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구 성지에 ‘돌부처’ 떴다
  • 일본 오사카=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12.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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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 한신타이거즈 수호신 예약…“40세이브도 가능” 전망

‘오승환 열풍’이 거세다. 무대는 대구가 아니라 일본 오사카다. 올 시즌을 끝으로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한 오승환은 연고지 오사카 야구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연일 오사카 지역 TV에선 오승환을 다룬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스포츠 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오승환을 등장시킨다. 한신은 예상하지 못했던 ‘오승환 특수’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 12월12일. 오승환이 한신 홈구장인 고시엔 구장에 나타나자 40여 명에 가까운 취재진은 일제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다음 날 오사카에서 열릴 입단 기자회견에 앞서 오승환은 고시엔 구장을 방문해 구장 내부 시설을 둘러보고 유니폼 치수를 쟀다.

12월12일 한신 타이거스 홈구장인 고시엔 구장을 찾은 오승환이 기자들 앞에서 투구 포즈를 취했다. ⓒ 박동희 제공
오승환이 도착하기 2~3시간 전부터 진을 치며 기다리던 일본 기자들은 오승환이 등장하자 “고시엔 구장을 방문한 첫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다. 오승환은 “일본 야구의 성지라 들었다”며 “이곳에서 꼭 성공해 한국과 일본 야구팬의 격려와 환대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일본 기자들이 궁금해한 건 오승환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었다. 그들은 오승환에게 “내년 시즌 목표를 숫자로 말해보라”며 “몇 세이브가 가능할지 예상해달라”고 요청했다. 오승환은 “몇 세이브를 하겠다는 예상보단 팀을 위해 1개의 ‘블론세이브’(동점이나 역전 허용)도 기록하지 않겠다는 게 목표”라며 “팀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출격할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일본 야구계에서 오승환은 유명 인사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인기 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한신이 10억 엔(약 10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해 어렵게 영입한 마무리인 데다 1,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아시아시리즈에서 그의 가공할 광속구를 지켜봤기 때문이다.

일본 야구 전문가들은 “오승환이 일본에서도 25세이브 이상은 쉽게 넘길 것 같다”며 “한신 타선과 불펜진만 괜찮다면 40세이브도 가능하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관심을 모은 건 지난해까지 한신의 뒷문을 책임진 후지카와 규지보다 오승환이 낫다는 평이 많다는 점이다. 올 시즌부터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서 뛴 후지카와는 지난해까지 한신의 붙박이 마무리였다.

한신 와다 감독 “8회부터 팀을 지켜달라”

2007년 셋업맨에서 마무리로 전향해 2012년까지 6년 연속 24세이브 이상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도 낮아 2010년 2.01을 제외하면 늘 1점대였다. 오승환처럼 ‘돌직구’를 뿌리며 탈삼진 행진을 펼쳤던 후지카와는 여전히 일본 최고의 마무리로 불린다. 그런 후지카와와 비교해 오승환이 낫다는 평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스포츠 전문지 닛칸스포츠의 마쓰모토 와카루 기자는 “오승환의 속구가 후지카와보다 훨씬 위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며 “후지카와의 속구가 포심패스트볼 위주의 깨끗한 직구라면, 오승환의 속구는 포심뿐만 아니라 투심패스트볼, 컷패스트볼 등 공 끝이 살아 움직이는 ‘무빙 패스트볼’이다”라고 평했다.

한신 코칭스태프들의 기대도 후지카와 이상이다. 12월13일 오사카에서 열린 오승환 입단 기자회견장에서 와다 유타카 감독은 “오승환은 한국 최고의 마무리로 활약한 대선수로, 그의 투구 영상을 보며 일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와다 감독은 오승환의 예상 세이브를 묻는 말엔 “8회까지 우리 팀 불펜진이 얼마나 잘 리드를 지키느냐가 관건”이라며 “8회까지만 리드를 유지하면 9회는 오승환이 버티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그가 공식 기자회견장에선 그렇게 말했지만, 기자회견 이틀 전 오승환과 만난 저녁 식사 자리에선 더 강한 기대를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끝판대장’ 오승환(왼쪽)이 12월4일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등번호 22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나카무라 가즈히로 한신 단장과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승환 “쓰나미 피해민·후쿠시마 주민에 성금 예정”

오승환은 “와다 감독께서 ‘팀을 위해 꼭 필요할 땐 9회가 아닌 8회부터라도 마운드에 올라 승리를 지켜달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다”고 귀띔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마무리가 8회부터 등판하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나 외국인 마무리 투수는 9회부터 등장하는 게 관행이다. 그럼에도 와다 감독이 오승환에게 조기 등판 가능성을 시사한 건 그만큼 믿음이 크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동료 선수들의 기대도 무척 크다. 클럽하우스에서 오승환과 인사를 나눈 한신 선수들은 하나같이 “우리 팀에 온 걸 환영한다”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달라”고 부탁했다.

