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추징금 1672억 전액 환수 못한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1.2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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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82억1000만원 환수…압류 재산 다 처분해도 모자라

“연희동에서 필요한 협조는 다 했다. 나머지는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와 관련해 최근 전 전 대통령 측 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행정절차상 필요한 게 있다면 협조하겠지만 그 외에 더 협조할 게 없다고 본다”며 “추징할 돈을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의 문제는 검찰의 몫”이라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지난 9월10일 기자회견을 통해 “미납 추징금을 완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공은 검찰에게로 넘어갔다는 설명이다.

올해 상반기 내내 뜨겁게 달아올랐던 ‘전두환 미납 추징금 환수’ 열기는 재국씨의 기자회견이 있은 후 서서히 식었다.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만들어 검찰 수사에 힘을 실어준 정치권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당초 “헌법에 위배된다”며 일부 반대 기류가 있었던 여당은 물론 법안 통과를 강하게 밀어붙였던 야당도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에 대해 예전과 같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새누리당 관계자는 ‘전두환 추징금’과 관련해 “더 이상 나온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관계자도 “특별히 더 진행된 게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확인할 게 없어서…” “다른 현안이 너무 많다 보니…” 등을 이유로 들었다. 여야 간에 다소 온도 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검찰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전 전 대통령 측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두환 전 대통령.
현금화한 재산 일부 국고 환수

국정감사(국감) 기간에 전 전 대통령이 도마에 오른 적이 있기는 하다. 10월21일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감에 재국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야당 의원들은 그가 조세 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계좌를 운용한 경위를 집중 추궁했다. ‘전두환 비자금’이 해외로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내용 이상의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야당 의원들의 계속된 질의에 여당 의원들이 “국정감사지 개인 비리 감사냐”고 불만을 터뜨리면서 여야 간에 볼썽사나운 공방이 펼쳐지기도 했다.

같은 날 서울고검에서 열린 법사위 국감에서는 검찰 간부가 야당 의원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를 놓고 외압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감장에 팽팽한 긴장이 흐를 때였다. 민주당 소속인 박영선 위원장은 의원들의 질의가 잠시 중단되자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을 이끌어온 김형준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을 불러 “수고 많으셨다는 얘기를 드린다”며 수사 성과를 치켜세웠다.

그렇다면 검찰은 알아서 할 일을 잘하고 있을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갈수록 실적이 지지부진하다”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시사저널은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전 전 대통령 측이 ‘자진 납부’ 발표를 한 이후 추징금 환수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를 점검했다. 검찰이 확보한 전두환 일가의 재산 내역을 바탕으로 일일이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추가로 압류할 수 있는 재산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짚어봤다.

검찰은 확보한 전두환 전 대통령 측 재산이 모두 합쳐 1703억원 상당이라고 밝혔다. 미납 추징금 1672억원보다 30억원 이상이다. 계획대로 추징이 집행된다면 ‘전액 환수’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셈이다. 검찰은 본격적인 환수 작업에 들어가기 전 “압류한 재산과 자진 납부된 재산의 집행을 통해서 미납 추징금 전액을 환수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검찰 압류 재산은 물론 자진 납부 재산을 다 처분하더라도 추징금 전액을 환수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금화한 일부 재산에 대해선 국고 환수가 이뤄졌다. 서울 한남동 땅 매각 대금 중 절반가량인 26억6000만원이 가장 먼저 한국은행 국고 계좌로 들어갔다. 전 전 대통령의 조카 이재홍씨가 차명 관리해온 것으로, 재국씨가 실소유주로 의심받아온 부동산이다. 1991년 6월 매입할 때 쓴 자금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큰 물건이기도 하다. 재국씨 측은 9월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돈을 입금했다.

검찰은 10월29일 전 전 대통령 일가의 금융 자산 50억원을 추가로 환수했다. 부인 이순자씨의 연금보험, 재국씨 소유의 북플러스 주식, 삼남 재만씨의 장인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 소유 예금 등이다. 이씨는 30억원짜리 연금보험에 가입해 매달 1200만원의 연금을 받아왔다. 검찰이 지난 7월 압류 조치에 나서자 “선대로부터 물려받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던 재산이다. 전 전 대통령 측이 제출한 자진 납부 목록에도 이 연금보험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북플러스는 1998년 10월 자본금 2억5000만원으로 설립된 출판물 도·소매 회사로 현재 자본금은 20억원이다. 지난해 매출액이 502억원이며 자산 총액은 352억원이다. 전체 지분의 64.5%가 사내이사인 재국씨 소유였다.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의심받아온 이희상 회장의 재산은 일부만 환수됐다. 그가 자진 납부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금융 자산은 279억원 상당이다.

