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서 일하는 황씨 올해는 836만원 더 받아
  • 조재길│한국경제신문 기자 ()
  • 승인 2013.12.3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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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 판결…호봉제 근로자가 좀 더 유리

#1. 대형 조선업체에서 21년째 일하고 있는 송 아무개씨(41)는 2013년 11월25일 월급으로 492만원을 수령했다. 기본급에다 고정 상여금, 초과 근무 수당 등을 모두 합해서다. 송씨는 2014년부터 월급이 크게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법원이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송씨는 “노조에서 2014년부터는 월급이 최소 20% 이상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퇴직금과 함께 추후 국민연금 수령액까지 늘어난다니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2. 전자회사에 다니는 임 아무개씨(47)는 이번 통상임금 판결에 무덤덤하다. 기대와 달리 임금 인상 폭이 크지 않을 것이란 얘기를 들어서다. 10여 년 전 연봉제로 전환한 임씨는 상여금 없이 매달 고정급을 받고 있다. 그는 “통상임금 판결로 월급이 오르는 사람이 많다는데 박탈감이 든다”고 밝혔다.

ⓒ honeypapa@naver.com
‘통상임금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국내에서 일하는 대다수 근로자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18일 ‘1개월을 초과해 일정 기간마다 지급되는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상여금 비중이 높은 제조업체 생산직의 임금이 크게 오르게 됐다. 통상임금은 시간외 수당과 연장·야간 수당, 휴일 근로 수당 등과 함께 퇴직금 산정 때 기준이 되므로 기업의 부담은 커진다. 

대법원은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통상임금 범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처음 제시했다. ‘통상임금에 정기 상여금이 포함돼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임금이 통상임금에 속하는지는 노동자에게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지 여부에 따라야 한다’고 명시했다. 예컨대 고정 상여금과 근속 수당, 기술·자격 수당, 직책 수당, 식대, 교통비 등은 모두 통상임금이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산정하는 각종 연장 근로 수당 등을 올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노사 합의가 있더라도 근로기준법에 위배되기 때문에 무효라고 못 박았다.

다만 대법원은 ‘지급일 기준으로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만 지급하는 임금은 통상임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했다. 근로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돈이라도 명절 귀향비와 휴가비, 가족 수당, 김장 보너스, 선물비, 생일자 지원비, 개인연금 지원금, 단체보험료 등 복리후생비는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판단이다.

또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합의한 노동자가 뒤늦게 추가 임금을 청구할 경우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임금 채권의 소멸 시효가 3년이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과거 3년치 소급분을 달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이 주장이 현실화할 경우 대다수 기업이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어 실제 소급분을 지급하는 사례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조선업 근로자 웃고, 서비스업 울고

이번 판결로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기업은 기본급 외에 정기 상여금과 연장·야간·휴일 근로에 따른 초과 근로 수당 등이 많은 곳이다.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대표적이다. 특히 자동차·조선·철강·운수 업종 근로자가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반대로 이미 연봉제를 도입했거나 성과급 비중이 높은 전자·서비스 업종 근로자는 큰 폭의 임금 인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2년을 기준으로 100인 이상 사업체 중 호봉제를 택하고 있는 곳은 75.5%다. 경총은 이번 판결에 따라 근로자 인건비가 별도의 임금 인상 없이도 총 13조7509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임금의 3.2% 수준이다.

예컨대 올해 100인 이상 사업장의 월평균 임금은 297만7000원이었다. 이 가운데 기본급(통상임금)은 170만6000원. 이 돈을 시간으로 나눈 시급에 따라 휴일과 연장 근무 수당이 지급됐다. 매달 기본급의 30%인 52만4000원이 정기 상여금이라면, 2014년부터 통상임금은 223만원(170만6000원+52만4000원)으로 껑충 뛴다. 그러면 앞으로 시간당 임금도 같은 비율만큼 올라 1만4000원이 된다. 매주 8시간씩 휴일 근무를 하고, 매일 2시간의 연장 근무를 한다면 휴일 근무 수당은 한 달에 10만4000원, 연장 근무 수당은 13만원이 각각 오르게 된다. 2014년부터 매달 추가로 챙길 수 있는 돈이 23만4000원이 된다. 

구체적으로 자동차회사에서 10년 넘게 생산직으로 일하면서 2013년 연봉 5538만원을 받은 김 아무개씨(37)의 사례를 보자. 그의 기본급은 연간 1944만원이다. 여기에다 고정 상여금이 1566만원, 통상임금 연동 수당이 2028만원이었다. 고정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김씨는 2014년 1880만원을 추가 수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업체에서 근무하는 황 아무개씨(38)도 마찬가지다. 그의 2013년 연봉은 5316만원이다. 기본급 2568만원에다 고정 상여금 1518만원, 통상임금 연동 수당 1230만원을 합해서다. 2014년엔 별다른 임금 인상 없이도 836만원을 더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형 유통회사에 다니는 이 아무개씨(37)는 다르다. 연봉에서 기본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아서다. 2013년 연 급여 5112만원을 받은 이씨의 기본급은 4032만원. 고정 상여금이 744만원, 통상임금 연동 수당이 336만원이기 때문에 2014년에 더 받을 수 있는 돈은 72만원에 그칠 것이란 예상이다.

이번 판결로 중소기업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인상 효과를 보게 됐다. 고정 상여금 자체가 대기업보다 적기 때문이다. 사무직 근로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야근이나 특근과 같은 연장 근로를 계량화하기 어려운 데다 연봉제 계약이 많아서다.

이번 판결에 따라 모든 사업장의 임금이 곧바로 재조정되는 것은 아니다. 노사가 임금 및 단체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인상률을 정해야 한다. 임·단협 과정에서 통상임금 기준 시점을 ‘대법원 판결 때’로 정하면 그 회사 근로자는 12월18일부터 소급 적용해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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