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억 혈세 먹고 한강에서 낮잠만 잔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2.1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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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애물단지’ 전락한 아라호 유람선 배 입찰 과정에 ‘영포 라인’ 개입설도

서울시 마포구 신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서강대교. 이 다리 남단에 위치한 선착장에는 서울시를 골머리 앓게 만든 ‘애물단지’ 하나가 정박해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10년 10월 건조된 한강 투어 선박 아라호. 이 아라호는 그동안 20여 차례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정식 취항은 아직 꿈도 못 꾸고 있다. 배를 건조하는 데 들어간 서울시 예산은 112억원에 이른다. 한강 유람선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배지만 3년 동안 물살 한번 제대로 가르지 못한 채 방치된 상태다.

박원순 시장이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당선된 후 아라호는 말 그대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매년 보험료로만 1억원 정도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가만히 세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서울시는 2012년 10월 민간 매각을 전격 결정했다. 아라호를 유람선으로 직접 운영할 경우 수입보다 경비가 두 배 정도 더 들어가 운영할수록 적자가 불어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반 경쟁 방식의 공개 입찰이 진행됐다. 그런데 올해 5월부터 네 차례나 진행된 공개 입찰은 모두 유찰로 끝났다. 11월28일까지 진행된 4차 입찰에서는 가격이 90억3000여 만원까지 내려갔지만 응찰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건조된 ‘한강아라호’가 서강대교 남단 선착장에 정박해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실무 라인 반대 불구 오세훈 시장이 강행”

문제는 가격을 좀 더 낮추더라도 매입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작다는 점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여전히 가격이 비싸다고 보고 있다”며 “수의계약도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격을 내려 수의계약을 진행할 경우 또 다른 부담이 발생한다. 유람선 운영에 관심을 두고 있는 업체들이 수익성을 확신할 정도로 가격을 낮추면 ‘특혜’라는 얘기가 나올 게 빤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아라호 처리를 놓고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라호 건조의 총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오세훈 전 시장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아라호는 오 전 시장이 심혈을 기울인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됐다. 한강르네상스는 ‘디자인 서울’과 함께 오 전 시장이 야심차게 추진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으로 불린 용산 재개발 사업과 인천~김포를 잇는 경인 아라뱃길 사업을 연계하는 큰 그림이 그려졌다. 이에 맞춰 한강예술섬 건설, 서해 뱃길 조성, 양화대교 교각 확장 등과 함께 추진된 주요 사업 중 하나가 아라호 건조였다.

당시 서울시 경영기획실에서 매월 작성한 ‘주요 업무 및 행사 계획’ 보고서를 살펴보면 오 전 시장이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2009넌 12월과 2010년 1월 보고서에서 한강사업본부는 20여 개에 이르는 한강 관련 업무 및 행사를 추진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두 번 한강르네상스 추진 사항 점검 회의를 갖고, 이와 별도로 매달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추진 상황을 오 전 시장에게 보고했다. ‘한강 투어선 건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아라호 건조도 보고 대상이었다.

이러한 기조는 2011년 들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서울시는 그해 2월 시의회에 보고한 ‘2011 주요 업무 계획’에서 중앙정부 지원 및 민자 유치를 통해 서해 뱃길 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인 아라뱃길 개통과 연계한 서해 뱃길 시범 운항 계획도 11월로 잡아뒀다. 한강사업본부는 ‘2011 주요 업무 계획’에서 한강의 고품격 투어선 건조가 완료됐고 1~2월 현재 시험 운항 및 성능 개선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민간 위탁 운영 사업자를 선정해 그해 10월 본격 운항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세워뒀지만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당초 실무 라인에서는 반대했는데 오 전 시장이 무리하게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아라호에 대한 경매가 계속 유찰되자 건조 비용이 너무 많이 든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승객 300명과 선원 10명이 정원인 아라호는 10노트의 속력을 지닌 680톤급 유람선이다. 한 시민단체 대표는 “업계에서 나오는 얘기로는 112억원이나 들어갈 정도의 배는 아니라고 한다”고 전했다. 서울시에서도 이러한 업계 분위기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배가 여러 척이 아니라 단 한 척이라서 설계비 등 부대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이로 인해 가격이 높아진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입찰 4위 업체와 계약…권력 실세 개입 의혹도

