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실적 매달리는 재벌 총수 문화 바뀌어야”
  • 김지영 기자·정리 김민신 인턴기자 ()
  • 승인 2013.12.3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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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개발 중심에서 연구 중심 경제로 가야”

한국은행은 2014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애초 4.0%에서 3.8%로 낮춰 잡았다. 한국 경제를 다소 비관적으로 전망한 것이다. 물가상승률도 2013년 1.2%에서 새해에는 2.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같이 우울한 전망이 나온 데는 여러 요인이 맞물려 있다. 2012년부터 재벌 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되거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서 새해에도 설비 투자는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 경제성장률 하락 등은 우리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3.8% 성장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그렇다면 서울대에서 31년 동안 경제학을 가르쳤고 국무총리를 역임한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2014년 국내외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2013년 12월23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동반성장연구소에서 정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2014년 우리 경제에 대해 “잠재성장률은 4.5%지만 실질성장률은 2~3%밖에 안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동반성장연구소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 같다.

2013년 5월 동반성장포럼을 처음 열었다. 11월까지 ‘동반 성장과 경제민주화의 이해와 오해’ ‘갑의 횡포, 을의 눈물 끝낼 수 있는가’ ‘통일 준비를 위한 한국 사회의 동반 성장’ 등을 주제로 포럼을 일곱 번 개최했다. 동반 성장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 지자체, 언론사, 연구소, 대학·중고등학교에서 1년 반 동안 80번 이상 강의한 것 같다. 사람들이 나보고 ‘동반 성장 전도사’라고 하더라(웃음).

동반 성장을 그토록 강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난 처음부터 동반 성장을 광범위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서울대학교 총장 시절 학생 구성 비율을 보니 100명 중 42명이 서울 학생인데 이 중 26명이 강남 지역 학생이었다. 그래서 ‘이거, 그냥 놔뒀다가는 서울대가 진짜 서울 대학이 되고, 더 나가면 강남 대학이 되겠다’ 싶어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했다. 지역균형선발제로 입학한 학생이 처음에는 좀 못하지만 졸업할 때 보면 일반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보다 성적이 더 좋았다. 정부(국무총리)에 가서 일할 때는 개성뿐 아니라 해주·신의주·원산 등에도 공단을 만들어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런데 지난 3년 동안 한국에서는 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을 논의했다. 빈부 간, 도농 간, 지역 간,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남녀 간, 세대 간, 남북한 간, 국가 간에도 동반 성장이 있어야 한다.

경쟁이 핵심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동반 성장은 감성적인 호소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자유주의든, 신자유주의든 그 뿌리는 아마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두고 있지 않나 싶다. 그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만 읽고 그보다 앞서 나온 <도덕감정론>은 읽지 않고 하는 말이다. <도덕감정론>은 윤리가 만연해 있지 않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얘기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되려면 윤리가 포함돼야 한다. 불공정 거래 행위는 안 되고, 경제 주체들이 밸런스를 유지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재벌의 동반 성장 노력, 진정성에 의문”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났으며, 미국이 더 이상 기회의 땅도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소득의 불평등이나 부의 분배 불평등이 있다. 미국·영국·일본보다 우리의 불평등도가 더 높다. 미국의 100대 부자 가운데 자수성가한 사람이 70~80명 되고, 물려받은 사람은 20~30명인 데 비해 우리는 물려받은 사람이 70~80명이 넘는다. 자연히 불평등한 상황에 대한 불만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또 워런 버핏, 마이클 블룸버그, 빌 게이츠 등은 자기 재산의 반 정도를 실제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그들이 특별히 착해서 기부했겠나. 자기들에게 지금까지 돈을 벌게 해준 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계속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1년 월스트리트에서 자본가와 기득권에 대한 저항 운동(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이 있었음에도 그 불길이 멀리 가지 못한 것은 그런 사회 환원 등이 완충 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동반 성장을 하자고 하니까 재벌들이 동반 성장 팀을 만들면서 노력하지만, 아직도 그 진정성이나 연속성에 대해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다.

한국이 미국보다 더 불평등도가 높다는 것인가?

