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비행 로봇 날아와 “택배요!”
  • 김원식│미국 통신원 ()
  • 승인 2013.12.2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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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드론’ 상용화 카운트다운…시장 선점 위한 주 정부 간 경쟁 치열

12월1일 미국 CBS 시사 프로그램에 아마존닷컴의 CEO 제프 베조스가 출연했다. 베조스는 “흥미로운 화면을 보여주겠다”며 동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시애틀에 있는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개발을 진행 중인 무인 비행 로봇이 화면에 등장했다. 무인 비행 로봇의 이름은 ‘옥토콥터(octocopter)’. 비행 로봇은 물건 하나를 싣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정확하게 목적지로 입력된 집 앞마당에 물건을 내려놓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베조스는 “가까운 미래에 이런 무인 비행 로봇이 현재의 배달 트럭만큼 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미래는 언제쯤일까. 그는 “앞으로 4~5년 내에 현실화하기 위해 미국 연방항공청(FAA)과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아마존닷컴의 야심찬 계획에 모두가 놀라기만 한 것은 아니다. 냉소를 보낸 이도 있었다. 경쟁 업체인 ‘이베이’는 “우리는 장기적인 환상에 집중하지 않는다”며 라이벌 회사의 야심찬 계획에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흐름을 거스르는 쪽은 오히려 이베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닷컴에 이어 세계 최대 물류업체인 DHL도 비슷한 실험을 공개했다. 12월9일 독일 본에 위치한 본사에서 ‘파슬콥터(parcelcopter)’라고 이름 붙인 무인 비행 로봇이 물건을 싣고 라인 강을 가로질러 목적지로 날아갔다.

이날 실험은 원격 조정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DHL의 무인기도 아마존닷컴의 무인기처럼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기술을 갖추고 있다. DHL은 “아직 무인기 택배 서비스는 초기 연구 단계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긴급 의약품 수송 등에서 우선적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 11월12일 독일 퓌르스텐발데 상공에서 카메라 드론 ‘드론A’가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86조원 시장 잡기 위해 구애 나선 주 정부

보통 ‘드론(Drone)’이라고 불리는 무인기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용 중이다. 무인 공격기는 미국 정보기관이 대테러용으로 테러리스트들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정찰용 무인기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나 각 주의 경찰국에서 보유하고 있는데 범죄자 혹은 범죄 차량 추적 등에 요긴하게 쓰인다.

군사용이나 물류용뿐만 아니다. 농약 살포나 감시의 눈길이 닿기 힘든 송유관이나 전력선을 관리하는 데 사용될 무인기가 속속 개발되고 있다.

무인기를 현실화하는 문제에서 기술은 장애물이 아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무인기들이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허가하는 데 필요한 법적인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가장 큰 장애물은 무인기의 상업적 사용을 막고 있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이다. FAA는 FBI 등 정부 기관의 공적인 사용이나 연구기관들의 연구용 무인기 사용만 허가하고 있다. 민간 회사들이 무인기 사용을 타진하면 안전 등을 이유로 상업적 사용을 막는다.

그런데 미국 의회가 FAA에 제동을 걸었다. 의회는 무인기 관련 산업이 낳을 고용과 경제 효과에 주목했다. 그래서 2015년까지 상용 무인기 사용을 허가하라고 FAA에 요구한 상황이다. 의회의 압박에 FAA도 상용 무인기를 허용하는 단계를 밟고 있다. 12월17일 미국 언론들은 “FAA가 올해 안에 상업용 무인기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를 실험할 미국 내 6개 주를 선정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FAA가 발표를 하자마자 네바다 주를 비롯해 미국의 주 정부들이 영업에 나섰다. 상업용 무인기 시장과 제작 회사를 주에 유치하려는 경쟁에 돌입했다. FAA의 승인이 떨어질 경우 첨단 기술을 요구하는 상용 무인기 시장을 선점할 수 있고, 이는 곧 지역 경제력 상승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경쟁자들 가운데 오클라호마 주가 선수를 치고 나섰다. 오클라호마 주는 FAA의 발표 일에 바로 정치인·학자·기업인들을 모아놓고 미드웨스트시티에서 대규모로 ‘상용 무인기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FAA가 곧 정하게 될 무인기 테스트 지역에 선정되고 싶다는 간절함을 드러낸 행사였다. 이날 컨퍼런스에 나선 오클라호마 주 과학기술장관은 “무인기 상용 시장은 제작, 디자인, 운영, 허가, 자료 분석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다. 특히 우리 주가 그 산업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무인기 상용화 허가는 시간문제다. 법률적인 절차만 해결하면 된다. 무인기 시장은 미국 경제에 또 하나 중요한 축을 이룰 것이 분명해 보인다. FAA는 2030년까지 미국 하늘에 3만여 대의 상용 무인기가 운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무인기시스템협회(Association for Unmanned Vehicle Systems International)’는 2025년까지 상용 무인기 산업이 1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최소한 820억 달러(86조원)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오클라호마 주 컨퍼런스에 참가한 한 전문가는 “상용 무인기는 인간이 갈 수 없는 위험하고 오염된 지역 어디라도 갈 수 있기 때문에 그 사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며 상용 무인기 시장 규모가 예상치보다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항공 사고 등 기술적인 문제도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지적되는 부분은 사생활 침해 등 윤리적인 문제다.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예를 들어 뉴욕 시 등 인구 밀집 지역에서 상업용 무인기들이 활개를 치고 날아다닐 경우 사고 위험도 높지만 그만큼 카메라를 장착한 무인기에 사생활이 노출될 우려도 커진다.

사생활 침해와 범죄 악용 우려 반발도

실제로 뉴욕 시는 올 3월에 범죄 예방과 치안 강화를 위해 감시용 무인기를 띄우겠다고 밝혔다가 ‘빅브라더(Big Brother; 감시 사회)’ 논란에 휩싸이고 거센 반발에 직면했던 경험이 있다. 반감은 도시에만 있지 않다.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인구 598명의 작은 마을인 디어 트레일에서는 지난 12월10일 무인기와 관련한 주민 투표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연기됐다. 이날 투표에 부쳐질 법안은 무인기가 마을 상공을 지날 때 격추시킨다는 내용이었다. 인권 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합’ 관계자는 “무인기 사용에 따른 피해가 아주 세밀한 곳까지 늘어날 수 있지만 이를 방지할 법적 규정이 없다”고 우려했다. 또, 범죄 집단에 악용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브라질에서는 죄수들이 무인기를 이용해 감옥 내로 총을 반입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상용 무인기 허용을 반대하는 측은 “정부가 상용 무인기를 허가하기 전에 이런 부작용을 방지할 모든 제도적인 장치를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저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상용 무인기는 허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 연방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2015년까지 무인기의 상업적 사용을 허가하기 위한 절차들을 추진해나가고 있다. 아직은 일부 소규모 벤처회사 등이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지만, 2015년 이후 허가가 나고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면 군사용 무인기를 제작했던 보잉사 등 거대 군수업체들이 상용 무인기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전망이다. 무인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숙제에 관한 해답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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