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춘대원군’이 권력 지도 확 바꿨다
  • 이승욱 기자·이종대│트리움 이사 ()
  • 승인 2013.11.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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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트리움, 청와대 인적 네트워크 공동 분석…청와대 인맥 허브는 단연 김기춘

대한민국 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자리의 기원은 저 멀리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경을 도읍지로 했던 고려의 숙종은 풍수도참설을 근거로 한강 유역인 지금의 서울에 남경을 세웠다. 청와대 자리는 고려의 왕이 한동안 편안히 머무를 수 있도록 지은 이궁(離宮)이 위치한 자리였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서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사용됐다. 청와대가 예사스럽지 않은 비밀스러운 기운을 갖고 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청와대를 장막이 켜켜이 둘러싸고 있는 ‘구중궁궐’로 묘사하는 것처럼, 청와대 내부의 은밀한 이야기는 외부로 쉽게 흘러나오지 않는다. 철통 보안을 가장 큰 국정 원칙으로 삼고 있는 박근혜정부의 청와대는 더욱 그렇다. 지난 8월 김기춘 비서실장이 청와대에 전격 입성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강해지는 양상이다. 지금 청와대 밖에서는 “도대체 청와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냐”며 궁금해하거나 불만을 터뜨린다. 그만큼 청와대 내부 정보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다만 그 가운데도 정설은 있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실상 권력의 2인자로서 청와대 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분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청와대 인맥 중심, 조원동에서 김기춘으로

그렇다면 김 비서실장의 이러한 위상은 실제 얼마만큼의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청와대 핵심 인사들의 사회적 관계망 분석(SNA)을 통해 청와대 내부 구성원들의 역학 관계를 좀 더 체계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와대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김 비서실장의 위상은 이번 SNA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시사저널은 소셜 미디어 분석업체인 ‘트리움’과 공동으로 청와대 인적 네트워크 분석팀을 꾸렸다. 그리고 지난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서는 현 정부의 초대 총리와 장차관, 청와대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전 방위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분석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청와대만 따로 떼어내 청와대 권력 내부를 더 세밀히 들여다봤다. 상대적으로 인원이 많지 않은 만큼 개개인의 이력과 경력을 좀 더 상세하게 조사에 적용했다.

분석은 2013년 3월 첫 인사 시점과 11월 현재의 시점 두 시기로 나눠 실시했다. 11월 현재 시점의 분석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비서관 등 주요 인사 52명을 대상으로 했다(23쪽 표 참조).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3월의 분석도 첫 청와대 비서관 인선 당시 같은 직책을 맡은 인사 52명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와 9개월 정도가 흐른 지금 청와대 인맥의 변화 양상도 비교 분석했다.

공동 분석팀은 우선 분석 대상자들의 이력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인물 정보 사이트 등을 통해 취합했다. 분석 대상자들의 이력은 출생지(고향)와 출신 고교·대학(학과)을, 그리고 고시 및 주요 경력과 거쳐 간 자리 등의 인적 정보를 총동원했다. 공동 분석팀은 분석 대상자들의 인적 정보를 근거로 관계망 지도(인맥도)를 그렸다. 분석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출생지는 광역 시·도뿐만 아니라 기초 시·군·구까지 반영했고, 인맥의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출신 인사들은 시·군·구가 동일할 경우 관계 결속력의 가중치를 높여 반영했다. 또 대학과 비교해 동문의 결속력이 높은 출신 고교의 경우도 가중치를 상대적으로 높여 분석했다. 관계망 지도 분석에는 트리움이 보유한 솔루션 프로그램이 사용됐다.

관료 그룹 분화하고 측근 그룹 강화

이번 분석에서 가장 이목을 끈 대목은 11월 현재 청와대 내부 인맥의 허브(권력의 중심)에 대한 결과였다. 관계망 지도에서 점으로 표시되는 노드(조직 구성원)와 노드 간에 맺고 있는 인맥 관계의 빈도가 1개 이상인 경우를 분석한 결과, 인적 네트워크상 결속력이 가장 강한 인맥 허브 1위는 김기춘 비서실장으로 나타났다(21쪽 관계망 지도 2 순위표 참조). 이는 노드와 노드 간의 인맥 형성 빈도가 2개 이상인 노드를 별도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마찬가지였다(23쪽 관계망 지도 4 순위표 참조). 인맥 허브는 한 조직 내 구성원들 중 인맥 관계를 가장 많이 맺으면서도 관계 결속력이 강한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적 네트워크상 권력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공식 직위를 떠나 인적 네트워크만 놓고 보더라도 김 비서실장이 청와대 내에서 단연 가장 높은 위상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이는 3월 박근혜정부 출범 초기와 비교된다. 전임 허태열 비서실장이 임명된 3월 당시의 청와대 내부 관계망 지도를 그려본 결과, 당시 인맥 허브 1위는 조원동 경제수석으로 나타났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은 5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이는 인맥 관계 형성 빈도가 2개 이상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김 비서실장이 청와대 인사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은 인맥 관계에서부터 비롯하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김기춘 비서실장 등장 이후 청와대 내부 인맥 그룹에도 큰 변화가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3월 당시 청와대 진용의 인맥 지도(20쪽 관계망 지도 1 참조)에 따르면, 사법·행정고시 출신인 법조·관료 그룹이 가장 큰 인맥 그룹을 형성했다. 하지만 이는 11월 현재 청와대 관계망 지도와는 크게 다르다. 김 비서실장이 등장한 이후 법조·관료 그룹이 분화된 양상을 보인 것이다(21쪽 관계망 지도 2 참조).