난 미국 사회가 개천에서 용 나기가 더 쉽다고 본다(웃음). 미국 대학은 학생을 뽑을 때 ‘인종 균형’ ‘계층 균형’ ‘지역 균형’ 세 가지를 고려한다. 이런 실화가 있다. 3년 전쯤 한국인 10여 명이 한꺼번에 예일 대학에 지원했는데 한 사람만 합격했다. 청소부의 아들이었다. 의사나 교수 아들도 있었고 공부도 더 잘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부형들이 강하게 항의하면서 불합격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했단다. 예일 대학에선 ‘교수·의사 아들이면 청소부 아들보다 환경이 훨씬 좋았기 때문에 SAT(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성적이 더 좋았어야 하는데 그 차이가 별로 안 나더라. 청소부 아들의 잠재 능력이 더 있을 것 같아서 뽑았다’고 했단다. 미국에선 아직도 불평등을 고치려고 많이 노력한다.

조금 전 동반 성장에 대한 우리 재벌들의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물건 주문할 때 서면으로 안 하고 구두로 한다든지, 납품가를 후려친다든지, 기술을 탈취한다든지 등 불공정 거래 행위를 과거엔 아주 대놓고 떳떳하게 했다. 하지만 동반 성장을 안 하면 한국 경제가 버티기 힘들다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과거보단 (불공정 행위가) 덜하고, 할 때도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됐다. 그런데 기업들이 여러 가지 의미로 동반 성장을 하겠다고 하고 있으나 과연 진정성이 있는 것인지, 오래갈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2013년엔 ‘갑의 횡포, 을의 눈물’이 이슈였다.

재벌 총수들이 임직원 인사를 할 때 단기 실적만 보지 말고 장기적인 환경 변화도 봐야 한다. 단기 실적이 아쉬우니까 결국 똑똑한 사람은 구매 담당으로 발령 낸다. 만만한 게 납품가 후려치기다. 그런 의미에서 재벌 총수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처음 생길 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동반성장위원회를 민간위원회로 만들 게 아니라 정부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 게 좋았다. 재벌 총수가 바뀌어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으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중소기업도 스스로 반항해야 한다. 중소기업조합 등이 중소기업 논리를 자꾸 발언해야 하는데 상당히 정부 편을 든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2013년 5월9일 ‘제1회 동반성장포럼’에서 강연하기 위해 연단으로 가고 있다. ⓒ 연합뉴스
박근혜정부의 창조경제론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도 시원한 설명을 안 한 것 같고, 참모진도 시원한 답을 안 하니까 궁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과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 ‘창조경제가 도대체 뭡니까’라고 물어봤다(그러면서 정 이사장은 자신의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읽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창조경제가 뭐라고 말하긴 힘들지만, 창조경제의 성공 조건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라며 ‘첫째 거시경제 안정, 둘째 창조 인력 확보, 셋째 공공 정보 공유, 넷째 지적재산권 보호, 다섯째 융합·통섭의 연구, 여섯째 창업금융의 원활한 작동, 일곱째 대·중소기업 상생 구조 정착, 여덟째 창의력 저해 규제 철폐’라고 했다. 세상에 좋은 건 다 집어넣었다. 문제는 창조경제를 언제 안 했느냐는 것이다. 삼성이 창조경제를 안 했으면 어떻게 오늘날 저렇게 됐고, 현대차가 창조경제 안 했으면 어떻게 저렇게 됐겠나.

‘대통령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말한 ‘창조경제 8가지 성공 조건’을 들으니 더 헷갈린다.

이걸 하나 지적하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한국 경제를 관찰하는 이들의 공통 견해인데, 한국이 이제는 개발 중심의 경제에서 연구 중심 경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2007년 영국의 민간 싱크탱크인 데모스(DEMOS)에서 주최한 ‘한국·중국·인도의 R&D(연구·개발)’ 컨퍼런스에 초청받아 간 적이 있다. 데모스에는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가 많다. 거기서 ‘한국은 D(Development·개발)는 잘됐는데 R(Research·연구)이 안 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영국은 R(연구)에서 D(개발)로 가야 하고, 한국은 D에서 R로 가야 한다는 논지였다. 거기에 대해 대다수 사람이 인정한다. 난 창조경제가 D 중심에서 R 중심으로 가자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가져다 개발시키는 건 잘하는데, 우리 아이디어로 만드는 건 잘 못한다.

