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만 한 달 내내 먹으면 탈 나지 않을 사람 있나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12.2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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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먹느냐보다 덜 먹는 게 중요… 전문가· 업체의 식품 성분 과장에 소비자 혼란

#1. 서점의 건강·식품 코너에 유독 사람이 많다. 그만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 책들은 대부분 고기, 설탕, 소금은 물론이고 우유, 옥수수, 밥, 채소도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말한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등 3대 영양소가 우리 몸을 망가뜨리고 600여 종이 넘는 식품첨가물은 독이라고 한다. 이런 내용을 모두 받아들이면 안심하고 먹을 음식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다.

#2. 재래시장의 어물전 장수는 무슨 생선이 어떤 질병에 좋다며 소비자의 허리춤을 잡아끈다. 청과물 가게 주인도 특정 과일이 암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식당 벽면에도 당뇨와 고혈압에 무슨 음식이 좋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식품을 의약품쯤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신선한 식품을 골고루 먹어 영양 균형을 맞추라는 의사의 말은 진부해 보일 정도다. 두부 장수가 레시틴이라는 낯선 물질을 운운하고, 바지락 장수는 베타인의 효과를 줄줄 꿰고 있다. 레시틴은 어린이 두뇌 발육에 도움을 주고, 베타인은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한다고 주장한다. 식품 전문가들은 엉터리라고 일축하지만 소비자에게는 솔깃하게 들린다. 비싼 돈을 주고 토코페롤, 폴리페놀, 오메가3 지방산 등을 사 먹지 많으면 당장에라도 암에 걸릴 것 같은 분위기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할아버지·할머니가 재배한 채소를 받아먹던 시대는 지났고, 식품이 대량으로 유통되는 시대에 가공식품은 필수품”이라며 “그 가공식품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연구하고 계몽하는 일이 전문가의 임무인데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매스컴을 통해 엉터리 지식으로 아무것도 아닌 식품의 특정 성분을 부풀려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식품 안전에 관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식품업체의 노이즈 마케팅이 불신 조장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는 양념을 넣지만, 공장에서는 식품첨가물을 넣는다. 예를 들어 매운맛을 내기 위해 가정에서 고추를 통째로 사용한다면 공장에서는 원가 절감을 위해 캡사이신이라는 매운 성분만 추출해서 쓴다. 또 빨간색을 내기 위해 고추의 빨간 색소를 분리해서 식품에 첨가한다. 결국 양념과 식품첨가물은 말만 다를 뿐 역할이 같다. 그럼에도 식품첨가물은 건강에 해로울 것 같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정명섭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식품첨가물은 크게 천연·혼합·합성 세 가지로 분류한다”며 “천연은 생물체에서 추출한 것이고, 혼합은 그것들을 섞은 것이며, 합성은 화학적으로 섞은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합성 식품첨가물은 독성 실험 등을 통해 사람이 평생 먹어도 무해한 기준량을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 대학의 이케다 교수가 1908년 일본인이 좋아하는 다시마 국물 맛을 연구하다가 네 가지 기본 맛(단맛·신맛·짠맛·쓴맛)이 아닌 오묘한 그 맛에 우마미(감칠맛)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구 끝에 그 맛이 글루탐산의 맛임을 밝혀냈다. 글루탐산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자연물에 존재하는 성분이다. 토마토·간장·파르메산치즈·콩 등에 들어 있고 심지어 모유에도 포함돼 있다. 여기에 나트륨을 첨가하니 물에 잘 녹고 그 맛이 탁월했다. 이것이 글루탐산나트륨, 즉 MSG다.

이게 국내에서 화학조미료로 인식된 것은 1993년 한 식품회사의 조미료 광고가 발단이었다. 당시 미원과 미풍이 양분하던 조미료 시장에 맛그린이라는 제품으로 뛰어든 럭키는 ‘화학조미료 MSG 무첨가’라는 표시를 강조했다. 생소했던 MSG는 장안의 화제가 됐고, 화학조미료라는 말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과장·비방 광고로 확정하고 럭키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럭키는 3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MSG는 1일 섭취량을 정하지 않을 정도로 안전한 물질이라는 것이 국내외 학자들의 평가다. 식품 안전성 규정에 권위를 가진 국제기구인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세계보건기구(WHO)·한국식품의약품안전처는 MSG에 유해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일본·호주·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MSG를 소금이나 후추처럼 안전한 식품으로 여기는 이유는 MSG의 주재료(글루탐산)를 천연물에서 추출하기 때문이다. 사탕수수를 미생물로 발효시켜 만든 것이 MSG다.