최근에는 역시 ‘비자금 관리인’ 중 한 명으로 거론돼온 전 전 대통령의 측근 손삼수씨로부터 5억5000만원을 거둬들였다. 5공화국 시절 청와대 재무관을 지낸 그는 2000년 경매에 나온 전 전 대통령의 벤츠 승용차를 낙찰받아 구설에 오른 인물이다. 차남 재용씨가 2001년 1월 설립한 IT업체 웨어밸리에 비자금이 유입된 사실을 확인한 검찰이 이 회사를 인수한 손씨로부터 추징금을 환수한 것이다.

시사저널은 올 8월5일자에서 재용씨가 웨어밸리의 미국 법인을 통해 비자금을 빼돌리려 한 정황을 포착해 보도한 바 있다. 또 9월1일자에서 재국씨의 부인 정도경씨와 아들 우석씨가 2년 넘게 손씨의 서울 평창동 주택에 주소지를 뒀던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손씨가 자신이 모셨던 전 전 대통령은 물론 가족과도 특별한 관계에 있음을 짐작케 해주는 대목이다.

재만·효선 씨 부동산 공매 예고

11월22일 현재 검찰이 전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받아낸 추징금은 여기까지다. 모두 합해 82억1000만원이다. 아직까지 환수해야 할 추징금이 1590억원가량 남아 있는 셈이다. 물론 추징 과정에 있는 재산도 여럿 된다. 그런 만큼 미납 추징금의 액수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추징금 환수를 위해 처분하겠다고 내놓은 전 전 대통령 측 재산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도 분명해 보인다.

‘압류 재산 환수 태스크포스(TF)’에 참가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11월18일 전 전 대통령 일가 소유의 보석 108점과 명품 시계 4점 등을 공매하겠다고 공고했다. 수량은 많지만 감정가는 합쳐서 6800만원이다. 12월19일 낙찰자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캠코는 재만씨의 서울 한남동 빌딩과 장녀 효선씨의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임야를 11월25일부터 사흘간 공개경쟁 입찰을 실시해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한남동 빌딩은 감정가가 195억원이다. 재만씨는 장인인 이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라고 주장했지만 소유 과정에서부터 의문투성이였다. 건축 허가가 1994년 6월에 났는데 건축주가 재만씨 본인이었다. 이 회장의 장녀 윤혜씨와 결혼하기 전이다. 이 빌딩은 1995년 7월에 착공돼 1996년 11월 완공됐다. 그런데 1998년 1월 이 건물의 소유주가 김 아무개씨로 넘어갔다가 4년이 지난 후인 2002년 5월 재만씨가 다시 인수했다. 시기적으로 볼 때 1997년 4월 전 전 대통령의 대법원 확정 판결 후 추징금으로 징수될 위험을 피하려고 제3자에게 명의를 돌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한다.

관악산 삼림욕장 등산로 왼쪽에 위치한 안양시 관양동 임야는 2만6876㎡(8130평) 규모로 감정가가 30억원이다. 이 일대는 오래전부터 전 전 대통령의 은닉 재산이 있는 곳으로 의심받아왔다. 해당 부동산은 전두환 일가의 재산 관리인으로 지목돼온 처남 이창석씨가 2006년 12월 조카인 효선씨에게 증여했다. 효선씨는 지난해 1월 이 토지에 지어진 77.39㎡(23평) 규모의 단독주택을 3700만원에 매입한 후 그해 7월 주소지를 아예 이곳으로 옮겼다. 검찰은 8월14일 이 부동산을 일찌감치 압류했다.

전두환 일가가 소장했던 미술품에 대한 경매도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검찰은 11월14일 주관 매각사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을 공동 선정했다.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회사다. 검찰은 이들 회사를 통해 11월 말~12월 초 사전 전시회를 개최한 후 경매 등 구체적인 일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압류한 미술품 600여 점 중에는 고 이대원 화백의 <농원> 등 고가의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어 전체 가격은 100억원대로 추정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10월2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에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부동산 대부분 압류 상태에 있어

나머지 재산은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환수 조치에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캠코 관계자는 “공매 의뢰를 받은 재산은 발표한 것 이외에 아직은 없다”고 전했다. 부동산의 경우 대부분 압류를 해놓은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부인 이순자씨와 셋째 며느리 이윤혜씨 명의로 되어 있는 연희동 사저는 9월16일자로 압류됐다. 이 부동산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당초 전 전 대통령이 소유하고 있던 별채는 2003년 12월 추징금 징수를 위해 경매 처분됐다. 그런데 처남 이창석씨가 경매가의 두 배가 넘는 16억원에 매입해 전 전 대통령 부부가 계속 살 수 있도록 했다. 이씨는 올해 4월 이 저택을 조카며느리인 이윤혜씨에게 넘겼다.

