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들 하십시오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3.12.3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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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는 국민 행복 시대를 열겠다고 했습니다. 정권 출범 초기에는 선별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를 놓고 여야가 치열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경제민주화를 담론으로 정치권·재계·학계 등에서 격론이 일었습니다. 대한민국이 진화하고 있다는 증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게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빈자리를 살벌한 정치적 구호와 삿대질이 점령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꽁꽁 틀어막혀 당장 동파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국민의 마음은 불편하고 어깨는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요즘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 열풍이 거셉니다. 이 일상적인 ‘심심한 인사’엔 풍자가 담겨 있습니다. ‘이런 판국에 어떻게 안녕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안녕 못한’ 이들은 대자보를 불만의 배출구나 공감의 광장으로 여깁니다. ‘안녕한’ 사람들은 ‘안녕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자신과 자식들이 ‘잉여 인간’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워 대자보 주변을 서성입니다. 안녕하건, 안녕하지 못하건 모두가 불안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시사저널이 새해를 맞아 2030세대의 의식을 조사한 결과 자신을 잉여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28.7%에 달했습니다. 10명 중 3명가량이 스스로 ‘남아도는 존재’라고 여긴 겁니다. 잉여 세대가 양산되는 이유로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응답한 이는 17.7%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경제 불황(32.4%), 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 부족(20%) 등 외부 환경 탓이라고 했습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자신을 잉여 인간이라고 한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2014년에도 ‘잉여를 탈피할 수 없다’고 답했다는 점입니다. 쉽게 풀이하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잉여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겁니다.

여건도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청년 실업률은 10% 안팎이지만 군 입대자, 대학원 진학자 등을 제외한 순수 취업 대상자만 따지면 절반가량이 백수입니다. 경제가 좋아지면 일자리가 늘 것으로 기대하지만, 글쎄요. 우리의 많은 기업이 수익성 높은 곳을 찾아 보따리를 쌌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국 기

업들이 외국으로 갖고 나간 투자금은 2000억 달러가 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지난 5년 새 이뤄진 겁니다. 예컨대 삼성전자 제품의 80%, 현대자동차의 절반 가까이가 외국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러니 한국 내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2014년에도 정치·경제·사회 곳곳이 지뢰밭입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희망을 노래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잉여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 힘내십시오. 여러분은 사회 어느 곳엔가 아직 ‘배치’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배치되어야 빛나는 자리가 분명 나올 것입니다. 시사저널 독자님들, 2014년 행복들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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