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앞에서 웃고 울게 하는 것, 그게 노는 것이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12.2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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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붐의 주역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올해 공연계 최고의 화제를 뽑을 때 창극의 부활을 빼놓을 수 없다. 일반 관객에게 가장 인기 없는 공연 장르였던 창극에 관객이 몰린 것이다. 물론 관객이 몰리기 전 국내 공연계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먼저 창극에 몰렸다. 연극·뮤지컬·음악계 최고의 브레인들이 창작 창극에 뛰어들었다. 연극계의 블루칩인 서재형·한아름 부부는 고전 그리스 비극인 <메디아>를 창극으로 선보여 대중을 깜짝 놀라게 했다. 내년 6월에는 연극계의 히트 브랜드인 고선웅이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옹녀>가 출격을 준비 중이어서 또 다른 파격을 예고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편제> <장화홍련> <메디아> 등은 모두 객석 점유율 80~90%를 넘겼다. 뮤지컬 히트작의 흥행을 넘어선 것이다. ‘오던 사람만 오고, 아는 사람만 가던’ 변방의 창극 장르가 공연계의 가장 뜨거운 흥행물로 탈바꿈한 것이다.

새로운 창극 시대를 만들어낸 주역은 국립창극단 김성녀 단장이다. 그는 극단 미추에서 30여 년 동안 마당극의 헤로인 역할을 했고, 최근에는 10년째 1인극 <벽 속의 요정>을 공연하고 있는 연극배우이기도 하다.

그에게 창극 얘기를 묻자 먼저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최근에 끝난 <배비장전> 재공연이 추가석을 마련할 정도로 관객이 몰려 객석 점유율이 100%를 넘는 대박을 쳤기 때문이다. 그는 기존 창극 ‘고정 팬’에 대한 미안함부터 전했다. “나는 ‘이런 게 창극이다’가 아닌 ‘이것도 창극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최근 받은 편지 이야기를 꺼냈다. 한 창극 팬이 ‘스릴러 창극’ <장화홍련>을 보고 실망한 감정을 절절하게 담은 손 글씨 편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그 팬은 신파극 형식에 판소리 다섯 마당 가락을 나눠 부르는 ‘기존 창극’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내비쳤다.

ⓒ 시사저널 전영기
“기존 창극 골수팬도 만족시키려고 노력”

“창극의 고정 팬을 모시면서 다른 장르 팬을 흡수하는 게 내 소명인데, 외롭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기존의 창극 고정 팬이 창극을 지켜주셨지만 그분들만 갖고는 창극이 너무 외롭다. 뮤지컬 관객도, 연극 관객도 창극이 흡수해야 한다. 젊은 관객들이 창극을 보러 오게 하는 작업도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그는 “판소리는 정해진 양식이 있고 그 양식을 변하지 않게 보존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소리와 극이 만난 창극은 양식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계속 변해야 한다. 무용·연극 등 다양한 장르와 만나서 창극단의 주체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당놀이의 헤로인이었던 그는 <배비장전>을 통해 마당놀이 양식을 창극단 레퍼토리에 도입했다. 그는 자신이 30년 동안 ‘마당에서 놀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남 앞에서 그들을 웃고 울게 하는 것, 그게 노는 것이다. 마당놀이를 30년 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은 마당놀이 3인방인 김성엽·윤문식·김성녀가 잘 놀았기 때문이다. 연극배우가 마당놀이를 하는 것과 창극단 배우가 마당놀이를 하는 것은 다르다. 잘만 놀아주면 창극단 배우가 하는 마당놀이가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줄 것이다. 내가 중앙대 교수로 간 이유도 창극 배우를 키우고 싶어서다. 그때 키운 제자 중 일부가 창극단 배우로 오기도 했다. <메디아>에서 판소리 기법으로 합창했던 코러스는 다 내가 대학에서 소리·연기·춤·뮤지컬을 가르쳤던 학생들이다. 그런 친구들이 잘 자라면 마당놀이의 새로운 버전이 가능할 것 같다.”

김성녀 감독의 남편은 익히 알려진 대로 극단 미추의 대표인 연출가 손진책이다. 이 부부는 최근 진기한 기록을 세웠다. 부부가 동시에 국립극단 예술감독과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을 맡아 전무후무한 ‘국립 쌍감독’ 시대를 연 것. 부부 모두 각자의 성취를 인정받았기에 그는 감회가 컸다. 가야금을 배우고 국립창극단 배우, 국립극단 배우를 거쳐 연극배우로 완전히 자리를 굳힌 그이지만 마당놀이를 들고 나왔던 1970년대 후반에는 마음고생이 컸다. “처음엔 연극계에서 마당놀이가 연극이 아니라고 했고 소리 쪽에서는 창극이 아니라고 했다. 외롭게 장르를 지켰지만 연극 쪽에서 이해랑 연극상을 타면서 ‘이제는 인정을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 감독은 남편에 대해 ‘가장 신랄한 비평가’라고 했다. “다른 사람은 대놓고 진실되게 말하지 못하지만 우린 서로에게 신랄하다. (마음이) 좀 다치더라도 가장 정확한 비평을 해준다.” 그는 기념비적인 창작 뮤지컬 <댄싱 섀도우> 때의 이야기를 전했다. <댄싱 섀도우>의 외국인 연출가는 김성녀의 연기에 대해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허설 때 무대를 지켜본 손진책 감독이 귀신같이 아내의 연기에서 모자란 부분을 짚어냈다. “지적하는 것을 들으니 내가 왜 허전했는지 딱 느껴졌다. 이런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정말 고마웠다.”

김 감독의 말에 따르면 ‘지적을 잘하고 고집 센’ 손 감독도, 초보 연극 연출가인 아들과 한때 뮤지컬계에 몸담았던 딸의 신랄한 비판에서는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가족의 지적은 그 안에 애정이 있으니까 쌍칼을 휘둘러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웃음).

이 부부에게도 의견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남편 때문에 연출가와 자주 어울릴 기회가 있는데 그분들이 늘 ‘공부하는 배우가 없다’ ‘좋은 배우가 없다’고 한탄한다. 우리 배우들도 늘 좋은 연출자가 없다고 하는데(웃음). 그래서 나도 동료 배우 만나면 공부하라고 성화를 한다. 연출가는 숲을 보는 사람이라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배우는 나무를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배우는 관객에게 직접 감동을 준다. 배우를 못 하니까 연출을 하는 거다. 난 이런 식으로 남편과 싸운다.”

예술감독으로서 그의 임기는 내년 겨울이면 끝난다. 그때까지는 벌써 계획이 꽉 차 있다. “내년 2월에는 유실된 <숙영낭자전>을 멜로물처럼 울고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복원시킬 것이고, 4월에는 <장화홍련> 재공연을 한다. 6월에는 고선웅표 <옹녀>를 올린다. 벌써 대본이 나왔는데 진짜 재미있다. <메디아>가 10월에 공연되고, 세계적인 연출가 안드레이 서반이 <춘향전>으로 고전 흔들기 작업을 할 것이다. 무용가 안은미와 소리꾼 이자람이 벌써 하고 싶다고 손을 들고 있다. 12월에는 손진책표 마당놀이 창극을 대극장에 올리고 싶다. 창극이 현대 공연 문화의 중심에 서야 한다. 그래서 노력하고 있고, 그렇게 만들고 싶다.” 그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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