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 학생 구하려다 게임 산업 태동시키다
  • 김중태│IT문화원 원장 ()
  • 승인 2013.12.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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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온라인 게임 대모 장인경…진대제 전 장관과 서울대 71학번 동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3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2년 온라인 게임 시장은 6조7839억원에 달하고 이 가운데 모바일 게임이 8009억원을 차지한다. 매출액 규모로 알 수 있듯이 온라인 게임은 여전히 게임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수출 비중은 더 크다. 2012년 게임 수출은 약 3조원 가까운 26억3891만 달러로 전년에 비해 11% 증가했다. 이 중 온라인 게임이 전체 게임 수출액의 91.4%를 차지했다. 이는 K팝의 2011년 수출액 2040억원과 비교해 12배나 많은 것이다. 한마디로 한류 문화 수출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효자 상품’이 바로 한국의 게임 산업, 그중에서도 온라인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업계에만 10만명이 종사하고 있어서 고용 창출 효과도 크다.

ⓒ 시사저널 우태윤
1994년 한국 최초 온라인 게임 등장

한국 온라인 게임은 1994년 8월부터 PC통신에서 상용화된 ‘단군의 땅’과 ‘쥬라기 공원’에서 시작한다. 둘 다 같은 날 서비스가 개시됐기 때문에 모두 한국 최초의 온라인 게임이라고 불린다. 한국 온라인 게임 산업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게임계의 대모인 장인경 전 마리텔레콤 사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을 산업으로 정착시킨 인물로 꼽힌다.

장인경 전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71학번으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과 동기다. 1980년대까지도 전자과에서 여학생이 거의 안 보였는데 1971년에 전자과에 들어온 여성이니 돌연변이에 가까운 존재라 할 수 있다. 장 전 사장이 전자과에 입학한 이유는 아폴로 달 착륙을 보고 자신도 달에 가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처럼 생각도 실천도 남달랐던 그녀에게 어느 날 운명적인 사건이 닥친다.

1992년 PC통신을 통해 알고 지내던 한 학생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 빠진 6명의 친구가 학점 부족으로 제적당하게 됐는데 친구들을 구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카이스트의 학생들은 ‘별무리’란 모임을 만들고 하루 20시간씩 인터넷 머드 게임에 빠졌다. 장 전 사장은 카이스트 동기인 교수를 찾아가 “게임학과가 없어서 그런 것이지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들”이라며 제적만은 피하게 해달라고 설득했으나 6명은 결국 제적당한다. 1년 후에 다시 몇 명의 학생이 게임에 빠져 제적될 위기에 처하자 장 전 사장은 가슴이 아프다면서 당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제적당한 학생들을 책임지기로 한다.

이 일이 그의 운명을 가르고 한국 게임 산업을 태동시킨 계기가 됐다. 나중에 마리텔레콤 개발실장을 맡은 김지호·이성탁 씨 등이 바로 이때 장 전 사장이 책임진 학생들이다.

카이스트의 최순달 박사가 내준 방과 이민화 전 메디슨 회장의 도움으로 얻은 전세 아파트에 학생들을 묵게 할 때만 해도, 장 전 사장은 학생들에게 놀 공간과 숙소만 마련해주는 것으로 도움 주는 일을 그칠 생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학생들이 자기 갈 길을 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을 즐기던 이들은 합숙한 지 두 달 만에 아예 놀라운 게임을 만들어버린다. 결국 장 전 사장은 처음 의도와는 달리 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창업을 하게 된다. 아파트는 직원 6명과 이들의 친구인 천재 게이머들로 매일 북새통을 이뤘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국내 최초의 온라인 게임인 ‘단군의 땅’이다.

장 전 사장이 처음 세운 회사 이름은 마리텔레콤이 아닌 ‘메디슨텔레콤’이었다. 회사 이름이 바뀐 이유는 게임이 한국의 역사를 소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학생들은 자신들이 즐겼던 방식대로 서양식 게임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게임 만드는 것을 지켜보던 그는 지나가는 말로 “게임을 하면서 만날 서양 이야기만 하지 말고, 좋은 게임 개발에 성공하면 우리 역사를 기초로 하는 게임을 만들어 보답하라”고 했다.

학생들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단군을 소재로 한 게임 개발에 들어갔고 ‘단군의 땅’이 만들어졌다. 결국 ‘메디슨텔레콤’이라는 회사 이름도 단군 제사를 지내는 마니산의 이름을 따서 ‘마니텔레콤’으로 바뀌었고, 이후 마니산이 마리산으로 이름이 변경되자 회사 이름도 다시 ‘마리텔레콤’으로 바뀌었다.

게임 중독 학생들, 게임 개발자로 변신

국내 시장에 한계를 느낀 장인경 사장은 1997년 7월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시장 진출을 꾀하지만 고난의 연속이었다. IMF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상황은 최악이었다. 그러나 ‘스카다캠퍼’로부터 4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미국에서 선보인 ‘아크메이지’란 게임이 성공한 1999년부터 배고픔이 해결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마리텔레콤은 결국 문을 닫고 게임 서비스는 중지된다. 그 여파로 장 전 사장은 한동안 세속을 떠나 칩거에 들어갔다가 최근에야 활동을 재개했다.

장인경 전 사장이 국내 온라인 게임업계의 대모인 이유는 단순히 최초의 게임을 개발해서가 아니다. 제자들을 거두고 성장시켰기에 대모의 호칭을 얻은 것이다. 게임 산업 초기에는 정부 관계 부처를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면서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한 각종 정책과 입법 시스템을 갖추도록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해외 시장 진출에 밑거름을 놓은 이도 장인경 전 사장이다. 그의 노력 덕에 한국에서 온라인 게임이 산업으로서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해외 시장 진출의 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여전히 장인경 전 사장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현재 온라인 게임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들 또한 장 전 사장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국 최초의 온라인 게임인 ‘단군의 땅’은 김지호씨가, ‘쥬라기 공원’은 송재경씨가 개발했는데 앞서 언급했듯 당연히 이들은 장 전 사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송재경씨는 1994년 12월 김정주 넥슨 회장과 함께 넥슨을 공동 창업한 뒤 세계 최초의 머그(MUG; Multi User Graphic Dungeon) 게임인 ‘바람의 나라’를 개발했다. 또한 온라인 게임의 열풍을 가져온 리니지의 초기 개발에 참여한 개발자로 한국 온라인 게임의 대표적 인물 중 한 명이다. 지금은 ‘아키에이지’를 만들어 서비스하고 있다.

‘단군의 땅’이 출시된 지 2년 후인 1996년 2월부터 천리안을 통해 ‘바람의 나라’가 시범 운영되고 이후 ‘리니지’가 나오기까지. 한국의 온라인 게임이 새로운 흥행 역사를 써갈 수 있었던 데는 장인경이라는 한 여성의 노력이 있었다. 직장을 던져가면서 게임에 미친 학생들을 살리고자 했던 장 전 사장이 있었기에 한국의 온라인게임이 지금의 한류 문화 수출의 효자로 성장할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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