제니퍼 로런스 때문이다.
제니퍼 로런스가 출현하기까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전사 이미지의 배우는 단연 앤젤리나 졸리였다. 졸리는 강한 여자의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가 기획될 때면 적극적으로 출연을 자원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24명의 남녀가 생존 게임에 참가해 살육을 벌인 후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헝거게임>은 분명 앤젤리나 졸리가 탐낼 만한 영화였다.
하지만 <헝거게임>의 캣니스 역할에는 앤젤리나 졸리(1975년생)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제니퍼 로런스(1990년생)가 캐스팅됐다. 앤젤리나 졸리뿐 아니다. 아비게일 브레슬린, 시얼샤 로넌, 에밀리 브라우닝, 카야 스코델라리오 등 촉망받는 차세대 스타 여배우들이 대거 탐을 냈던 캐릭터다. 1편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을 연출했던 게리 로스 감독은 “나이답지 않은 눈빛과 강인함이 캣니스 역할에 제격이었다”고 제니퍼 로런스를 최종 캐스팅한 이유를 밝혔다.
극 중 ‘헝거게임’은 매년 12개 구역에서 남녀 한 쌍씩, 24명을 선정해 게임에 참가시킨 후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이도록 독재 국가 ‘판엠’의 절대 권력자가 고안한 게임이다. 이 게임을 만든 이유는 절대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판엠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해서다. 캣니스는 <판엠의 불꽃>에서 운 나쁘게 이 게임 참가자로 선정됐다가 운 좋게(?) 우승을 거머쥔 인물이다.
그 이후를 다루는 <캣칭 파이어>에서 캣니스의 위상은 급변했다. 게임에서의 극적인 우승 탓인지 그는 이제 판엠의 절대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이에 판엠은 헝거게임 75주년을 기념한다는 이유를 들어 캣니스에게 다시 한 번 출전할 것을 강제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참가하게 됐지만 역시나 막강한 실력으로 상대 참가자들을 압도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헝거게임을 기획한 절대 권력자에 맞서 이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려는 혁명을 꿈꾼다.
제니퍼 로런스가 생각하기에 캣니스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하고 멋진 여자”다. 그것은 고스란히 제니퍼 로런스에게도 적용되는 평가다. 열네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거리 캐스팅으로 모델 일을 시작한 그는 이른바 앙팡 테리블, 즉 겁이 없는 아이였다. 영화 데뷔작인 <윈터스 본>(2010년)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것도 오디션장에서 보여준 신인답지 않은 대담함 때문이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첫 번째 경험이라 경황이 없을 법도 한데 제니퍼 로런스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차분하게 오디션을 마쳐 관계자의 시선을 끌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작품을 고르는 제니퍼 로런스만의 기준 역시 확고하다. <헝거게임> 시리즈와 같은 블록버스터부터 <윈터스 본>과 같은 예술영화까지, 규모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는 “난 그저 재미만을 위해 존재하는 영화에는 흥미가 없다”며 출연작 선택에 선을 긋는다. 아닌 게 아니라 배우로 활약한 지 고작 4년째지만 제니퍼 로런스의 필모그래프는 조금 과장을 보태 그가 롤 모델로 삼는 케이트 블란쳇(<블루 재스민>)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이미 올 초에 벌어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년)의 젊은 미망인 티파니 역할로 역대 최연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녀다.
<헝거게임> 시리즈는 그저 돈만 많이 들인 블록버스터가 아니냐고? 다소 황당한 설정이기는 하지만 이 시리즈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시스템 안에서 발버둥치는 청춘들이 자신만의 의지로 미래를 개척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혁명’은 이 시리즈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그와 같은 혁명을 앞장서 이끄는 인물이 바로 캣니스라는 여자임을 감안하면 <헝거게임> 시리즈는 제니퍼 로런스의 표현대로 의미 없이 쉽기만 한 블록버스터가 절대 아니다. 앤젤리나 졸리가 왜 캣니스 역할을 그렇게 탐냈는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다시 생각해보면 캣니스 같은 젊은 여전사 역을 맡기에 앤젤리나 졸리는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졸리는 <헝거게임> 시리즈에 캐스팅되면 자신의 나이에 맞게 시나리오를 고칠 생각이었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새롭게 눈독을 들였던 작품이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었다. 원 시나리오에서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티파니는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졸리는 이 역할을 따내 애송이에게 잃었던 명예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악연인지, 러셀 감독은 시나리오를 수정해 티파니의 나이를 20대 초반으로 줄여 제니퍼 로런스를 캐스팅했다. <헝거게임>에 이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까지, 앤젤리나 졸리는 자신과 이미지가 겹치지만 나이는 더욱 어려 각광받고 있는 제니퍼 로런스 때문에 시련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