3월 인맥 지도에서는 법조·관료 그룹이 청와대 내부의 인맥에서 가장 큰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11월 현재 청와대 인맥 지도를 보면 김기춘 비서실장과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등 법조 그룹은 3월의 법조·관료 그룹에서 분리돼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인맥 지도에는 법조 그룹이 관료 그룹에서 분리된 후 이정현 홍보수석과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 등 정치권 출신 측근 그룹과 융합해 인적 네트워크를 새롭게 형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허태열 비서실장 체제에서 부각됐던 관료 중심 그룹이 쇠퇴한 반면, 김 비서실장 등장 이후 청와대 내 측근 그룹이 강화됐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덩치를 키운 측근 그룹 인물은 홍경식 민정수석,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 임종훈 민원비서관, 김재춘 교육비서관 등이다. 이들 4명을 중심으로 관료 그룹과 최측근 그룹, 군 출신 그룹 등 다른 인맥 그룹과 연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맥 결속력,  홍보·정무 약하고 민정은 강해

이번 분석에서 드러난 또 다른 큰 특징은 청와대의 ‘입’ 역할을 하는 홍보 라인의 인적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는 3월과 11월 청와대 인적 네트워크 분석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3월 당시 청와대 인사들의 인맥 형성 빈도를 1개 이상의 경우로 한정해 분석한 결과, 윤창중 당시 대변인과 김행 대변인은 다른 노드들과 약하긴 하지만 그나마 인맥 관계를 맺은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인맥 결속력을 높여 빈도를 2개 이상으로 따로 분석하자 전·현직 대변인의 노드는 관계망 지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는 전·현직 대변인들이 청와대 내부의 다른 인사들과 느슨한 인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이정현 홍보수석은 물론 이남기 전 홍보수석도 전·현직 대변인들과는 아예 떨어진 채 별도의 그룹에 소속돼 있었다. 이는 3월뿐만 아니라 11월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홍보 라인 인사들이 다른 인맥 그룹들뿐만 아니라 홍보 라인 내부 인사들과도 인맥의 연결 고리가 약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청와대 내부의 홍보 기능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청와대 내부의 정보 통제 수준이 높다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홍보 라인의 빈약한 인적 네트워크도 하나의 원인으로 분석해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민정수석실을 제외한 나머지 수석실의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인적 네트워크의 결속력이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춘 비서실장의 등장으로 법조 그룹이 분화돼 나오면서, 민정 라인 인사들의 인맥이 강화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은 공직 기강과 비리 척결 등 사정을 강조하는 지금의 청와대 분위기와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이는 현 정부와 청와대가 특히 정무와 홍보 분야에 취약하다는 주변의 평가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고 실세, 유정복→이정현→김기춘으로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9개월여가 흘렀다.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많은 사건이 정국을 뒤덮었다. 거기에 맞춰 박근혜정부의 권력 구도 또한 바뀌는 양상을 보였다. 시사저널은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3월과 정권이 본궤도에 오른 7월, 청와대 2기 참모진이 구축된 10월, 그리고 집권 1년 차가 마무리되는 지금의 11월까지 모두 네 번에 걸쳐서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권력 실세들의 위상 변화를 살폈다. 이 기간 동안 권력 실세 1위 자리는 조사 때마다 바뀌었으며, 톱5 안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 인물도 전무했다.

3월 분석에서는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 인사뿐 아니라 장차관급을 포함해 모두 113명을 대상으로 트리움과 공동으로 ‘사회적 관계망 분석(SNA)’을 실시했다. 그 결과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이 핵심 허브(Hub)로 떠올랐고 현오석 경제부총리, 윤상직 산업통상부장관, 서남수 교육부장관, 윤병세 외교부장관 등이 뒤를 이었다. 정권 초기 내각 인선이 마무리된 후라 각 부 장관들에 대한 주목도가 높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7월에는 신문·방송 등 언론사 기자와 정치학 교수·정치평론가 등 100명을 대상으로 ‘박근혜정부 그림자 권력’에 대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으로 통하는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당·정·청 수장들을 모두 제치고 권력 실세 1위로 꼽혔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위를 차지했다.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을 대신해 각종 현안마다 목소리를 내왔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란 별칭도 얻었다. 허태열 당시 비서실장(3위)에 이어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4위를 차지해 권력 이동을 실감케 했다.

10월 조사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불명예 퇴진과 진영 전 장관 사퇴 파동 등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친 직후 이뤄졌다. 정치학 교수와 정치평론가 등 국내 대표적인 정치 전문가 20인을 상대로 한 긴급 설문조사 결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압도적인 차이로 ‘정국을 주도할 인물’ 1위에 선정됐다. 이정현 홍보수석, 남재준 국정원장,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지목률을 모두 합해도 김 비서실장에 미치지 못했다.

조해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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