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두둑해진 ‘왕서방’ 여자를 사다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3.11.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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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남성과 동남아 여성 매매혼 성행 탈북 여성도 수천 달러에 팔려

11월3일 낮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 시 기차역을 순찰 중이던 철도 공안은 두 명의 남자가 한 여성을 에워싼 채 완력을 쓰는 장면을 목격했다. 남성들은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며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끌려가는 여성의 외모와 말이 이상했다. 중국인이 아니라 동남아 사람인 듯한 모습에 처음 들어보는 말을 쏟아내며 절규했다.

공안은 두 남성을 제지하고 역내 파출소로 압송했다. 수소문 끝에 불러온 캄보디아어 통역을 통해 드러난 여성의 정체는 놀라웠다. 올해 23세인 로시(가명)는 7월 초 중국에서 일자리를 마련해주겠다는 캄보디아 내 인신매매범에 속아 비행기를 타고 광저우(廣州)에 도착했다. 로시는 공항에서 공장 책임자라는 한 남자의 손에 이끌려 기차를 타고 단둥으로 옮겨졌다. 단둥에 도착한 후에는 다른 여성에게 인계됐고, 며칠 뒤 왕웨이(王偉)라는 남자에게 팔려 갔다.

단둥 시 인근 콴뎬(寬甸) 만족 자치 현 촌민인 왕웨이는 브로커에게 6만8000위안(약 1200만원)을 지불한 뒤 로시를 건네받았다. 브로커가 챙겨준 로시의 가짜 호구(戶口)로 정식 혼인신고까지 마쳤다. 이국땅에서 상상도 못할 일을 당한 로시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4개월 만에 집 밖으로 탈출했다. 기차역까지 뒤쫓아 온 남편과 시동생에게 붙잡혔지만, 다행히 경찰의 도움을 받아 자유의 몸이 됐다.

ⓒ 연합뉴스
높은 결혼 비용에 화이트칼라도 매매혼 가세

오늘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중국에서는 지금 ‘매매혼(賣買婚)’이 성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시작돼 한국·홍콩·타이완 등지로 퍼져나간 동남아 여성과의 국제결혼도 엄밀히 따지면 매매혼이라 할 수 있다. 과거의 매매혼이 현대화된 모습으로 변질했을 뿐이다. 지난 10여 년간 급속한 경제 성장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중국 남성들도 그 대열을 뒤따르고 있다.

11월11일 중국은 독신절(光棍節)로 떠들썩했다. 독신절은 수년 전 한 인터넷 쇼핑몰의 상업적인 이벤트로 시작됐는데, 지금은 중국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명절 중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독신절을 맞아 한 인터넷 공동 구매 사이트가 베트남 신부 찾기 상품을 내놓았다. 베트남에 가서 단체 맞선을 보고 신붓감을 찾는 행사였는데, 출시하자마자 1만1000여 명의 독신 남성이 참가를 신청했다.

흥미로운 현상은 농촌 노총각, 도시 농민공 등 저소득층 남성들뿐만 아니라 대도시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도 적지 않게 동참했다는 점이다. 한 30대 참가자는 ‘베이징청년보’와의 인터뷰에서 “대도시에서는 집과 자동차가 없으면 맞선을 봐도 성공할 확률이 낮다”며 “베트남 여성과는 결혼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현행 중국법상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이 때문에 결혼중개업소는 베트남에서 단체 맞선을 주선하고 결혼식까지 성사시킨 뒤, 통역비와 행정 수속비 등의 명목으로 1인당 4만~5만 위안(약 704만~880만원)을 받는다. 베이징의 한 결혼소개업자는 “과거에는 주로 농촌 총각들이 동남아 신붓감을 찾았지만 2년 전부터는 연 수입 3만 위안(약 528만원) 이상인 화이트칼라층도 대거 가세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국제결혼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턱없이 높은 결혼 비용 때문이다. 중국 남성에게 결혼은 힘겨운 ‘돈’ 관문이다. 먼저 상견례 때 신랑 부모는 신부에게 ‘젠리(見面禮)’로 수천 위안의 돈을 주어야 한다. 젠리는 미래의 며느리가 인사하러 왔을 때 시부모가 주는 돈을 말한다. 신랑 측은 신부 측에 예단이나 혼수를 강요하지 않는다. 곱게 키워준 딸을 내어주는 신부 부모에 대한 배려이자 예의다. 이에 반해 신랑 측은 신부 부모에게 ‘차이리(彩禮)’를 준다. 황금과 같은 귀금속 선물도 주지만 돈이 핵심이다. 액수는 천차만별로 수만 위안에서 10만 위안(약 1760만원)에 달한다. 집·가구·전자제품 등 신혼 살림살이 일체도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국제결혼이라는 합법적인(?) 방법이 등장했지만, 대부분의 매매혼은 인신매매를 통해 이뤄진다. 1980년대까지는 자국민이 대상이었지만, 1990년대 말부터 외국인이 표적이 됐다. 그 첫 대상은 탈북자였다. 1990년대 중반 국제적인 고립과 연이은 자연재해로 수백만 명이 아사하자, 수십만 명의 북한 주민이 중국으로 탈출했다. 일명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던 이 시기에 탈북 여성은 인신매매단의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4~5년 전부터는 동남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경제주간’은 미얀마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 상황을 심층 보도했다.

윈난(雲南)성 루이리(瑞麗) 공안국에 따르면, 인신매매되었다가 구조돼 미얀마로 보내진 여성은 2007년 54명, 2008년 87명, 2009년 268명으로 2년 사이 5배나 증가했다. 루이리 공안국 린후이밍(林惠明) 대장은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피해자 가족이 신고해야 중국 공안이 구출에 나서는데 대다수 가족은 딸이나 누이가 중국에 팔려 간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8월 허베이(河北)성 우안(武安)에서는 베트남 여성 3명이 인신매매돼 강제로 결혼했다가 주민의 신고로 풀려났다. 같은 달 산시(陝西)성 상뤄(商洛)에서도 농촌 노총각에게 팔린 베트남과 미얀마 여성이 각각 구조됐다. 10월에는 구직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던 캄보디아 여성 4명이 인신매매단에 의해 안후이(安徽)성 황산(黃山)에 감금된 것을 현지 공안 당국이 적발해 구출했다.

미국 “중국은 인신매매 최하 등급 국가”

부담스러운 결혼 비용뿐만 아니라 극심한 남녀 성비 불균형과 도농 간의 소득 격차도 인신매매를 부추기고 있다. 남아 선호 사상과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으로 인해 현재 중국에서 30세 이하 남성 수는 여성보다 2000만명 이상 많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앞으로 10년간 결혼 적령기에 들어설 남성이 여성보다 매년 100만명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 인해 배우자를 찾지 못하는 농촌 총각이 급증해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중국경제주간’도 “인신매매에 의한 매매혼이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지 않는 한 개선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대응과 중국인의 인식 전환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인신매매의 악순환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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