그러나 MSG에 대한 불신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식품업체들의 노이즈 마케팅이 한몫했다. 노이즈 마케팅은 고의적으로 구설을 만들어내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기법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유에 들어 있는 카세인나트륨 소동이다. 카세인은 우유에 들어 있는 단백질 성분으로 여기에 물에 잘 녹도록 나트륨을 첨가한 것을 카세인나트륨이라고 부른다. 국제적으로 안전성이 확인된 물질이다.

남양유업은 1990년대 초 독일의 공식 자료까지 공개하며 카세인나트륨을 아기에게 유익한 영양 성분이라고 홍보했으나 2012년 카세인나트륨을 뺀 자사의 커피믹스를 출시하면서 카세인나트륨은 화학적 합성품이라고 말을 바꿨다. 소비자는 이 성분이 들어 있지 않은 제품을 찾았고, 남양유업은 시장점유율이 올랐다. 업계에서는 식품첨가물을 포함한 가공식품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켜서 작은 이익을 챙기는 일부 식품업체의 마케팅에 제동을 거는 정부의 정책과 소비 인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천연’에 홀린 소비자

‘첨가물’이라는 말은 식품에 무언가를 넣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식품 포장지에 적혀 있는 낯선 성분명까지 접하면 소비자는 첨가물을 무조건 나쁜 물질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안식향산은 과일 등에 들어 있는 성분이지만 용어만으로는 무슨 물질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게다가 이 물질이 소독제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된다는 점이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나기라도 하면 소비자의 뇌리에 안식향산은 절대 접해서는 안 되는 물질로 각인된다.

육포는 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건조한 식품이다. 수분을 제거하면 미생물에 의한 부패와 변질이 생기지 않아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저장 기간을 늘려준 건조는 중요한 식품 저장 기술이다. 과일·채소·곡물·육류는 물론 한약재도 건조해서 보관할 수 있다.

건조한 음식을 가루로 만들면 서로 섞기가 편리하고 음식에 첨가하면 맛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 일부 가정에서는 주부가 이런 방법으로 조미료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분말 스프’다. 물론 씹는 즐거움은 사라지지만 분말 스프는 요리 시간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 항상 일정한 맛을 내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분말 스프라는 명칭 자체가 인공적이라는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만일 화학조미료를 향신료로, 인공첨가물을 맛도우미로 용어를 순화해서 사용했다면 지금처럼 식품에 대한 불신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부 국가처럼 소비자가 알기 쉽게 그림이나 코드 등으로 성분을 표기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화학조미료·인공첨가물·가공식품에 대한 인식이 나쁘게 박히다 보니 사람들의 관심은 천연물로 쏠린다. 천연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품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천연이라는 말에 너무 홀려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쌀은 수천 년 동안 사람의 손을 거쳐 개량되고 경작됐다. 배추나 고추도 사람이 농가에서 재배한 것이다. 야생 젖소는 사라진 지 오래고 사람이 목장에서 기르는 젖소는 하루에 30ℓ(리터)의 우유를 생산하도록 개량됐다. 이 젖소에서 나온 우유를 천연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덕환 교수는 “천연물과 가공식품의 구분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이고, 구분할 이유도 없다”며 “품종 개량이나 유전자 조작으로 사람의 입맛에 맞게 재단한 농수축산물을 천연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 식탁에 흔히 올라오는 젓갈을 가공식품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제암연구소(IARC)는 담배 연기, 알코올과 함께 젓갈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1군이란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확인된 물질이다. 젓갈에 들어 있는 나트륨이 위암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삼겹살 따위를 불에 구워 먹을 때 발생하는 벤조피렌도 1군 발암물질이다. 고기의 검게 탄 부분, 연기 등에 있는 이 성분을 사람이 먹는다.

젓갈을 먹지 않을 수 없고, 돼지고기를 발암 식품으로 규정할 수도 없다. 다만 젓갈에 소금을 적게 넣고, 고기를 조리하는 방식을 바꾸면 된다. 그럼에도 음식 자체를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구분하는 일부 전문가의 행태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덕환 교수는 “과거 영양학자들은 쌀의 영양이 풍부하지 않다며 혼식과 분식을 권장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쌀을 기적의 식품이라고 한다. 미국이 비만 치료에 쌀밥을 권하기 때문인데, 영양가가 없으니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소비자가 대형마트 냉동식품 코너에서 즉석식품을 고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식습관 바꾸는 일에 전문가 나서야

