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는 ‘종편 정글’에서 생환할까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12.1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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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재심사를 2개월여 앞둔 가운데 손석희 사장 체제하의 JTBC의 변신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선한 시도’라는 평가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연 ‘종편’과 ‘손석희’라는 조합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시사저널은 다수의 내부 및 업계 관계자들을 접촉해 손 사장 취임 이후 조직 안팎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는 JTBC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여다봤다.


‘0.5%’. 그야말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종합편성 채널(종편) 4개 사의 2년 전 출범 초기 평균 시청률은 ‘바닥’이었다. 여러 우려와 잡음 속에 출범한 종편이었지만,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장밋빛 내일’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냉혹한 평가였다. 어느 곳 하나 예외 없이 시청률은 ‘선동렬 방어율’ 수준을 면치 못했고, 그마저도 시청자 중 80%가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었다. 종편의 스타트는 요란한 탄생에 비해 더없이 초라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여전히 종편의 시청률은 지상파에 크게 밀린다. 그러나 출범 초기와는 상황이 다소 달라졌다. 각 사마다 나름대로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터득했고, 그것이 개성으로 굳어지고 있다. 그 개성을 무기 삼아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전쟁을 펼치고 있다.

12월13일 법제사법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에서 JTBC가 영상 취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들이 이처럼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이유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종편 재승인 심의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종편은 내년 2월 심의를 거쳐 재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당초 종편을 도입할 때 2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며 한두 개 사의 탈락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탈락 대상자로 거론되는 종편사에 대해 이런저런 분석과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눈에 띄는 행보로 주목받는 곳이 있다. 바로 JTBC다. 특히 최근 눈에 띄는 변신을 거듭하는 JTBC의 행보는 시청자뿐 아니라 업계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요즘 회식 자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곳이 JTBC다. 지금 하고 있는 뉴스 방식이 일단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업계에서 관심을 갖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여기에는 손석희 사장 영입이 큰 계기가 됐다. 손 사장은 지난 5월부터 보도본부 사장으로서 JTBC에 출근했다.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 계열의 JTBC와 ‘손석희’라는 인물의 결합은 그 자체만으로 비상한 관심을 몰고 왔다.

손 사장이 JTBC에 자리를 잡은 지 이제 겨우 7개월이 지났지만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기사의 논조다. TV조선·채널A 등 다른 종편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사 비중이 늘어났다. 권력 비판적 기사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심지어 모기업인 중앙일보와 ‘특수관계’인 삼성에 대한 비판 기사도 등장했다. 그것도 삼성이 가장 아파하는 부분인 ‘노조’와 ‘백혈병’을 건드렸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도 해당 보도에 대해 묵인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JTBC의 한 내부 관계자는 “(삼성 비판 기사에 대한 질문에) 홍 회장이 손 사장에게 ‘가족끼리 연이 끊어지지 않게만 해달라’고 얘기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JTBC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손 사장이 기자들에게 이런 말도 했다고 한다. “삼성 보도가 나간 후 회장을 만났는데, 그 부분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 난 처음부터 삼성을 염두에 두거나 한 적도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다. 보도할 게 있으면 하는 것이다.”

‘손석희가 쏜다’ 피자 돌려…“내부 분위기 좋다”

