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안 죽으면 내가 죽는다
  • 원성윤│기자협회보 기자 ()
  • 승인 2013.12.1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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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4사 간 서바이벌 게임 양상…내부에서도 “한두 개 없어져야 숨통”

종합편성 채널(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 사업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내년 2월 재승인 심사를 통과하기 위한 종편 4사의 각개전투가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퇴출설’의 현실화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종편의 모기업인 신문사들이 그간의 침묵을 깨고 종편 경쟁사의 문제를 비중 있게 보도하기 시작한 것도 위기의식의 발로라는 지적이다. 특히 조선일보는 매일경제가 운영하는 MBN을 타깃으로 잡고 종편 심사 과정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10월16일자에서 전날 방통위 국감에서 제기된 종편 관련 문제들을 집중 보도했다. ‘MBN만 왜 주주 현황 공개 거부하나’란 기사에서는 MBN의 대주주인 매일경제가 일본의 경제신문인 니혼게이자이와 ‘원금과 연 수익률을 보장하는 이면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MBN은 “주주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1억~2억원짜리 주주에 대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며 “니혼게이자이신문 투자 약정서의 경우 이미 종편 승인 심사 자료에 있다”고 반박했다.

MBN과 관련한 취재는 지난 9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의혹을 최초 보도했던 정권현 조선일보 특별취재부장이 총괄하고 있으며, MBN의 주주 명부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지난 5월 언론개혁시민연대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개인정보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청구 정보를 공개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림에 따라 조선·중앙·동아 3사는 자사 종편의 주주 명부를 공개한 바 있다.

ⓒ 일러스트 최길수
주주 구성 문제로 MBN과 채널A 공격당해

그러나 MBN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가처분 신청까지 제기하며 주주 명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경쟁사들은 MBN이 주주 명부를 공개하지 못하는 숨은 사정이 있다고 의심한다. 언론계에서는 조·중·동 3사의 주주가 100~250명 선인 데 비해 MBN의 주주는 이보다 훨씬 많은 900여 명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회 등록 및 가장 납입도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돈다. 주주 구성에 위법성이 있을 경우 방송 사업 승인 취소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MBN 측에서도 방어에 필사적이다. MBN의 한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이 많아 노출될 경우 다른 종편사들에 보복당할까 우려해 보호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주주 구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주주 구성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 또 하나의 종편은 채널A다. 정치권과 언론계에서는 “채널A는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들만으로도 재승인 심사 탈락은 물론 승인 취소까지 가능한 수준”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언론학 교수는 “만일 방통위가 재승인 심사에서 한 사업자만 탈락시키겠다고 한다면, 현재로선 채널A가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최민희 민주당 의원이 제기한,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을 동원한 채널A의 우회 투자 의혹은 폭발력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 상임위원들은 “사실이면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경재 방통위원장도 “사실로 확인될 경우 위법에 따른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채널A는 자신 있다는 분위기다. 재승인 탈락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의 한 관계자는 “재승인에서 탈락시키기에는 정권의 부담이 클 것”이라며 “다만 조건부 승인의 조건이 까다롭게 나오면 회사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종편 4사 사이에 이전투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광고 매출이 예상보다 턱없이 낮은 게 큰 원인이다. 지난해 종편 4사의 광고 매출은 1710억원으로 당초 광고업계 예상치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영업적자 규모는 3000억원대에 달한다. 2013년 광고 매출액은 22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돼 전년 대비 약 30%대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1조9000억원대 매출이 예상되는 지상파 방송 3사의 10% 수준에 불과해 격차는 여전히 큰 편이다.

1년 광고 예측치 본 종편사주 “한 달치냐?”

이는 종편사들 스스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다. 종편 4사는 2011년 12월 출범한 후 한 달간 267억원의 광고 매출을 올렸다. 그러자 광고업계에서는 종편 4사가 2012년에 3000억원대의 광고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실제 종편 4사가 2012년에 벌어들인 광고 매출은 1710억원(전체 광고 시장의 1.2%)으로 예상치의 절반 수준이었다. 이는 종편이 출범하기 전인 2011년 9월 당시 예측치로 잡은 6000억원(6.1%)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러한 간극은 종편 광고 시장에 대한 지나친 낙관 때문이었다. 어느 종편사의 한 달 광고 매출이 30억원대에 그치자 모기업 신문사 내부에서는 “광고가 너무 안 된다”며 뜻밖의 성적에 당황했다. 1년 예측치를 받아 본 한 종편사 사주는 “이건 한 달 매출 아니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후문이다.

최근 각종 광고연감 및 광고계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TV 플랫폼의 전체 광고 매출 비중은 감소 추세로 TV 광고의 매출 신장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국회 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앞으로는 인터넷, 모바일 플랫폼에 밀려 TV 광고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종편의 경우 당초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광고 시장 확대, 일자리 창출 등 경제 효과를 이유로 무리하게 4개 채널을 출범시켰으나 실제 광고 시장은 종편 4사 채널이 모두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불안한 종편, 생존과 성장을 위한 인내와 자금력이 필요하다’는 보고서에서 “종편들이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할 수 있는 손익분기점 시청률(2.6~3.5%)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방송 전문가들은 종편의 현 재무 상태로는 보도와 시사 토론 위주의 편성, 높은 재방 비율, ‘막말’ 방송 등의 문제가 개선되기 힘들다며 재승인 심사에서 경영 능력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형편 탓에 종편사들 내부에서는 “1~2개 사가 없어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한 종편 관계자는 “최근 종편 탈락설이 끝없이 쏟아지는데 정말 정부에서 탈락시킬 마음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광고 시장이 어려우니 한 군데라도 떨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요즘 국면을 보면 동업자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너 죽고 나 살자’는 것 같다”고 푸념했다. 종편사의 한 고위 임원은 “TV는 기본적으로 20~40대 구매층을 기본으로 했지만, 요즘 이 세대가 점차 스마트폰과 PC 등을 통해 방송을 소비하면서 TV로 광고를 시청하고 방송을 보는 50대 이상 시청층이 소비 의사 결정 세대로 부각되고 있다”며 “실제 광고주 측에서 시청률 베이스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종편 광고 시장이 나아질 수도 있다는 희망이 섞인 말이다. 그만큼 지금 상황이 어렵다는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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