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아이’ 될까 봐 밤늦도록 학원 돌았다”
  • 이혜리 인턴기자 ()
  • 승인 2013.12.1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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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때부터 과외받는 ‘대치동 키드’들 엄마 전화번호를 ‘씨○○’으로 입력해놓은 아이도

정연수씨(26·여)가 대치동에 처음 발을 들인 건 1994년이다. 맞벌이하는 부모를 따라 왔다. 어머니가 처음 이사를 제안했다. 곧 대치동 집값이 크게 뛸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1억5000만원을 들여 아파트를 샀다. 당시 대치동에서도 특히 잘사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대치1동 은마아파트였다. 그때 일곱 살이던 정씨는 다음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엔 ‘대치동 키드’들이 있었다. 그들로부터 받은 충격을 정씨는 잊을 수가 없다. 대다수가 어린 시절 외국에서 살다 왔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정씨는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경험이 없었다. 영어도 못했다. 부끄러웠다. 처음으로 수치심을 느꼈다. 그때부터 정씨는 방학 때마다 부모를 졸랐다. 매년 외국 여행을 다녀왔다.

12월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한 학부모가 자녀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항상 남과 자신을 비교해야 하는 곳

‘대치동 키드’에겐 학원·과외를 통한 선행 학습이 필수였다. 최소 국어·영어·수학 3과목 이상은 학교 진도보다 앞질러 배웠다. 초등학교 때 이미 <수학의 정석>까지 공부한 아이도 많았다. 더욱 놀라운 건 예체능 과외였다. 인근 중학교 앞 공원에서 주말마다 체육 과외가 이뤄졌다. 일명 ‘주말체육’이다. 주말체육을 하지 않았을 때 정씨는 친구들에게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았다.

더는 ‘이상한 아이’가 될 수는 없었다. 정씨도 대치동 키드가 되어갔다. 친구들처럼 각종 사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거기엔 예체능 과외도 포함됐다. 학교 실기 평가 일정에 따랐다. 줄넘기 평가가 있으면 과외 선생에게 단체로 줄넘기를 배웠다. 단소 불기 평가가 있으면 과외 선생에게 단소를 배우는 식이었다. 그렇게 정씨는 점점 대치동 문화에 물들어갔다.

정씨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2000년 타워팰리스 입주가 시작됐고 대치동엔 더 많은 부자가 몰려들었다. 중학교 앞 슈퍼마켓에서는 수입 제품들을 팔았다. 이곳에서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게 350㎖에 5000~8000원 하는 생수를 사 마시곤 했다. 급식이 맛이 없다며 슈퍼마켓에서 비싼 음식을 사다 먹는 친구도 많았다. 그는 급식을 먹으면서 왠지 모를 박탈감을 느꼈다.

정씨에겐 쉴 시간이 없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강하는 사교육 수는 늘어갔다. 많을 때는 학원 다섯 개(수학·영어·언어·사회·과학)를 다니며 4개의 과외(수학·논술·체육·음악)를 한 적도 있다. 한 달에 200만원 넘게 사교육비로 지출됐다. 주변 친구들은 더 심했다. 영어 과목만 수능용·내신용·회화용·유학용으로 4개의 과외를 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무조건 학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학원 및 과외 수업을 끝내면 잠잘 시간도 빠듯했다. 힘들었지만 쉴 수 없었다. 항상 친구들보다 뒤처져 있다는 초조함이 정씨를 압박했다.

부모의 고생은 더욱 심했다. 맞벌이 월급은 정씨와 오빠 사교육비로 고스란히 들어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치동 학부모 사이에선 사교육에 관련된 정보력이 곧 권력이다. 정보가 있어야 아이들에게 좋은 사교육을 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팽배하다. 하지만 ‘직장맘’인 엄마는 다른 학부모들과 정보를 공유할 시간이 없었다. 엄마에게는 주말밖에 시간이 없었다. 주중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씻어낼 겨를이 없었다. 정보를 많이 가졌다는 학부모를 수소문하며 뛰어다녀야 했다.

그럼에도 정씨는 철없는 마음에 부모를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친구들 부모 중 대다수는 의사·판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였다. 어린 마음에 ‘우리 부모님은 굉장히 뒤처진 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족한 부모의 자식인 자신은 친구들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정씨는 대치동의 사교육을 바탕으로 이른바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정씨에게 대치동은 ‘이상한 곳’으로 기억된다. ‘이상한 아이’가 되는 게 싫어 ‘대치동 키드’가 됐던 정씨, 그는 이제 대치동을 ‘이상한 곳’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씨의 말이다. “그곳에서 난 항상 지쳐 있었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대치동에 ‘나’는 없었다. 항상 남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혹시 나중에 자녀를 갖게 된다 해도 대치동에서 교육시킬 것 같지는 않다.”

대치동의 많은 학생은 여전히 엄청난 양의 사교육을 받는다. 12월4일 오후 4시30분, 수업을 마친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급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학원에 가기 위해서였다. 국어·영어·수학·과학 등 4개의 학원을 돈다고 했다. 학생은 “친구들도 이 정도는 기본으로 다 다닌다. 쉴 시간이 없어 힘들어죽겠다”는 말을 남기고 급히 학원으로 들어갔다.

오후 5시가 되자 고등학생들이 학교를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대치동에 소재한 어느 아파트로 들어가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런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왜 공부를 해야 할까. 과연 학생은 그에 대한 이유를 무엇에서 찾고 있을까.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흐른 뒤 학생이 대답했다. “이렇게 공부해야 나중에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

카페에서 빵으로 저녁 식사를 대신하는 학생들을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들이었다. 곧 학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다들 잘해서 따라잡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를 묻자 역시 학생들의 반응은 같았다. “이렇게 해야 먹고살기 편해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고민해보지는 않았는지 궁금했다. “엄마가 그런 길은 힘들다더라. 다른 걸 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렇게 공부해야 나중에 먹고살기 편하니까”

대치동 학원에서 강의한 경험이 있는 한 강사는 “대치동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워낙 많은 양의 사교육을 받아왔기에 수동적이기 쉽다. 스스로 강력한 동기를 발휘해 능동적으로 학습하는 힘이 부족한 학생이 많다”고 전했다. 대입 준비 과정에서 자율성을 잃어버린 채 막대한 양의 사교육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견디다 못해 부모와 사이가 틀어지는 대치동 학생도 많다. 강남권에서 대학 입시를 경험한 후 대치동을 중심으로 사교육 아르바이트를 했던 김다현씨(25·여)의 말이다. “대치동 등 강남 아이들이 부모님과 갈등을 겪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봤다. 내가 체감하기로는 절반 정도는 되는 듯하다.” 아버지 번호를 ‘개OO’, 어머니 번호를 ‘씨OO’이라는 욕설로 저장해두는 학생이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오늘도 대치동 키드들은 막대한 양의 사교육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연령대도 낮아져만 간다. 김다현씨는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영어책 읽어주기 과외를 한 적이 있다. 아직 어리기에 책상 앞에 1~2시간 앉아 있는 일은 고역일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을 억지로 붙잡아 앉히고 영어책을 읽히는 일은 김씨에게도 몹시 괴로웠다. “머리가 빠질 것 같아” “죽고 싶어”라고 중얼거리던 아이들의 말은, 과외를 그만둔 지금까지도 김씨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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