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청춘을 ‘삽질’로 끝낼 순 없잖은가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2.3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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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없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얼굴이 너무 많다. 떠올려보려 해도 단일한 상으로 잡히지 않는다. 지금 청춘이라는 집단의 얼굴은 하나의 이목구비로 설명되지 않는다. 21세기에 접어들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 ‘젊은 날의 초상’은 고전적인 인물화라기보다는 피카소 풍의 입체파 그림에 가깝다.

기성세대는 항상 뚜렷한 청년의 초상을 그리길 바랐다. 종전의 ‘신세대’ ‘X세대’ 같은 세대 개념으로 청춘을 규정하길 원했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부른 ‘88만원 세대’가 대표적이다. 향후 많은 젊은이가 봉착할 저임금 노동의 미래를 지목한 암울한 이름이었다. 반대로 글로벌 시대를 자신만만하게 헤쳐 나갈 경쟁력을 지녔다는 의미의 ‘G세대’도 등장했다. 이 밖에도 ‘실크 세대’ ‘웹2.0 세대’ 등 청년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표출돼왔다.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시각의 명명이 출현한다. 그러나 그 어떤 이름도 지금 청춘의 정체성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한다. 오늘의 청년들은 각자의 고립된 공간에서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 시사저널 이종현
소영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21세기 첫 10년 동안 청년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은 더 이상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청년 모두가 생존의 최전선에 내몰려 각자도생을 요구받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대학생이 중심이 된 청년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청년 세대를 규정하려는 외부의 시도가 늘 ‘부분의 성과’에 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대신 청년들은 기존의 것과 다른 방식의 자기규정을 스스로 진행하기 시작했다. 자기 세대의 공통 정체성을 설정하겠다는 의지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파편화해 고립된 채, 그들은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해 넋두리했을 뿐이다. 그런데 각 개인이 스스로를 규정한 두 음절의 단어는 인터넷과 하위문화를 통해 공명했다. 급기야 집단의 화음으로 거듭나기에 이르렀다. 자조적인 자기 비하와, 무의미해 보이는 킬킬거림과, 때로는 일말의 서글픔마저 깃든, 그들의 어법을 빌리자면 참으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단어. ‘잉여’다.

‘스펙’ 경쟁이 청년의 자존감 꺾어

‘잉여’는 나머지다. 필요 이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 영역에 참여하지 못해 ‘남아도는’ 이들을 가리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능력은 삶의 필요조건이다. 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 곧 잉여가 된다.

청년 실업이 한국 사회문제의 연관 검색어가 된 지 오래다. 철저히 서열화된 학벌 구조, 끝을 모르는 ‘스펙’ 경쟁이 청년의 자존감을 꺾는다. 극히 적은 숫자의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청년이 잉여가 된다. 대학 졸업을 유예하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할 상징 자본을 쌓으려 백방으로 뛴다. 그래서 잉여는 스스로 인정하든 아니든, 대기업이 ‘갑(甲)’인 경제적 체제 안으로의 편입을 갈망하는 다수 청년의 입지를 대변하는 개념이 된다.

그런데 잉여의 의미는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구조에 의해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것이 ‘존재론’으로서의 잉여 개념이라면, 스스로 잉여임을 자처하는 ‘행위론’으로서의 잉여 개념도 있다. 사회가 바라는 생산 활동에 쏟지 못해 남아도는 시간과 정력을 다른 곳에 쏟는 청년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에 출몰한다. 인터넷 게시물을 창작하고 댓글을 단다. 특정 대중문화 콘텐츠에 열광적인 반응을 드러낸다.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의미에서 ‘삽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잉여짓’을 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잉여력’이라 부르며 자조한다.

왜 청년들은 스스로를 잉여라고 자각하기 시작했을까. 그 배경에는 어떤 사회적 조건이 있는 것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 당사자인 청년의 입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2030 청년 세대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결과를 분석했다. 21세기에 도래한 ‘대잉여 시대’에서 창출된 잉여 문화의 계보와 특색을 살폈다. 무엇보다 청춘의 실제 삶 이야기를 통해, 청년을 잉여로 전락시키는 사회 구조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포착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웃기고도 슬픈, ‘21세기 청춘’의 자기 명명에 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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