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넘쳐나던 ‘요우커’ 갑자기 ‘뚝’
  • 모종혁│중국 통신원 ()
  • 승인 2013.12.0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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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법 시행 후 중국 관광객 급감…패키지 여행 상품 의존 탈피해야

#1. 11월24일 뉴질랜드 통계국은 10월 한 달 동안 자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이 19만5000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 동기에 비해 6% 증가한 수치다. 국가별 관광객 수는 호주-중국-미국 순이었다. 뉴질랜드 통계국은 “가파르게 늘어나던 중국인 관광객 수가 처음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나 하락했다”며 “중국 정부가 시행한 ‘여유법(旅遊法)’과 관련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2. 한때 몰려드는 중국 ‘요우커(游客)’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한국의 명동 거리. 10월 초까지만 해도 거리의 절반 가까이를 중국 관광객이 점령했지만 최근 들어 이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한 화장품 가게 직원은 “10월에 비해 명동을 찾는 중국 관광객이 대폭 줄어 매출이 30% 이상 떨어졌다”며 “무엇보다 단체 관광객이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대형 크루즈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한 중국 관광객들. ⓒ 연합뉴스
중국, 세계 여행업계 최대 물주 떠올라

최근 세계 각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숫자에 뚜렷한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증가세가 멈춘 것은 물론,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는 중국 내 사정도 마찬가지다. 중국 주요 관광지를 찾은 관광객 수는 베이징·하이난다오(海南島)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리장(麗江) -27%, 황산(黃山) -13% 등 금세기 들어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이처럼 전 세계 관광 시장에 한파를 몰아치게 한 주범은 바로 중국의 ‘여유법’이다.

여유법은 지난 4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를 통과해 공포하고, 10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관광 관련 법률이다. 중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종합 법률의 보호 없이 ‘여행사조례’ ‘중국 공민 출국여행 관리 법규’ ‘가이드 관리 조례’ 등 특정 분야에 대한 행정 법규와 부처 규정을 필요할 때마다 공포해 적용해왔다. 급성장한 경제 발전으로 국내외 관광객이 증가하고 여행에 대한 시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관광 시장에서 분쟁이 빈발했다. 여유법은 관광산업의 체계와 지위를 확립하고 시장 질서를 규범화해 여행객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하고 저가 상품, 쇼핑 강요 등을 몰아내기 위해 제정됐다.

오늘날 중국 관광 시장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9월 중국 국가여유국이 발표한 ‘중국 여행업 통계 공보’에 따르면, 지난해 자국을 여행한 사람은 29억5700만명에 달했다. 이는 전년에 비해 12% 늘어난 수치로, 이들이 소비한 금액만도 2조2706억 위안(약 3경9962조원)을 넘어섰다. 해외여행에 나선 중국인도 8318만명에 달해 전년 대비 18.4%나 증가했고, 이들이 뿌린 외화는 1020억 달러에 달했다. 이로 인한 여행 서비스 무역적자는 519억 달러를 넘어섰다. 세계 관광 시장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과 독일을 제치고 가장 큰 고객으로 탈바꿈했다.

지난 4월 보아오(博鰲) 아시아포럼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향후 5년 내 해외로 나가는 중국인이 4억명을 초과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세계 여행업계에 최대 물주로 떠오른 중국인이 뿌린 돈으로 혜택을 보는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2009년 이후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중국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는 방한한 외국인의 증가율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과 일치한다. 오랫동안 정체를 보였던 외국인 관광객은 2005년부터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뒤 지난해 1000만명 시대에 진입했다. 올해 들어서는 더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수십 년간 부동의 1위를 고수하던 일본을 밀어내고 중국이 수위를 차지한 것이다.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231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7%나 감소했다. 이에 반해 중국인은 377만명을 넘어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55.6%나 늘어났다. 여기에 홍콩(32만명), 마카오(2만명), 타이완(45만명) 등 다른 중화권 지역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이는 중국 측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올 상반기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174만명인 데 비해 일본에 간 관광객은 134만명에 그쳤다.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중국인 숫자가 일본을 찾은 중국인보다 앞선 것은 역사상 최초다. 중국 인민일보는 “양국 간의 항공편이 늘어나고 다양해지는 데다 한국 정부가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비자 정책을 부단히 완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여유법 후폭풍 제주 강타

그러나 여유법 시행 이후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곳은 제주도다. 지난 2년간 전년 동기 대비 평균 60% 이상 급등하던 중국인 관광객은 여유법의 유탄을 맞아 휘청거리고 있다. 10월까지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166만명이었고 그중 10월에는 14만명이 찾았다. 이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12% 증가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성장세가 꺾였다. 11월 들어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25일까지 9만4000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4% 감소했다. 2011년 이래 제주를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처음이다. 제주도관광협회는 “10월까지 제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210만명 중 80%가 중국인”이라며 “올해 말 중국인 관광객이 2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여유법 시행으로 물거품이 됐다”고 밝혔다.