한신 구단은 오승환에게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의 영입으로 인한 부수 이익을 바라는 눈치다. 한신 관계자는 “한국 선수들이 일본 구단에 입단할 때마다 한국 방송사가 중계권을 사간 것으로 안다. 우리도 요미우리 자이언츠, 오릭스 버팔로스처럼 한국 방송사를 통해 한신의 멋진 경기를 선보이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입단 기자회견장에서 오승환은 한신과 일본 기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공식 기자회견이 끝나고 일본 기자들에 둘러싸여 추가 인터뷰를 할 때였다. 오승환은 “부족한 저를 환대해주신 오사카 야구팬에게 보답하는 의미에서 연봉의 일부를 떼 지금도 고통받는 쓰나미 피해민들과 후쿠시마 주민들에게 성금으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외국인 선수가, 그것도 입단 기자회견에서 선뜻 기부 의사를 밝히자 한신 측은 “자비(自費)냐”고 물었고 오승환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외국인 선수는 고사하고 내국인 선수도 자신의 연봉을 떼 기부금으로 전달한 적이 거의 없다”며 “오승환은 클래스가 다른 선수인 것 같다”고 놀라워했다.

한 일본 기자는 “후쿠시마는 일본인이 가장 마음 아파하는 지역”이라고 강조하며 이런 이야기를 전했다. “솔직히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등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 유출 지역 8개 현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해 일본인 사이에서 한국은 비호감 이웃이 됐다.

그런 와중에 오승환이 후쿠시마 원전 피해민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깜짝 놀랐다. 일본인도 쉽게 하기 힘든 결정을 했으니까. 오승환의 선행이 한일 양국 관계 호전에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작 오승환은 자신의 선행에 대해 말을 아꼈다. 오승환은 “내가 받을 9억 엔은 일본에서 나온 돈이다. 그 돈을 일본 사회에 일정 부분 환원하는 건 광고할 일이 아니다”라며 “귀국하면 한국 아마추어 야구 발전기금으로 별도의 기부금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오승환, 승부사 기질이 돋보인다” 
와다 유타카  한신 타이거즈 감독 인터뷰

와다 유타카 한신 감독은 ‘프랜차이즈 스타’(특정 팀에서 데뷔해 오랫동안 맹활약한 선수) 출신의 사령탑이다. 현역 시절 ‘한신의 안타 제조기’로 불릴 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홈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2011년 시즌 종료 후, 타격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했으나 2년 연속 센트럴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탄탄한 수비력과 강력한 투수진을 바탕으로 하는 ‘지키는 야구’를 외쳤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특히 지난해를 끝으로 붙박이 마무리 후지카와 규지가 미국으로 떠나며 올 시즌 내내 허술한 뒷문 때문에 고생했다. 구단은 내년까지 와다 감독을 신임하겠다는 입장이다.

1985년 이후 일본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한신은 어느 팀보다 우승에 목마른 상태다. 와다 감독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오승환이 한신의 새로운 수호신이 되길 바란다”며 “30년 만의 일본시리즈 우승 도전에도 첨병이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오승환이 드디어 한신 유니폼을 입었다. 그전에도 오승환을 알고 있었나.

물론이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팀 마무리로 출전해 잘 알고 있었다. 무척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라 ‘저 정도 구속이면 일본 타자들도 공략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오승환의 투구를 직접 본 적은 있나.

직접 보진 못했다. 하지만 스카우터가 한국에서 찍은 투구 동영상을 봤다. 투구 폼이 좋고 타자와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하는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속구 구속이 무척 빠르다. 특히나 마운드 위에서 한결같은 표정인 걸 보고 승부사 기질이 뛰어난 투수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뛸 때 그의 별명이 뭐였는지 아나.

‘돌부처’ ‘철가면’이라고 들었다(웃음). 그 별명과 잘 어울린다(웃음).

한신은 한국 최고의 마무리를 총액 10억 엔을 들여 영입했다. 투자액이 큰 만큼 기대 성적도 높을 것 같은데.

한국에서의 투구를 일본에서도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워낙 뛰어난 투수라 별 걱정은 하지 않는다. 감독 입장에선 오승환의 집념과 투지가 한신에 이식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키는 오승환이 아닌 필승조 셋업맨들이 쥐고 있다. 필승조가 오승환이 등판하기 직전인 8회까지 팀 승리를 지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다시 말하지만 오승환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

오승환과 처음 대면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

한국 야구계의 슈퍼스타답지 않게 무척 차분하면서 예의 바른 선수였다. ‘팀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실제 투구를 봐야 알겠지만 우선 마인드만 놓고 보면 A급 외국인 선수임에 틀림없다. 구단이 좋은 선수를 뽑아준 것 같다.

오승환이 일본 야구에 적응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야구는 어디서 하든지 다 똑같다. 한국에서 슈퍼스타였으면 일본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굳이 문제를 발견하기 전까진 한국에서 던질 때처럼 투구했으면 좋겠다.

오승환에게 등번호로 ‘22번’을 붙여줬다. 그 등번호는 후지카와가 쓰던 번호다.

후지카와처럼 성공한 마무리가 돼달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22번은 역대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들의 전통적인 등번호다. 오승환이 우리 팀의 새로운 수호신이자 우승의 첨병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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