단기적인 성과 위주인 우리 기업 문화에선 쉽지 않아 보인다.

당연히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정부의 R&D 예산이 과거엔 D 중심이었다면 이젠 R로 강화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을 창의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이 핵심이다. 이제 교육을 ‘지덕체(智德體)’에서 ‘체덕지’로 바꿔야 한다. 지금은 고등학교 체육 시간이 없어졌거나 자율학습 시간이 됐다. 수능과 내신이 적게 틀리기 위한 전쟁이니 덕육(德育)과 지육(智育)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영국 존 로크의 <교육론>은 ‘덕육’을 제일 중시한다고 했고, 320년 동안 영국 교육의 철학과 제도의 기초가 됐다. 독서, 여행, 사람 만나기를 통해 호기심을 키우고 질문을 많이 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인과 유대인은 교육열이 최고지만 유대인은 자녀가 학교에 다녀오면 ‘오늘 학교에서 질문했어?’라고 묻는다. 반면 우린 ‘몇 등 했어?’ ‘몇 점 받았어?’라고 한다. 싫든 좋든 아직 미국이 세계를 좌우하고 유대인이 미국을 좌우하는데, 이건 질문을 많이 해서다. R&D 정책에서 D보다는 R로 가게 해서 국민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 내가 정의하는 창조경제다. 중기적으론 D에서 R로, 장기적으론 교육 혁신이다.

“규제 푼다고 투자 일어나는 것 아니다”

세계 경제가 미국과 중국 양강 체제로 가고 있다. 머지않아 세계 경제의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세계 인재들이 미국으로 모인다. 누가 세상을 움직이나. 사람이 움직인다. 미국은 자원도 무궁무진하다. 중국이 2년 전쯤 GDP(국내총생산) 규모에서 일본을 앞질렀다는 의미로 G2(미국·중국)라고 불렸지만 경제는 양적으로만 발전 척도를 삼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것도 고려할 게 많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간다 해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2014년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쉽지 않을 것 같다. 뭐가 있어야지. 지금 우리는 양극화가 심각하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1980년대엔 8%대 성장, 1990년대엔 6%대, 2000년대엔 4%대, 지금은 2~3% 정도다. 여기서 탈피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아무리 커졌다고 해도 2~3%밖에 성장을 못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 잠재적 성장률이 4.5%다. 그 잠재적 성장률만큼 가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방법이 별로 없다. 성장하려면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에서 전부 부실했다. 건설 투자는 몰라도 설비 투자는 부진했다. 대기업은 돈은 많은데 투자 대상이 적다. 첨단·핵심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하다. 중소기업은 기술에 투자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이 대기업을 모아놓고 ‘여러분, 52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투자 좀 하시죠’라고 하니까, 대기업들이 ‘그럼 규제를 좀 풀어주시죠’라고 했다. 난 규제를 푼다고 해서 반드시 투자가 일어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투자 대상이 있을 때 규제를 풀어주면 된다. 하지만 현재는 돈이 있어도 첨단·핵심 기술이 부족해서 안 되는 거다. 국책 연구소, 기업·대학 연구소 등에서 지금보다 D에서 R로 더 가야 첨단·핵심 기술이 생긴다.

저성장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기업은 돈은 많지만 투자 대상이 부족하다. 투자 대상을 중·장기적으로 마련해줘야 한다. 중소기업은 투자 대상은 있지만 돈이 없다. 그런데 중소기업에 돈을 주는 것은 단기적으로 가능하다. 초과이익공유제나 중소기업적합업체 선정, 중소기업 위주의 정부 발주 등 세 가지 방법으로 하면 투자-생산-고용-소득-수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장담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순 없잖은가.

민영화를 이유로 철도노조가 파업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정부의 구상을 알 길은 없다. 다만 민영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과거 민자화·민영화 중 성공한 게 얼마나 있나 물어보고 싶다. 도로·터널 민자화를 하고 나서 보조금 주는 게 무슨 민영화인가.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진입한 것을 보면, 사회에서 강하게 나올 때 (정부가) 강하게 대응하면 누군가 부러질 가능성이 있어서 굉장히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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