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리’가 대치 정국 들었다 놨다
  • 감명국 기자·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12.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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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비선 권력’ 논란…“정상 궤도 벗어난 시스템” 지적도

문고리의 사전적 의미는 ‘문을 걸어 잠그거나 여닫는 손잡이로 쓰고자 문에 다는 고리’라는 뜻이다. 박근혜정부에서 처음 등장한 ‘문고리 권력’이란 용어는 당초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을 가리켰다. 새누리당 인사들의 부러움과 질시가 섞인 용어이기도 했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이른바 ‘문고리 권력’은 열려 있다, 투명하다 등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마치 옛 왕조 정치, 보스 정치가 떠오른다. 자꾸 이런 식으로 빗댄 표현이 나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없던 이런 표현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마치 시대를 거슬러 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가”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문고리 권력에는 힘이 실린다. 고리를 쥐고 열면 곧 박근혜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사람, 수화기의 통화 버튼을 누르면 전파를 타고 박 대통령과 바로 교감할 수 있는 인물. 측근과의 걸림 없이, 문지기와의 기 싸움 없이 직접 소통이 가능한 자는 실세 중의 실세로 통하기 마련이다. 관심을 모으는 대목은 최근 새누리당 내에서도 이런 ‘문고리 권력’이란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는 점이다.

12월5일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3주년 기념행사’에참석한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왼쪽)이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과 악수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서청원, 초선부터 중진 만남까지 ‘광폭 행보’

서청원 의원. 지난 10월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로 당내 최다선이 된 그는 요즘 광폭 행보다. “낮은 자세로 임하겠다”던 겸손 모드가 무색하다. 초선부터 당내 최고 중진까지 조찬·오찬·만찬 가리지 않고 만난다. 공·사석 없이 현안에도 적극적으로 발언한다. 특유의 상기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뜨는 서청원, 지는 김무성’을 주제로 한 보도도 여럿 나왔다. 서 의원이 한나라당 사무총장이던 시절 박 대통령은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칩거를 끝냈다. 박 대통령의 오늘이 있기까지 서 의원이 없었다면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는다.

당내에선 서 의원을 두고 ‘여러 역할’을 이야기한다. 대충 이런 말들이다. “여야 대치 정국에서 당 내부, 야권 반대 의견을 모두 잠재울 수 있다” “야권 중진과 언제든 소통이 가능하다” “박심(朴心)과 가장 가까이 있다” “서심(徐心)은 곧 청심(淸心)” 등등. 한 정치권 인사의 분석은 이랬다. “서 의원을 두고 지금은 없는 ‘정무특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특임장관+정무수석’ 개념이다. 여야가 합의해 만든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될 공천제 폐지 문제나, 선거구 재획정 문제, 항상 핫이슈가 될 수 있는 개헌, 전당대회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 서 의원이 어떻게 말하는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그만이 야권의 상황까지 곁들여 박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실세이기 때문이다.”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 그를 두고선 “의원들 가운데 박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친박계 의원실 관계자)이라는 표현이 제격으로 들렸다. 이명박 정부가 국무위원(농림부장관)으로 내정해도 박 대통령이 비토하지 않은 사람이다. 요즘 정치권에선 유 장관을 두고 “청와대가 그를 얼마나 케어하느냐, 어떻게 커리어를 관리해주느냐에 따라 ‘후계자’의 반열에 오를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국회로 돌아오려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후임으로 유 장관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대권 주자 수순은 유 장관의 역량보다는 박 대통령이 써줄 수 있느냐에 따른다는 것이다. 유 장관이 쥔 문고리는 단단해 보인다.

유정복 안행부장관(맨 왼쪽)이 8월8일 청와대에서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환담장으로 가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지난 대선에서 유정복 장관이 갑자기 대선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당시 비서실장 역할을 하던 이학재 의원은 비서실 부실장으로 ‘강등’됐다.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유 장관이 비서실장을 하면서 많은 일이 부드럽게 진행됐다. 특히 야성(野性)을 가진 이들, 진보 색채가 강했던 이들과 접촉하는 데 유 장관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선 당시 캠프에서 일한 여권 인사가 전한 말이다. 그는 “업무를 바라보는 시각, 진행시키는 속도가 박 대통령에게 가장 가까이 있다. 과격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고 논리적이다. 유 장관은 구설에 오른 일이 없다.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면을 두루 갖췄다”고 했다. 실제 유 장관과 관련한 촌극은 찾을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한선교 의원이다.” 최근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기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민주당이 윤 부대표에게 “박 대통령을 누나라 칭하며 검찰 수사 자료를 뽑아내는 막강 실세”라고 겨냥한 직후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 발표보다 윤 부대표의 발언이 앞선 데 따른 의혹 제기였다. 윤 부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개혁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밝혔다고 비판받은 적도 있다. “왜 그리 앞서가느냐”는 것이었다.