현대 사회에서 비만과 당뇨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설탕이 주범으로 지목됐다. 포도당과 과당으로 구성된 설탕을 먹으면 두 성분이 분리돼 우리 몸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 이 두 성분은 설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액상 과당, 올리고당, 밥, 과일 등에도 있다. 소스 개발업체인 시아스 연구소의 최낙언 연구원은 “단 음식을 지나치게 섭취하는 식습관을 고치지 않고 설탕을 주범으로 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소금이 건강에 해를 끼친다는 말에 천일염이 부각됐다. 미네랄이 풍부해서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건강에 필요한 미네랄을 식품을 통해 쉽게 섭취한다. 그럼에도 미네랄이 강조된 탓에 이 물질이 들어 있는 소금을 꼭 먹어야 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특정 소금을 찾을 일이 아니라 소금 섭취량 자체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게 위암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몇 해 전 한 미국인이 햄버거로 하루 세끼를 해결하다 병을 얻었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반대로 햄버거만 먹어도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햄버거의 열량과 성분을 따지지만 사실 햄버거 개수, 즉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많이 먹으면 비만해지기 쉽고 이 때문에 각종 질병에 걸릴 가능성은 커진다. 현대인은 운동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열량을 섭취한다. 또 한두 가지 음식만 먹는 편식도 건강을 해치기는 마찬가지다.

식습관 개선이 필요한 때다. 그럼에도 식품의 특정 성분을 떼어내 무해성과 유해성을 따지는 일은 소모전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사람이 하루에 먹는 음식량을 조절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천연식품이든 가공식품이든 몸에 해롭다고 단정할 음식은 없다. 그러므로 개인의 식습관에 맞춰 식품을 선택하면 된다는 시각도 있다. 권훈정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천연물과 가공식품 선택은 개인의 기호 문제라고 본다”며 “면으로 만든 옷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화학 처리한 기능성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일부 식품업체가 비위생적인 재료나 가공 방법으로 식품을 만드는 행위는 분명 비난받을 일이다. 한마디로 불량 식품은 우리 사회에서 추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식품위생법을 만들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특히 가공식품의 유해성에 대한 정보는 국제사회가 공유하고 있다. 최낙언 연구원은 “불량 식품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불량 지식”이라고 지적하며 “일부 식품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얕은 지식으로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소스 개발업체인 시아스 연구소의 최낙언 연구원은 천연·합성, 식품·첨가물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기보다 먹는 음식량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진짜 식품첨가물 이야기> 등 식품 관련 책의 저자이기도 한 그를 만나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봤다.

 

화학적으로 합성한 식품첨가물은 몸에 좋지 않은가.

식품첨가물을 식품과 전혀 다른 물질로 인식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구분도 애매하다. 소금은 식품이지만 산소는 첨가물이다. 미네랄 가운데 염화마그네슘이 있다. 이는 암석에서 채취한 천연물질임에도 화학적 합성품으로 분류된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소금을 만들면서 생긴 간수에 있는 염화마그네슘은 천연이라고 한다. 식품첨가물로 인해 사람이 사망한 사례는 없다. 오히려 과일이나 채소를 먹고 식중독에 걸려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생선이나 육류는 워낙 부패가 빠르니까 잘 조리해서 먹지만 과일이나 채소는 방심하는 것이다.

과일을 먹는 것과 그 맛이 나는 주스를 마시는 것에 차이가 있나.

포도를 먹든 포도 주스를 마시든 몸에서 흡수되는 영양분은 동일하다. 물론 과일에는 섬유소와 같은 성분이 있지만 영양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과일을 먹는 것과 음료로 마시는 것은 개인의 기호에 맡기는 편이 옳다. 모든 사람이 복숭아를 좋아해도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그 과일은 독이기 때문이다.

소금과 설탕을 건강에 좋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를 어떻게 보는가.

나트륨이 문제가 된다고 하니 소금 섭취량을 줄여야 하는데도 사람들은 엉뚱하게 짜지 않은 소금을 찾는다. 당이 많아 문제가 된다면 설탕은 물론 과일, 밥 등을 적게 먹어서 포도당과 과당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 그럼에도 과일은 많이 먹으면서 콜라 때문에 비만해진다고 야단이다. 당 함량은 과일이 콜라보다 많다.

탄산음료는 비만의 주범인가.

비만이 늘어나자 콜라가 지목됐다. 콜라의 당분이 비만 인구를 늘렸다는 것이다. 콜라는 1975년 이후 소비량이 늘지 않았으므로 비만 인구가 증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럼에도 비만 인구는 꾸준히 늘어났다. 요즘 효소액이 건강에 좋다고 해서 유행인데 설탕물과 다르지 않다. 다른 식품으로 당을 많이 섭취해서 비만이 늘어난 것이지 콜라와 같은 단일 식품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논리는 곤란하다.

패스트푸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주문해서 빨리 나오는 음식이 패스트푸드라면 비빔밥이나 김밥도 패스트푸드다. 비빔밥과 김밥을 빨리 내놓기 위해서는 미리 오랜 시간 재료를 준비한다. 그건 햄버거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패스트푸드가 나쁜 게 아니라 빨리 먹는 식습관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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