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롯데월드 탓에 서울공항 비정밀 착륙 포기”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11.2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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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규백 의원실 작성 문건 단독 공개…비행기 비상 착륙 수단 없어져

정부가 2009년 3월 잠실 제2롯데월드의 건축을 최종 승인하면서 인근 서울공항의 비정밀(ASR) 착륙 절차를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실이 작성한 ‘제2롯데월드의 건립을 둘러싼 진실과 거짓 그리고 의혹’ 문건에 따르면 서울공항은 비정밀 레이더와 정밀(PAR) 레이더를 통해 항공기의 착륙을 유도해왔다. 지상에 있는 관제사는 ASR 레이더를 통해 포착된 항공기 조종사에게 구두로 활주로 방향을 알려준다. 항공기가 활주로 연장선에 도착하면 PAR 레이더를 통해 착륙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제2롯데월드 건축 방안을 검토하면서 안전성 문제가 불거졌다. 제2롯데월드와 서울공항 간 거리는 5~6km에 불과하다. 두 개 활주로의 연장선과의 거리는 각각 1.16km(동편)와 1.95km(서편)밖에 되지 않았다. 동편 활주로의 경우 최소한의 안전 이격 거리(1.85km)에도 못 미쳤다. 서울공항을 드나드는 항공기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정부는 문제가 된 동편 활주로의 방향을 3도 틀고, 항공 안전 장비를 추가하면서 ASR 접근 절차를 포기했다. 관련 장비가 이상을 일으켰거나, 비행기가 비상착륙하는 상황을 고려한 대책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항공기 안전과 관련해 제2롯데월드 층수를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시사저널 구윤성
헬기 충돌 사고로 제2롯데월드 안전성 우려

특히 서울공항과 잠실 헬기장 사이에는 군 헬기가 수시로 드나든다. 11월16일 발생한 민간 헬기 충돌 사고가 제2롯데월드에서 재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언론에서 “강남의 주상복합아파트와 부딪쳐 추락한 헬기 조종사는 한때 대통령 전용기까지 몰던 베테랑이었다”며 “제2롯데월드 역시 비행 안전을 희생시키며 건축됐다는 점에서 사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제2롯데월드의 층수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제2롯데월드 자리는 수송기와 정찰기, 심지어 전투기까지 뜨고 내리는 길목”이라며 “충돌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 규모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국민 안전과 국가 안위 차원에서 층수 조정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주목되는 것이 안전성과 관련된 부분이다. 안규백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는 제2롯데월드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들이 상세히 언급돼 있다. 롯데그룹은 1994년부터 계열사인 롯데물산을 통해 여러 차례 제2롯데월드의 건설을 타진했다. 그럴 때마다 국방부와 공군은 “서울공항 최종 접근 경로에 인접한 초고층 건물은 사고의 잠재 요인이 된다”며 고도를 203m로 제한했다.

2006년에는 서울시와 공군이 제2롯데월드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서울시가 2006년 2월 제2롯데월드 건축 계획을 심의 가결한 것이 발단이었다. 공군은 곧바로 국무조정실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군은 제2롯데월드 건축에 대한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공군은 조정 신청문에서 “사고의 요인을 사전에 제거해 대형 참사를 예방하는 것은 군의 사명이자 최후의 양심”이라고 밝혔다. 조정위원회도 2007년 7월 공군의 의견을 받아들여 제2롯데월드 건축 고도를 203m로 제한하기로 했다. 참석 위원 9명이 모두 같은 의견을 냈다.

하지만 국방부와 공군은 2009년 초 갑자기 입장을 번복했다. 2008년 중순 이명박 대통령이 “도시는 옮길 수 없지만 군부대는 옮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 직후였다. 롯데는 2008년 말 서울시를 거쳐 행정안전부에 또다시 행정협의조정을 신청했다. 신청서 접수 7일 만에 본회의가 열렸고, 3개월여 만에 속전속결로 제2롯데월드의 건축 승인이 났다. 공군도 신축 가능한 3가지 방안을 제출하면서 그동안의 입장을 뒤집었다.

일례로 항공안전본부는 2006년 군 조종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에 응한 조종사의 73.7%가 제2롯데월드로 인해 시계비행 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답했다. 계기비행 시 받는 조종사들의 스트레스는 82%로 더 높았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자문 결과도 다르지 않았다. 공군은 2003년 FAA에 자문을 요청했고, FAA는 “초고층 건물이 비행경로에 인접해 있을 경우 조종사에게 심리적·정신적 압박을 줄 수 있다”며 “기상 여건이 좋지 않을 경우 영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근거로 공군은 제2롯데월드의 높이를 203m로 제한했다.

하지만 2009년 조정안을 내면서 말을 뒤집었다. 김광우 국방부 시설기획관은 2009년 2월 국회 국방위원회 공청회에서 “FAA 기준에 의하면 항공기가 제2롯데월드에 충돌할 확률은 1000조분의 1”이라고 답변했다. 고도 제한의 근거로 제시했던 국제 기준 대신 국내법을 적용하기도 했다.

11월16일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에 LG전자 소속 헬기가 충돌해 추락한 현장을 경찰이 수습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안규백 의원 “MB 정부 입맛 맞는 용역 결과”

정부가 제2롯데월드의 건축을 승인하면서 근거로 제시한 용역 결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안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2009년 3월10일 한국항공운항학회에 단기 용역을 의뢰했고 불과 10여 일 만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용역을 수행했던 항공운항학회는 최종 보고서에서 “비행 경력 4000시간 이상인 연구진 2명이 참가해 항공학적 검토를 수행했지만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학회는 실제 상황처럼 신축 예정인 제2롯데월드 부지에 헬기를 띄워놓고 답사 비행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총리실에 최종 보고서가 제출된 것은 2009년 3월23일로 조사 기간은 13일에 불과했다. 2006년 행정협의조정 당시 외부 용역이 6개월에 걸쳐 진행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안규백 의원은 보고서에서 “총리실은 당시 용역 업체로 4개의 학회를 검토하면서 이미 객관성이 입증된 외국 학회를 용역비와 기간 문제로 제외시켰다”며 “교육과학기술부에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학회를 선택한 것은 정부의 입맛에 맞는 용역 결과를 내기 위함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롯데물산 측은 “제2롯데월드 건축은 이미 전문가 검증을 마쳤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롯데물산 관계자는 “잠실 제2롯데월드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 보호법상의 비행 안전 구역 밖에 있다”며 “승인 과정에서 국내외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은 만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층수 조정 요구에 대해서도 ‘불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 관계자는 “제2롯데월드는 이미 정부로부터 건축 허가가 난 만큼 층수 조정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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