여유법 후폭풍이 제주를 강타한 이유는, 패키지 단체 관광 상품 비중이 다른 지역보다 높기 때문이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의 77.2%는 패키지 단체 관광 상품을 통해 제주를 방문했다. 이에 반해 개별 여행객은 16.7%에 불과했다. 여유법은 여행사의 비정상적인 저가 모객 행위나 관광지에서의 쇼핑 장소 지정, 쇼핑 수수료 수취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 여행업계가 싸구려 패키지 여행 상품을 팔아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해온 데 있다. 한국의 한 여행사는 관광객을 모집해 송출하는 중국 아웃바운드 여행업체로부터 아무런 ‘지상비’(제주에서 쓰이는 여행 경비)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중국 여행업체에게 1인당 3만~10만원의 ‘인두세’까지 지불해온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호텔·식사·버스·가이드 등을 제공해야 하는 한국 여행사는 쇼핑을 통해 본전을 뽑아내야 했다. 여유법은 이런 비합리적인 관행에 철퇴를 가했다. 관광 계약서를 시작으로 여행 상품·비용·숙박·가이드 등 중국인 관광객 유치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우리 여행업계는 이에 대한 준비와 대처가 미흡했다. 문화관광연구원 최경은 책임연구원은 “중국인 단체관광객 전담 여행사가 대부분 규모가 작은 탓에 중국 아웃바운드 여행사와의 불합리한 거래 관행이 쉽게 개선되기 힘들어 적정한 지상비가 지불되는 일은 당분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중국인의 여행 관념과 패턴이 바뀌는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20~30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여행지에서 자유롭고 여유 있게 재미를 즐기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여유연구원 장요인(張佑印) 연구원은 “전통적인 관광 행태에서 휴가·레저·성형 등 다양한 스타일로 전환되면서 가정 단위 여행이나 개인 여행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유법 준비 3년간 한국은 뭐했나

여유법 시행 후 여행 상품 가격이 40~100% 상승해 중국 여행업계와 소비자의 불만이 급등하자, 중국 정부도 일부 조치를 완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1월24일 ‘경화(京華)시보’는 “중국 국가여유국이 고객의 요구에 의한 쇼핑이나 옵션은 여행 일정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과도기의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김청동 서울관광마케팅 마케팅본부장은 “앞으로 우리 업계는 쇼핑과 옵션에 의존했던 수익 구조를 바꿔 중국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다양한 여행 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며 “관련 기관도 개별 및 테마 여행객을 위한 신규 관광지나 특화 상품을 발굴해 업계와 공동 마케팅으로 관광객 유치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은 중국인 관광객의 물결, 새로운 시장 패러다임을 강구할 때가 됐다.

 

입소문 강한 젊은 ‘월광족’을 잡아라 


“고양시 MBC 방송국 견학이나 서울시 북촌 한옥집에서 경험한 1박 2일의 추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요.” 중국 충칭(重慶) 시의 중신(中信)은행에 근무하는 장이 씨(여·27)는 벌써 두 차례나 한국을 개별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다. 장 씨는 이미 동남아·괌·유럽 등지도 다녀왔지만, 모두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간 패키지 단체 여행이었다.

장 씨가 ‘겁 없이’ 혼자 한국에 간 것은 2011년 10월. 반년 동안 학원을 다니면서 배운 한국어 실력을 밑천으로 국경절 연휴 기간 서울에 다녀왔다. 장 씨는 “당시는 준비가 부족해 3성급 호텔에 묵으며 택시를 타고 다녔다”며 “적지 않은 돈을 썼지만 귀국할 때 중국보다 40~50% 저렴한 한국 화장품과 외국 브랜드의 가방, 향수 등을 대량 구입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올 국경절 연휴 기간에는 3명의 친구 및 직장 동료를 끌어들여 다시 한국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친분 있는 한국인 친구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철저히 준비했다.

장 씨는 두 차례 한국 여행을 하면서 여러 방면에서 놀랐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면 개인 여행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음에도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장 씨는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를 찾거나 현지 사무소에 연락해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는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셰청(携程)·이룽(藝龍) 등 전문 사이트를 이용할 경우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경유한 충칭―인천 간 왕복 항공권은 3100위안(약 54만3000원) 안팎에 불과하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한 서울의 비즈니스호텔이나 북촌 민박의 숙박료도 연 수입 15만 위안(약 2625만원)인 장 씨에게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장 씨는 “이번에는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티머니를 구입해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했다”며 “서울의 물가도 충칭보다는 비싸지만 베이징·상하이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동방신기의 열혈 팬으로 지난해 여름과 올 2월 한국을 다녀온 류옌옌 씨(여·23)도 같은 의견이었다. 류 씨는 “지난해에는 한국인 친구의 소개로 서울의 한 고시방에서 한 달 동안 지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국에 비해 콘서트 티켓 가격, 쇼핑 비용 등이 적게 들어 경제적이었다. 류 씨는 “한국에서는 S석 티켓이 10만원 안팎인 데 비해 중국에서는 무려 1800~2000위안(약 31만~35만원)이나 든다”며 “좋아하는 ‘오빠’의 공연도 보고 평소 사고 싶은 물건도 중국보다 싸게 살 수 있어 본전을 톡톡히 뽑는다”고 말했다.

개별 관광객은 한국 여행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소비를 아끼지 않는 젊은 월광족(月光族)이 주류다. 중국에서는 ‘입소문’ 마케팅 효과가 큰 데다 전통적인 시(關係) 문화 때문에 한 관광객이 10명의 지인을 한국으로 보낼 수 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우리 기관이나 업계가 유지비가 많이 드는 현지 사무소를 개설하기보다는 지역별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를 찾아내 시장 동향을 조사하고 중국 소비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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