(왼쪽부터)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 부대표, 홍문종 새누리당 사무총장 ⓒ 시사저널 이종현
‘새누리당은 윤상현당’이란 말까지 등장

윤 부대표를 문고리 권력군에 포함시키는 이유는 그의 네트워크에 있다. 박 대통령을 국회의원 데뷔 때부터 보좌한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과 교감이 두텁다고 전해진다. 박 대통령에게 귓속말을 할 수 있는 이정현 홍보수석과도 현안에 대한 의견을 자주 나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와도 가깝다고 알려졌다. 이미 그가 새누리당 원내를 장악했다며 한겨레는 ‘새누리당은 윤상현당’이라는 제목의 보도까지 했다.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가끔 윤 부대표가 원내대표급으로 비칠 때도 있지만, 사실은 이미 그런 급”이라며 “진중하기보다는 다소 가볍다는 것이 약점이기도 하지만, 정치부 기자들에겐 그런 면이 좋은 쪽으로 먹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부대표 관련 기사가 많아 “부럽다”고 웃으면서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최경환 원내대표. 사실 정치권에선 그를 두고 상반된 시각을 보낸다. ‘실세 중 실세’라고 하는 측과 ‘힘이 빠졌다’고 보는 측이다. 실세라고 보는 측에선 여전히 최 원내대표가 박심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주장한다. 박 대통령도 잘난 체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그에게 신뢰를 보낸다고도 전한다. 그런데 청와대 동향에 밝은 한 인사는 “청와대에선 (최 원내대표에게) 좀 실망했다는 소리도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 원내대표가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주영 여의도연구원장(당시 후보)에게 8표 차 ‘진땀 승’을 거뒀을 때, 특임장관 부활을 요구했다가 청와대에서 일거에 ‘없던 일’로 해버렸을 때, 최근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위한 헌법소원까지 법리 검토에 착수하면서 반감 여론을 조성했을 때를 두고 ‘실세에서 누락될’ 면모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공식 석상에서 A4용지에 메모한 글을 교과서 읽듯 해선 대중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새누리당 차기 주자군에 있는 최 원내대표에겐 뼈아픈 말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 간의 핫라인은 홍문종 사무총장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홍 총장은 정례적으로 청와대를 찾아 당내 상황과 현안 등에 대해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총장은 지난해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 때 외곽 조직을 총괄하면서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가 지난 5월 사무총장에 오르면서 황우여 대표와의 관계를 걱정하는 당내 목소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원래 사무총장은 당 대표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 맡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전당대회에서 중립 성향의 황우여 의원이 친박계의 지원을 업고 당 대표에 선출되면서 당 요직은 친박계가 장악했다. 첫 사무총장 역시 친박계 핵심 인사였던 서병수 의원이 맡았다. 서병수 전 총장이 황우여 대표 출범 2기 체제를 맞은 올 5월 사의를 표하자, 후임 사무총장은 황 대표 측근이 앉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캠프 핵심 인사였던 홍문종 의원으로 내정되자, 이번에도 박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황 대표의 존재감이 청와대에 완전히 가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각에선 ‘소리 없이 강한 남자’로 이학재 의원을 꼽는다. 18대 국회 말미에 박 대통령 비서실장 역할을 하며 ‘늦깎이 친박’으로 분류되는 그를 두고 ‘10미터’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항상 박 대통령을 10m 뒤에서 보좌하며 그림자 수행을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낮추는 데 탁월한 사람”이라는 게 그를 모셨던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 박 대통령은 강원도 화천 감성마을에 있는 소설가 이외수를 찾아간 적이 있다. 두 사람이 만나 박장대소하는 사진은 꽤 폭발성이 있었다. 이 ‘이외수 선발대’에 이 의원이 있었고, 그가 만남을 이뤄냈다. 보안을 유지하는 사자(使者)로선 그만한 이가 없다.

당내 권력 지형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고리 권력을 두고 “극복 대상”이라 밝힌 이들이 여럿이다. 정상 궤도를 벗어난 왜곡된 시스템이어서 그 직보 체계가 빗어내는 난맥상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그들의 득세가 곧 박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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