계약 과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됐다. 시사저널이 서울시에서 작성한 ‘한강 투어선 건조’ 관련 문서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아라호는 2009년 1~3월 건조 방침과 투자 심사 등이 이뤄졌고, 2009년 4~11월 디자인 및 개념 설계와 실시 설계 작업이 진행됐다. 이어 12월에 건조 계약을 맺어 2010년 1~10월 시공이 이뤄졌다. 그런데 아라호를 건조한 ㄷ업체가 경북 포항에 있는 회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MB(이명박) 정권의 실세였던 ‘영포(영일·포항) 라인’이 힘을 쓴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2009년 12월 조달청을 통해 진행된 전자 입찰 결과 ㄷ업체의 순위는 총 5개 회사 중 4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1위는 경남 사천의 ㅇ업체, 2~3위는 전남 목포의 ㅂ업체와 ㅁ업체, 5위는 전북 군산의 ㅅ업체였다. 물론 이 순위는 입찰서 제출 결과에 따른 것으로, 최종 낙찰자는 입찰 참가 자격과 적격 심사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조달청에 계약을 의뢰했기 때문에 계약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순위가 앞선 업체의 경우 자금 사정이 안 좋았는지 아니면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계약을 포기했다. 그래서 후순위인 ㄷ업체와 계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권 실세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관련이 없다. 조달청 입찰 사이트를 통해 순위를 봤는데, 권력 (개입) 때문에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 소속의 한 서울시의원은 “포항 소재 업체에 대한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ㄷ업체보다 한 계단 위 순위를 차지한 ㅁ업체의 설명이 석연치 않았다. ㅁ업체 관계자는 “당시 유람선의 경우 입찰도 안 했다. 몇만 톤급 선박을 여러 개 건조하고 있을 때였다. 물량이 많아서 아예 입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입찰 결과를 재차 확인한 후 다시 연락했을 때도 “관공서에 입찰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 업체 다른 관계자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입찰을 했는데 적격 심사에서 점수가 안 돼 포기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2위를 차지한 ㅂ업체는 ㅁ업체의 계열 회사였다. 입찰 때 대표가 같았다. 그런 두 업체가 입찰에 나서면서 적격 심사를 사전에 살피지 않았다는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1위였던 ㅇ업체 관계자도 “오래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입찰을 했다면 스스로 포기했든지 적격 심사 점수가 안 돼서 서류를 안 냈든지 그랬을 것”이라고 밝혔다.

ㄷ업체가 100억원이 넘는 유람선을 건조할 능력이 있는 회사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포항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인사는 “포항에 있는 조선소는 대부분 어선을 수리하는 수준의 회사다. ㄷ업체는 그중에서도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회사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 회사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실적 현황에는 500톤급의 여객선과 유람선, 크루즈선 등을 건조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한강 투어선 건조’ 입찰 자격 중 하나는 300톤 이상 강선 건조 실적이었다. ㄷ업체 관계자는 “입찰 결과 1~3위 업체들이 적격 심사 서류에서 탈락했다. 능력이 안 되면 할 수 없는 일이다”고 밝혔다. ‘정권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것 없다. 입찰에는 자격이 있고 실적이 있어야 들어오는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서울시에서도 ㄷ업체의 능력을 그렇게 신뢰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소기업 촉진을 위해 선박의 경우 1000톤 미만에 대해서는 대기업 조선소가 입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고 있다. 건조 비용으로 보면 대기업에 맡기는 게 맞을 수도 있는데 이 법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 건조 비용을 기준으로 하는 쪽으로 법이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라호의 경매 유찰이 계속된 것과 관련해서도 “대기업 조선소에서 건조했다면 브랜드 가치도 있고 배 품질에 대한 신뢰도 있어 (경매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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