최근 삼성코닝 주식 매각과 관련해 홍석현 회장의 지분(7.32%)도 매각 대상에 포함된 것을 두고, 재계보다도 오히려 언론계 쪽에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홍 회장의 삼성코닝 주식은 삼성과 중앙일보 사이의 상징적 연결 고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코닝 주식 매각은 삼성가(家)와 중앙일보 사이의 유일한 연결 고리가 끊어졌다는 걸 의미한다. 공교롭게도 이후부터 JTBC에서 삼성 비판 보도가 나오자, 재계와 언론계 주변에서 “이씨 집안(삼성그룹)과 홍씨 집안(보광그룹)이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다소 지나친 해석이라는 의견이 많다. 중앙일보 계열의 한 기자는 “정말 갈라서는 것이 맞다면, JTBC뿐 아니라 다른 계열사들에서도 변화 조짐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기조는 아직 없다. JTBC의 변신은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그 외에 여러 내부 관계자들도 양측의 불화설에 대해 고개를 젓고 있다. 재계 및 삼성의 내부 관계자들 역시 JTBC의 자사 비판 보도에 대해 “시청률 올리기 차원이 아니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손 사장 취임 후 보도 스탠스의 변화에 대해서는 여러 시각이 있지만, 치열한 종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결국 시청률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손석희’라는 브랜드파워를 살린 JTBC의 시도는 높게 평가하지만, 향후 사람이 바뀌면 결국 다른 종편과 똑같은 목소리로 회귀될 공산이 크다. MBC 등 기존 지상파 방송이 무너진 틈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전략이 일단은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당분간은 이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어쨌든 JTBC는 보도 영역을 넓히면서 자연스레 취재원의 스펙트럼도 확대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종편들은 ‘야권’보다는 ‘여권’ 성향이 강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손 사장 취임 후 이루어진 JTBC의 변신은 얼어붙었던 야권의 마음도 녹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예전엔 민주당에서 종편 인터뷰는 얼굴 알리기에 급급한 일부 초선 의원들이나 하려고 했지만, 이제는 중진들도 서로 JTBC에 못 나가서 안달인 걸 보면 참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런 대외적 변화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뉴스 가치에 대한 기준이 까다로워졌다는 것을 큰 변화로 꼽았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리포트, 전문가 초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7~8분씩 다루는 기획성 보도가 많아졌는데, 손 사장은 이를 ‘꾸러미’라고 부른다고 한다. JTBC의 한 기자는 손 사장 영입 후의 내부 변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꾸러미가 많아지면서 단순한 일반 기사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단순 사고 기사 등도 뉴스로 처리됐는데, 이제는 기존 보도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팩트나 부가적 요소가 있어야 아이템이 채택된다. 예를 들어 최근 하남시 여고생 살인 사건의 경우 다른 방송들은 모두 달려가 수사 결과 발표를 보도했는데, 우리는 기자를 보내지 않고 며칠 있다가 피해자 가족을 인터뷰했다. 이 밖에도 굵직한 현안을 기자들이 각자 맡아 자신의 이슈로 챙기게 하는 등 일 자체가 어려워진 건 사실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홍 회장 일가, JTBC에 대한 애정 남달라”

그는 까다로워진 상황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원동력으로 내부 분위기를 꼽았다. 속사정이야 어찌 됐건 일단 겉으로나마 시청률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종편은 기자 개개인을 시청률로 압박한다고 하는데, 손 사장은 기자들에게 시청률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그렇지만 시청률이 잘 나오면 기자들을 격려해준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과 관련한 보도가 나갔을 때 시청률이 4% 넘게 찍힌 적이 있는데, 이때 손 사장이 ‘손석희가 쏜다’라는 스티커를 붙여 직원들에게 피자를 돌렸다. 손 사장이 온 후 조직 분위기가 좋아진 것에 대해서는 다들 공감한다.”