전 전 대통령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해온 이택수씨 명의로 된 사저 정원 부지는 이보다 앞선 8월26일 압류 조치됐다. 453.1㎡(137평) 규모의 이 정원은 1982년 당시 대학생이던 재국씨가 매입했다가 1999년 6월 소유주가 이씨로 바뀌었다. 이씨는 1996년 명동 사채시장에서 전 전 대통령의 무기명 채권을 현금화하려다 체포되기도 한 측근 중의 측근으로 꼽힌다. 그를 소환해 조사한 검찰은 이 땅이 전 전 대통령의 차명 재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시공사 사옥도 압류된 상태다. 재국·재용 형제가 지분을 절반씩 나눠 갖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이 1988년 10월 국가에 반납하기로 약속했다가 이를 지키지 않고 1991년 12월 두 아들에게 물려준 재산이다. 재국씨 지분이 9월12일, 재용씨 지분이 10월21일 각각 압류됐다. 재국씨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때인 1998년 4월과 2000년 5월에 매입한 서초동 사옥 인근 부동산 두 곳도 9월12일과 11월15일에 압류됐다.

현재까지 외부로 드러난 재국씨 가족 소유 부동산 중 가장 규모가 큰 허브빌리지는 8월29일 압류에 들어갔다.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 임진강 자락에 위치한 허브빌리지는 대지만 해도 5만7000㎡(1만7000평)에 이르는 국내 최대 허브 농장이다. 재국씨 가족은 2004년 5월 주소지를 아예 이곳으로 옮겼다. 허브빌리지는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일종의 사업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캠코를 통한 공매가 아니라 부동산 컨설팅 업무를 해온 회계법인이나 증권사 등을 주관사로 선정해 매각하는 방식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용씨 가족 회사인 비엘에셋이 소유한 서울 이태원동의 고급 빌라는 7월9일 가장 먼저 압류당했다. 당초 비엘에셋은 17층과 18층에 위치한 빌라 세 채를 갖고 있었다. 그중 17층 두 채를 ‘전두환 추징법’이 통과된 6월27일 14억원과 17억원에 매각했다. 시세보다 한참 낮은 가격에 급매한 것이다. 전 전 대통령 측이 제출한 자진 납부 목록에는 나머지 빌라 한 채도 빠져 있다. 검찰이 확보한 전두환 일가 재산 중 가장 덩치가 큰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땅도 8월14일 압류된 상태다. 재용씨가 외삼촌 이창석씨로부터 헐값에 매입해 불법 증여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규모가 워낙 크고 권리 관계가 복잡해 개발회사에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 측이 제출한 납부 목록에 오른 재산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경남 합천군 소재 선산도 9월26일 압류됐다. 이 선산은 성강문화재단 소유로 돼 있다. 장인인 고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 회장이 1985년 설립한 재단으로 현재 대표는 전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씨가 맡고 있다. 납부 재산으로 선산을 포함시킨 것을 두고 뒷말이 많았다. 국민 정서를 고려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검찰이 선산까지 매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는데 일단 압류는 해둔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어수선한 검찰, 환수 속도 한풀 꺾였나 


검찰이 전두환 일가를 압박해 재산 압류까지는 속도를 낸 데 반해, 후속 조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중도 하차한 후 수장 자리의 공백이 길어지고,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을 둘러싼 갈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등 현재 검찰이 처한 상황 때문에 환수 속도가 한풀 꺾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치권을 비롯한 주변의 관심이 급격히 줄어든 것도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물론 아직 성과를 논하기에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한 법조인은 “재산을 압류하고 이를 처분해 추징금을 환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는 간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검찰 관계자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사안인 만큼 진행 상황을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특히 검찰이 확보한 재산만으로 추징금 완납이 힘들 경우 다른 재산을 찾아내야 한다. 판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검찰에서도 “확보된 재산을 통해 전액 환수가 어려운 경우 추가로 은닉 재산 추적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 라고 밝힌 바 있다.

자진 납부 목록에 올라가 있지 않은 재산 중에서 ‘전두환 비자금’ 유입 가능성이 있는 것은 미리 관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재국씨 소유의 서울 평창동 전시관 등의 부동산과 가족이 지분 75%를 보유한 시공사 등 사업체를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해외로 빠져나간 비자금이 없는 지를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전두환 추징법’에 관여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시작이 중요한 만큼 완결도 중요하다. 일단 시동을 걸어 출발했으니까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잘 가고 있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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