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전도사’의 새 아침 밝았다
  • 대구=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12.1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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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외출 영남대 부총장 위상 급상승…정권 후반기 대통령 비서실장 기용설도

휴대전화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새벽종이 울렸네 / 새 아침이 밝았네 / 너도나도 일어나 / 새마을을 가꾸세….” 그의 전화번호가 맞았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 기대감은 번번이 어긋났다. 그와 연락이 닿은 것은 12월4일 오전, 기자가 그를 직접 만나기 위해 오른 동대구행 KTX 열차 안이었다. 기자 신분을 밝히자, 그는 난감한 듯 말을 흐렸다. 그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주면 연락을 하겠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난 후 답장이 왔다. 장문이었다.

“기자님이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요즘도 참 많이 힘듭니다. 그저 저는 학교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기자님은 저의 형편을 이해해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저는 언론 인터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널리 헤아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이후 생략)”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새마을운동의 전도사’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인물’로 꼽히는 그는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기획조정특보를 맡은 후, 돌연 정치 현장 전면에서 자취를 감췄다. 박근혜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첫 조각 때부터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대통령과 35년 지기’ ‘5인 공부 모임의 멤버’ ‘제1호 새마을 장학생’이라는 수식어가 그때마다 따라붙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이 클수록 최 부총장은 더 두터운 베일 속으로 들어갔다. 공식 인터뷰는 지난해 대선 이후 아예 없다. 과연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은 박근혜정부 들어 새마을운동 세계화에만 주력한 채 외부 노출을 자제하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직제 없던 영남대 ‘특임’ 부총장 맡아

12월4일 기자는 최 부총장이 원장을 맡고 있는 영남대 부설 박정희리더십연구원을 찾았다. 이곳은 영남대 도서관의 맨 꼭대기인 20층에 자리 잡고 있다. 연구원에서도 최 부총장은 보이지 않았다. 연구원 입구 벽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을 그대로 옮긴 ‘새마을운동 구상 메모’가 장식돼 있었다. 연구원 접견실에서 바라본 풍경은 단연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접견실 창문 밖으로 총장실이 있는 대학본부가 내려다보였고, 영남대 캠퍼스도 한눈에 들어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압도적인 풍경은 영남대에서 차지하는 최 부총장의 위상을 대변하는 듯했다.

시사저널에서 확인한 결과, 최 부총장은 지난 6월 새마을운동 관련 국제 협력 업무를 추진하는 일종의 특임 부총장 직함을 맡았다. 최 부총장이 한때 대외협력부총장을 맡은 바 있지만, 당시는 이미 이를 그만둔 상태였다. 그는 앞서 올해 5월 신설된 국제개발협력원 원장에 임명됐다. 특임 부총장과 국제개발협력원장은 최 부총장이 맡기 이전까지는 영남대 공식 직제에는 없었다. 당초 부총장직은 대외협력과 교학, 의무부총장 등 3명뿐이었다. 현 정부 출범 후 대학 측의 특별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남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 부총장이 영남대 교수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불과 4~5년 전이다. 그 배경에 박 대통령이 있을 것이라는 게 학교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다. 영남대는 박 대통령이 1988년 영남대 이사직에서 물러난 이후 관선 이사 체제로 운영돼왔다. 하지만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2009년 ‘설립자 유족’ 자격으로 박 대통령에게 이사진 7명 중 4명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후 최 부총장은 영남대 재단의 기획조정실장과 영남대 대외협력 부총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2012년 신설된 박정희새마을정책대학원의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영남대 관계자는 “최 부총장이 교수 사회에서는 인맥이 약한 경북 김천고를 나왔고, 비(非)서울대 출신이다. 거기다 술도 거의 하지 않아 주요 보직을 맡기 전까지는 교수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외출 부총장은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영남대에 신설된 ‘지역사회개발학과’의 첫 입학생이자 학생회장이었다. 박 대통령과 최 부총장의 인연은 당시부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부총장 주변 사람들은 그가 새마을운동에 대한 애착을 갖고 연구와 부흥에 매진한 것도 학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채영택 박정희리더십연구원 연구실장은 “최 부총장은 지난 30여 년간 새마을운동을 연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매진해온 분”이라며 “(최 부총장의 새마을운동 관련 활동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지금은 장기간 연구를 하면서 이미 계획했던 일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12월4일 영남대 박정희리더십연구원 안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친필 구상 메모가 걸려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새마을 관련 발전기금, 큰 폭으로 늘어

연구원 측은 최 부총장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 국내 활동은 아예 접고 베트남 등 저개발국에 대한 새마을운동 전수·보급 등 해외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최 부총장은 박승우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장 등 동료 새마을운동 연구 교수 등과 함께 동남아 신흥 개도국을 방문하면서 새마을운동 세계화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22일 베트남 당·정 간부 양성기관인 호치민 정치아카데미 책임연구원, 교수들과 만나 새마을운동 공동 연구를 위한 주제 선정 등 협력 방안을 협의했다.

최 부총장이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건 그의 평소 언행을 감안하면 잘 알 수 있다는 내부 의견도 있다. 영남대 한 관계자는 “최 부총장은 원칙적인 일처리를 하고 부적절한 처신을 하지 않으려 굉장히 애를 쓰는 인물”이라며 “박 대통령이 그를 신임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부총장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위상은 영남대 내·외부에서 오를 대로 올라 있다. 이 대학의 2013년 발전기금 중 새마을운동 관련 발전기금 모금액은 전년에 비해 큰 폭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또 올해는 ‘새마을글로벌 발전기금’이 신설됐다. 유독 새마을운동 발전기금이 큰 호응을 얻는 데는 최 부총장의 위상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특히 지난 8월 최 부총장은 한국을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눈길을 끌었다. 최 부총장 측은 “경북도지사 등 지역 인사들과 함께한 자리였고 만난 사실도 우리가 먼저 공개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을 등에 업고 영향력이 커지는 최 부총장의 위상과 연관 짓기도 한다.

영남대의 한 교직원은 “이사장이 참석하는 행사에서도 최 부총장이 있으면 그와 인사라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 부총장의 평소 업무 처리 능력을 보면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지금은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정권 후반기 박 대통령이 필요로 할 때가 오면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부 요직으로 갈 정도의 사람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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