이러한 JTBC의 변화를 보는 반응 가운데는 대체적으로 ‘신선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뉴스 편집 시스템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를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새로운 뉴스 트렌드에 맞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KBS의 경우 단순 사건·사고 기사는 7시 뉴스에 몰아넣고 9시 뉴스에는 주요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룬다고 한다. SBS는 한 꼭지당 ‘3분 넘는 뉴스’를 기조로 삼고 좀 더 심층적으로 이슈를 다루고자 노력한다. 업계에서는 JTBC의 경우 기획 및 심층 기사와 발생 기사의 비율이 너무 한쪽으로 간 것에 대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시각이 있다. 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우리끼리도 JTBC의 시도는 높게 사지만, 아직은 불안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JTBC 뉴스는 깊이는 있지만 다루는 주제가 한정됐기 때문에 왠지 뉴스를 본 후 다른 9시 뉴스를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지상파 방송사 보도에 대해 ‘백화점식’이라고 욕하지만, 수십 년 동안 임상 실험을 거쳐 검증된 우리나라에 맞는 방식인데 이를 마냥 무시하고 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앙일보 계열사 내에 JTBC에 대한 홍석현 회장의 사랑은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수의 중앙일보 계열 기자들은 하나같이 “홍 회장이 JTBC에 엄청 신경 쓰고 있다”고 전했다. 1965년 동양방송(TBC)의 전신인 ‘라디오서울’의 경영을 맡았던 홍 회장의 선친 홍진기 전 회장은 1980년대 신군부에 동양방송을 강탈당했다. 어떻게 보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JTBC 개국에 대한 감회가 다른 종편의 오너들보다 각별할 수밖에 없다. 중앙일보 관계자는 “홍 회장 쪽 입장은 중앙일보는 저쪽(이씨 일가)에 주더라도 JTBC만큼은 우리 (홍씨) 것이라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홍 회장의 아들 정도씨도 JTBC의 부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손 사장이 보도 부문을 움직인다면, 홍 부사장은 예능 등 프로그램 전반을 관장하는데, 그 역시 JTBC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앙일보 계열의 한 기자는 “홍 부사장이 가장 강조하는 사항은 ‘무조건 젊게 만들라’는 것이다. 본인이 젊기 때문에 가능한 주문이다. 어쨌든 그게 잘 통하고 있어 요새 분위기가 좋다”고 밝혔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볼 때 현재 JTBC가 힘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계열사 기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속마음을 전했다. 어느 한 곳의 성장을 위해서는 다른 한 곳의 희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나오는 뒷얘기다. 한 중앙일보 계열 언론 매체 기자는 장남의 진학과 출세를 위해 희생을 요구받던 둘째와 같은 속내를 빗대기도 했다. 그는 “요즘 JTBC가 많은 지원을 받고 잘나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여기엔 다른 계열사들의 ‘제 살 깎기’와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뉴스 비중 줄여야 살아남는다 


종합편성 채널 4개 사의 보도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많다. YTN·뉴스Y 등 보도 전문 채널과 다를 게 무엇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따라서 내년 초 종편 재심의를 받기 위해선 뉴스 프로그램 비중을 어느 정도 낮춰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국정감사 때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종편은 지상파와 마찬가지로 종합적인 장르가 골고루 반영돼야 하지만 지금은 보도 채널에 가까운 쪽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하며 “재승인 심사 때 다양한 프로그램 편성 여부 등 사업계획서 이행 실적을 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의 종편 4사는 과거 사업계획서 제출 당시 제시했던 방송 비중과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을까. 시사저널은 종편 4사의 사업계획서와 ‘보도 프로그램 편성 비율 현황’ 표를 입수해 비교해봤다. TV조선의 경우 사업계획서에 향후 보도 24.8%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했으나 48.1%(2013년 9월23일까지 기준) 비중을 보였다. 채널A의 경우는 2013년 23.6% 보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으나 46.2%의 비중을 보였다. MBN은 24.3%의 목표와 달리 40.4%를 보도 프로그램으로 채웠다. 유일하게 13.1%의 보도 비중을 보인 JTBC가 목표치 23.2%보다 낮았다.

종편이 보도 프로그램 비중을 좀처럼 줄이지 못하는 것은 비용 때문이다. 한 현직 방송 PD는 “예능 등은 돈이 많이 들지만, 뉴스 프로그램은 한 명 앉혀놓고 계속 이야기하게 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당 비용이 현저히 적게 든다. 종편 프로그램에서 정치평론가들을 스튜디오에 초대해 대담하는 형식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국의 한 기자도 “비싼 돈 주고 사람 섭외할 것 없이 기자에게 이야기하게 하는 보도 프로그램이 돈이 덜 든다”고 전했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애초에 파이가 한정된 언론 시장에 종편 4개를 모두 허용한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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