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때만 2억원 번 강사도 있어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2.11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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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커뮤니티에서 인정받아야 대치동 강사로 성공 ‘보따리 장사’ 전전하다 떠나는 이들도

30대 후반의 학원 강사 박 아무개씨는 대치동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친다. 올해로 강사 10년 차인 베테랑이다. 요즘도 박씨의 하루는 분주하다. 물론 수능이 끝난 후라서 상대적으로 여유롭기는 하다. 그래도 여러 일정이 박씨를 기다린다. 사교육 강사라고 강의만 하는 건 아니다. 학원가에서 나름으로 이름이 알려진 만큼 각종 입시설명회에서 자주 박씨를 찾는다. 오늘도 대치동 학부모들 앞에서 ‘학생부 종합평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돌아온 참이다.

박씨가 대치동에 처음 발을 들인 건 2004년이다. 당시는 학원업계의 전성기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사교육 붐이 일었다. 그중에서도 ‘사교육 1번지’의 명성을 드높여가던 대치동을 선택했다. 처음 학원 강사 일을 시작하는 박씨로서는 ‘대치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졌다. 대치동 시스템 속에 있다 보면 학원 강사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름난 학원에 소속되거나, 의존할 수 있는 ‘라인’을 만나기를 기대했다.

그런 건 없었다. 대치동 학원 시장은 무규칙 이종격투기장과도 같은 곳이다. 의지할 이름도, 기댈 수 있는 기득권도 없다. 오로지 강사 개인의 경쟁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다른 ‘링’ 위에서 통했던 싸움의 방식도 이곳에선 아무런 쓸모가 없다. 다른 지역 유명 학원에 있었으면서도 대치동에서는 인정받는 데 실패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11월11일 한 사설 학원이 주최한 대학 입시 전략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강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능동적으로 학부모 욕구 채워줘야

대치동엔 여타 학원가와는 다르게 유별난 분위기가 있다. 학원 강사의 눈으로 보면 더욱 실감하게 된다. 대치동에서는 강의 잘하는 강사를 원하지 않는다. 대치동 엄마들은 자기 아이에게 철저히 맞춘 관리식 교육을 요구한다. 돈에 대해서는 많이 열려 있다. 대학 입학만 시켜준다면 얼마든지 지불할 의향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수단으로든 대치동 엄마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대치동 엄마들의 커뮤니티 사이에서 ‘괜찮다’는 소문이 돌아야 학원 강사로서 성공을 보장받는다.

그렇다고 학생이나 학부모가 원하는 것을 맞추겠다는 식으로 일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수동적인 강사는 돈을 잘 못 번다. 학생과 학부모가 가진 욕구를 알아채고 그것을 능동적인 방향으로 먼저 제시해 충족시켜주는 강사가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학생의 상태를 예민하게 관찰하고, 부족한 부분을 하나라도 더 채워주려 노력하는 강사가 인정받는다. 교재 개발에도 항상 신경을 써야 한다. 국어와 논술을 가르치는 박씨는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작성해준 경험이 많다.

박씨가 강사로서 느끼는 대치동 학원가의 장점이 있다. 과감하고 실험적인 수업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다른 학원가에서 일하는 강사의 말을 들어보면 주어진 수업에 바쁘다. 하지만 대치동에는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스타일의 수업을 새로 만들어 밀고 나갈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이것이 최신 입시 경향에 부합하는 사교육 상품을 빠른 속도로 내놓을 수 있는 배경이라는 생각도 든다.

박씨는 학원 강사라는 직업의 자유로움에 매료됐다. 다른 직업처럼 조직 논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자기만 잘하면 능력을 인정받고 나름으로 부도 쌓을 수 있는 직업이다. 특히 대치동이 그렇다. 철저히 개인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개별 강사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자유 경쟁 시장에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강사들이 일하는 방식, 받는 보수도 천차만별이다. 연봉 10억원이 넘는 인기 강사가 대치동에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온라인 강의 시장의 스타 강사들이다. 인터넷이 강의실의 경계를 허문 덕에 가능해진 일이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도 그런 억대의 수입이 가능한 곳이 바로 대치동이다. 명성이 있는 강사와 재력이 있는 학부모 사이에서 고액의 거래가 일어나는 것이다. 박씨는 2주 동안에 1억원을 번 강사도, 여름방학 한철 장사로 2억원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인 강사도 봤다. 그런 고액 사교육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가된 학원이나 교습소가 아닌 개별 그룹 과외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치동 강사들은 다른 학원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보통은 각 학생에게 정해진 액수의 학원비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치동에는 조금 다른 형태가 많다. 수강하는 학생 수가 몇이든 강사가 받는 수업료가 고정돼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만원짜리 반’을 개설하면, 학생 4명이 50만원씩을 내든 학생 2명이 100만원씩을 내든 고정 수입 200만원이 강사 손에 들어온다. 강사가 120만원, 학원이 80만원을 가져가는 식이다. 한 강의의 한 달 기준 수익이 100만원이 넘기 때문에 서너 강의씩 진행하면 고소득이 가능하다. 박씨는 “잘나가는 강사들은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씩, 즉 한 달에 네 번 수업을 하고 300만원에서 400만원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부는 연 2000만원도 못 벌어

수강하는 학생들 그룹은 보통 대치동 엄마들의 커뮤니티를 거쳐 결성된다. 학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야 자신의 수업을 수강할 학생 그룹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강사들은 하나의 학원에 고정돼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학원을 옮겨 다니며 강의실만 빌리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모두 대치동에 나름의 입지를 굳힌 강사들의 경우에 해당한다. ‘노예 계약’ 수준으로 여러 학원을 전전하며 ‘보따리 장사’식으로 교습 생활을 이어가는 사례도 있다. 1년 벌이가 2000만원에 못 미치는 강사도 많다는 것이다. 성공을 꿈꾸고 대치동에 왔다가 버티지 못하고 다른 학원가로 빠져나가는 이도 상당수다. 그래도 학원 강사 일을 포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강사직이 진입 장벽은 낮으나 퇴출 장벽은 높은 직군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지 않기에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을 나가면 다른 진로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대치동을 떠난 강사들 중 일부는 다른 곳의 학원에서 ‘대치동 출신’이라는 점을 내세워 학생들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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